복구의 추억_(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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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의 추억

김창식

2010년 07월 23일 (금) 00:50:05

오는 29일이 중복입니다. 한창 개들이 수난을 당하는 시절이네요. 주인을 데리고(?) 산책 나온 개를 보거나 어디선가 꿈결인 듯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면 꼬리 잘린 볼품없는 개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나타납니다. 길 가다가 '보신탕'이라고 쓰인 붉은 깃발이 내걸려 있는 '가마솥 집'을 지날 때면 잠깐 머물러 그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곤 합니다. 혹시 복구(福狗)가 있나 하고.

--복구(福狗)는 우리 개 이름이었다. 복구는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가기 전 강아지 때부터 길렀는데 그간 나이가 들어 어중간한 중개(中犬)가 되었다. 그래도 어린 티가 아직 가시진 않았다. 녀석의 생김새는 볼품없었다. 누런 몸통에 등 쪽 색깔이 거무스름한 잡견이었다. 게다가 꼬랑지는 반 토막이었는데 스스로 잘랐다. 무슨 수를 썼는지 고개를 돌려 제 꼬리를 물고 몇날 며칠 맴을 돌더니 끊어 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자해행위를 한 복구를 미련하다고 '벅수'라 부르기도 했다.

복구도 잘하는 일이 있었는데, 고양이도 아닌 것이 쥐잡기에 명수였다. 갑자기 '쉬식' 소리가 나면서 설쳤다하면 어김없이 쥐 한 마리가 발밑에 놓여 있었다. 또 다른 개도 그렇겠지만 유독 귀가 밝았다.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 들어설 양이면 벌써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어디선가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어린 주인의 앞가슴에 '오시핀(옷핀)'으로 꽂아 놓은 코 묻은 손수건을 깡충 뛰어올라 물고 늘어져 타박을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골치 아픈 것은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대며 학교에 가려는데 신발짝이 없는 것이었다. 복구 아니면 누구 짓이겠는가. 영락없이 복구 녀석이 툇마루 턱이나 장독대에서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고무신짝을 질겅질겅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가야겠는데 그 모양이니 정말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것 뿐 아니었다.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달리아 같은 꽃을 심어 놓은 작은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가 예사여서 그런 애물단지가 없었다.

녀석을 결정적으로 달리 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대문간에서 놀고 있는데 동생이 "성, 이리와 보랑께. 복구가 이상해."하고 소매를 잡아끌었다. 화단께로 가보니 복구가 원을 그리며 낑낑대고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는 다리 어림을 다친 참새 한 마리가 짹짹거렸다. 보통 때의 복구라면 참새를 앞발로 후려쳐 끝장을 냈을 텐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동물들 사이에도 의사 교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사람들이 말을 통해 의사를 주고받듯 동물끼리도 무언가 서로 뜻을 전달하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으며, 그러자 그 믿음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어린 참새는 아마도 복구에게 구원을 호소한 것이고 녀석은 그것을 알아들은 것이 아니었을까?

동생과 나는 참새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마분지 상자에 옮긴 후 참새의 가는 발목에 '아까징끼(머큐로크롬)'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어린 참새는 도통 먹이를 먹지 않더니 며칠 못가 죽고 말았다. 우리는 화단 구석 양지 바른 쪽에 참새의 주검을 파묻고 조그만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복구는 어떻게 알아채고 그 주위를 빙빙 돌거나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곤 하였다.

녀석과의 마지막 날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아니면 5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복구가 달려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어디에도 기척이 없었다. 또 쥐약 먹고 널브러져 있나 보다 생각하며(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억지로 양잿물을 먹여 토하게 했다.) 마루 밑, 헛간, 노적가리고 간에 이곳저곳을 부지깽이로 들쑤시고 다녔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외양간에도 가 보았는데 누렁소가 천연덕스럽게 여물만 씹고 있어서 밉살스러웠다. 마침 장닭이 옆으로 지나가길래 발로 걷어 차 주었더니 깃털만 흘리고 도망갔다. 어디 놀러갔다 돌아오면 복구가 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무들과 한참 놀다 왔는데도 복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복구가 낯선 사내 개장수에게 '후달려' 가더라는 소문이었다. 난 시장 통에 있던 몇 군데 개장국 집을 모조리 뒤졌다. 개를 그슬어 잡는 곳으로 알려진 변두리 공터 구덩이에도 가 보았다. 그곳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쓰레기만 쌓여 있었다. 복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목에 올가미를 찬 채 구슬픈 울음을 울고 있는 복구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복구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이 여간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보신탕집을 지날 때마다 그 안을 기웃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 버릇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남아 우연히 보신탕 집 앞을 지나가게 될 때면 그 안을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그래도 혹시 거기 복구가 있나 하고.--

'개먹는 행위'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난 당연히 개를 안 먹습니다. 어찌 개-복구-를 먹을 수 있겠나요? 보신탕을 즐기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남정네들이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린 채 연신 땀을 훔치며 개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면 안 됐다 싶고 측은하게까지 여겨집니다. 여자들이 눈을 빛내며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는 모습도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요. 바라건대 이 세상의 모든 복구들이 올 여름을 아무 탈 없이 지내기를….

김윤옥 (210.XXX.XXX.159)

'心境 11 - 하물며 네가 떠난 뒤에야' - 이창기(1959~ )

동지섣달 추위에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 여섯 마리 중
한 마리는 잃어버리고
두 마리는 남 주고
이렇게 저렇게 다 떠나고
마침내 혼자 남아
입춘 경칩을 제멋대로 쏘다니는
봄 강아지 한 마리
그 곁에 가면 물씬 풍기는
어미 개 냄새
너, 알지? ---------------------------------------------------

그 전에 쓰셨던 글 중에서 선 보러 갔던 집의 어른들께서 개혀??? 하셨던 그 이야기 생각으로 또다시 웃습니다.

저는 개를 무척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한 번도 강아지를 길러보지 못했지요.
그러나 이 詩를 읽을 때면 무언가 짠한게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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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4 0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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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2)

이창기 시인의 봄 강아지 한마리 시 마음에 와닿습니다.
'개혀?' 기억하시는군요. 제가 쓴 초기 글이었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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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4 09: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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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벅구에 대한 기억
저도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벅구에 대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진황갈색의 잡종견인데 어찌나 저만 쫄쫄 따라다니는지 귀찮았는데 그녀석의 위용을 보고서는 오히려 제가 함께 가줄 것을 채근하기에 이르렀답니다. 이 녀석이 면소재지 나가는데 따라와서 죽어라 말렸어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오느데는 어쩔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당시 소재지에는 세퍼드,불독 등 덩치도 크고 사나운 개들이 많아서 조바심이 났지요.소위 그녀석들에게 걸리면 뼈도 못추릴 것 같았으니까요.
실제로 대문가에서 내다보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어 가슴이 방망이질 하더군요. 뒤돌아 보며 소리소리 지르며 위험을 알렸지만 꼬마주인의 속도 모르고 저벅저벅..... 비명 지르며 당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연...
그런데 왠걸요 커다란 세퍼트도 인상 사나운 불독도 죄 꽁지를 내리며 끙~ 소리를 내고 쫒겨 들어가버리고 아 ~ 우리 벅구가 당당하게 대로를 활보하지 않겠습니까! 잡종이라고 업수이 여겼는데 와!~ 어쩌면 저리도 당당하게 소재지의 모든 개들을 압도할까!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봤다니까요. 그렇지!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떡벌어진 앞가슴이 한 몫을 하는게 틀림 없을거야. 그 뒤론 얼마나 자랑스럽게 대동하고 다녔는지 제 어깨가 절로 올라갔다니까요.
그런데 학교(초등학교)에 갔다 왔는데 보이지 않아 김 선생님처럼 샅샅이 뒤졌는데 글쎄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고....몇날 몇일을 울면서 그녀석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저도 개고길 먹지 않았는데 이제 먹고 있으니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겠죠? 그땐 정말 개고기 먹는 사람들 모두 야만인으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지금의 농촌엔 얘들도 없고 잡종견도 없어
김 선생님 같은 따스한 추억을 만들 수 없음이 넘 안타깝고 벅구가 무지 보고 싶습니다! 끌려가며 얼마나 저를 불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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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8: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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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창식 (110.XXX.XXX.242)

인내천님께도 거의 비슷한 추억이 있으셨군요. 이름도 '벅구'였고요.
면소재지 개를 모두 제압하고 활보하던 포스넘치는 벅구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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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2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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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119.XXX.XXX.235)

개고기를 먹든 먹지않든 음식취향문제라고 봅니다. 개고기 요리 역시 우리 음식문화의 일부이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먹는 개고기 요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닐지요. 국민을 이렇게 안전 바깥으로 내팽겨쳐 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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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3: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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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2)

개인 취향이자 호,불호의 문제이고 고유의 음식문화라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한세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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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5: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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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96)

오래전 정부 인사들이 북한방문을 했을 때 김정일이 일률적으로 개장국이 몸에 좋다고 대접했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개장국 그릇을 앞에 놓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음식이 난감한 분들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요.
불교 집안은 개고기를 먹으면 "동티"(나쁜일) 난다고 못먹게 하고,채식주의자도 안먹을 터이고.
김정일의 일률적인 음식 선택이 기싸움으로 비친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개고기 한점을 얻어 먹은 며칠 뒤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는데 어머니께서는 "동티"나서 그렇다고 하도 읊어대셔서 않먹습니다.
개고기 문화를 반대하지는 않슴니다.
다만 어머니 성화에 맞추다 보니 개신교도가 되었어도 안 먹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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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1: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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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2)

차덕희님께 어렸을 적 그런일이! 불교를 믿는 집에선 안 먹고'동티난다고' 하는 군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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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5: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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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112.XXX.XXX.231)

복구?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감이 가는 집 마당 개 이름입니다. 지난 17일, 고교 동창 모임에서 '멍멍 탕'을 먹고 여름을 나야겠다는 다수의 건의를 주관자인 제가 지난 6월 모임에서 받아들여 경기도 시흥의 한 농원에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20명이나 참석, 성황?을 이루었는데, 주관자인 저는 정작 "개혀? 암만"이 아니고 작가 님처럼 못합니다. 오리 백숙으로 일부 동기들과 함께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릴 때의 복구 추억을 복 중인 이맘 때쯤이면 작가 님께서 유독 생각이 나시는가 보군요. 참 예쁘고, 순수한 마음을 작가님은 가지셨기에 칼럼이 이렇게 다양하신가 봅니다. 참 오래 전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TV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보신탕 집이 아닌 어느 농가 집에서 기르던 개를 복날에 잡으려고 어설프게 때려, 펄펄끊는 가마 솥에 넣었는데, 순식간에 이를 탈출한 그 개가 온몸에 화상을 입은채로, 주인에게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난, 절대 멍멍탕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 여지껏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반 주택에서 살때는 항상 마당에 개를 키웠었고, 아파트로 와서는 현재도 애완견 2마리(14살 할머니, 4살 미혼녀)를 돌보고 있답니다. 복구... 참 오랜만에 들어보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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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09: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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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2)

happy님, 고백합니다만 오래 전 회사 다닐 때 어느 화곡동(그 땐 깡촌이었지요)
소문난 집에서 억지로 한 두점 먹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한테 찍힐까 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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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15: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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