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보행자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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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는 보행자 천국

방석순

2010년 08월 02일 (월) 00:42:58

서울 광화문 네거리, 그 드넓은 길에 보행자를 위한 건널목이 그려진 걸 처음 보던 날 감탄했습니다. 말로만 ‘보행자 천국’이 아니로구나, 이젠 밥걱정보다 살아가는 멋을 생각하고 도로의 경제적 효과보다 삶의 격조를 우선시하는 나라가 되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행자의 안전보다는 원활한 차량 소통을 위해서 육교가 세워지고, 그 자리에 다시 지하도를 파더니 마침내 차도를 가로질러 당당하게 횡단보도가 생겨난 것입니다.

서울 한복판이 그런 정도니 도심을 벗어난 변두리나 주택가에서의 보행은 그야말로 천국의 단계에 이르러야 옳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자만심을 가지고 걷다가는 아찔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차도를 마음껏 달릴 수 없게 된 차량들이 일제히 반기를 든 탓입니다.

파란불을 보고 횡단보도로 들어선 보행자들이 기겁을 합니다. 택시도 자가용도 횡단보도 신호등은 아랑곳 않고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런 무법차량을 통제할 사람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혼쭐난 보행자가 눈을 흘겨보는 게 고작입니다. 그까짓 눈 흘김쯤 비웃음거리밖에 안 된다는 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표정입니다.

대부분의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는 차량들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열 대 중 서너 대는 보행자가 도달하기 전에 재빨리 지나가고 그나마 기다리던 차량들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양 보행자의 뒤꿈치를 밟을 듯이 뒤따라 지나갑니다.

왕복 4차선 정도의 횡단보도 사정도 마찬가집니다. 혹시라도 멀찍이서 다가오는 보행자의 통과를 기다리는 멍청한 차가 있으면 뒤따르던 차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밀어냅니다.

골목길을 나와 큰 길로 들어서려던 승용차 하나가 인도를 줄지어 지나가는 보행객들에게 막히자 보행객의 엉덩이를 밀치듯 범퍼를 들이댑니다. 깜짝 놀란 보행객이 차창 안을 들여다보자 운전사는 얼굴을 돌려 딴전을 부립니다.

길거리엔 무슨 실험 중인지 여러 가지 형태의 건널목이 있습니다. 사방 모든 차량의 통행을 일제히 정지시키고 가로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보행자들이 찻길을 건너게 해놓은 곳, 차량의 직진과 좌회전 순서를 따로 정한 곳, 직진과 좌회전을 동시에 허용한 곳 등. 보행자 신호도 그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행자 신호의 모양도 갖가지입니다. 디지털 시계가 깜박이는 곳도 있고, 막대처럼 이어붙인 삼각형 점멸등이 차례로 꺼지는 곳도 있습니다. 보행자들은 신호등의 시간에 쫓겨, 또 밀치고 지나갈듯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차량에 쫓겨 허둥지둥 건널목을 뛰어 건넙니다.

복잡한 시장통이나 주택가 뒷골목에서는 도처에 불법으로 주차한 차량들을 피해, 또 앞뒤로 지나다니는 차들을 피해 고개를 360도로 휘돌리며 조심조심 걸어가야 합니다.

이게 요즈음 우리가 보고 느끼는 보행자 천국의 실태입니다. 어떤 땐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도대체 행정관청에서는 무얼 하는지, 교통경찰관들은 다 어딜 갔는지, 원성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 한심한 상황을 보면서도 유유히 지나가는 순찰차를 보게 될 때엔 저들이 무엇 때문에 비싼 기름 없애가며 돌아다니는지, 더욱 화가 납니다.

한때 네거리 신호등 앞 정지선에 차의 코끝만 닿아도 딱지를 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엔 차량의 횡단보도 무단 통행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슬 퍼렇게 교통질서를 다잡던 경찰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홍천 산골마을을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예쁘게 핀 들꽃도 보고 개천에서 사냥에 열중인 물새도 보며 상쾌한 기분으로 막 지방도로에 올라섰습니다. 불과 50여 미터쯤 달렸을까, 그 한적한 길에 경찰관 서너 명이 지키고 서 있다가 차를 세웠습니다. 무슨 사고라도 났었나, 차창을 내다보니 ‘안전벨트 미착용’이라며 딱지를 떼 주었습니다. 순간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아무리 교통안전이 중요하기로서니 한 시간에 차 두어 대 지나다니는 산골 지방도로를 막고 섰다가 딱지나 떼는 게 교통경찰이 할 일인가, 제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작심하고 딱지 떼러 나선 듯한 경찰관들에 대한 원망이 앞섰습니다.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이따금 교통경찰관들이 간이책상을 펼쳐놓고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을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필요한 일 같기도 하지만 역시 더 중요한 소임을 두고 벌이는 딴 짓처럼 보여 언짢습니다. 정작 다급하게 필요한 곳에서는 교통경찰관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수선한 시국에 경비, 강력범죄 등의 업무에 지쳐버린 탓인지 교통사고 현장이 아니면 길거리 질서 유지를 위해 일하는 경찰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위 질서를 잡고 강력범을 잡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시민들의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기초질서를 잡는 일에 좀 더 힘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교통안전을 위한 행정관청의 진지한 노력도 아쉽습니다. 요즘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올레길’이니 ‘둘레길’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위한 길일 테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전시행정 같이만 느껴져 좀 씁쓸합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국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지방도로에는 아예 걸을 수 있는 인도가 없는 곳이 태반입니다.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건 아닐까요.

어느 날 하루를 잡아 종일 자동차가 다니던 길을 막고 보행자들에게만 개방했다고 해서 보행자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블록을 타탄으로 바꿔 깔고 버스 정류장 옆 매연이 가득한 차도에 바짝 붙여 벤치를 세운다고 보행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아닙니다.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차도와 인도를 순리에 맞게 정비하고 엄정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김윤옥 (210.XXX.XXX.43)

다섯살 손녀가 옛날에는 에어컨도 없었지만 지금 처럼 덥지않았던 이유는 공기가 맑았기 때문이라고 어린이집에서 배운 과학 상식으로 가족들의 감탄을 샀습니다. 우리는 늘 더 좋은 세상으로 줄달음 치고 있다고 믿어왔으나 그 옛날보다 못한 오늘을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됩니다. 돌아가는 삼각지에 육교가 설치되었을 때 그 유선형 구조물이 모던(?) 한 예술작품 같기도 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오로지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 그리들 하신다니 그 것이 진정이기를 바랄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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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3 23: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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