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실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집권당의 젊은 국회의원이 저잣거리 사람들도 사용을 꺼려하는 원색적 표현으로 성희롱 논란을 빚더니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달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일정 중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를 언급하며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과 함께 살라"는 내용의 발언을 해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지요.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간주하는 국회의원과 국민을 상대로 막말하는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은 일부 친북진보성향 젊은이들의 언행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표현이 적절치 않았습니다.

현 정부의 초기내각 구성 때의 인사잘못이 생각납니다. 당시 장관 하마평에 오른 사람들의 갖가지 편법 의혹과 도덕성에 대한 면피성 변명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인터넷 유머 수준이었죠. 땅 투기 의혹에 대해 "땅이 좋고 자연을 사랑해 땅을 샀다" 하고(물이 좋으면 물에 뛰어들 것인가), 재산증식 의혹에 대해 "부부가 모두 교수인데 수십억 더 벌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가 하면(교수가 무슨 돈 버는 직업인지), 호화선물 증여에 대해선 "제가 암이 아닌 것으로 진단돼 남편이 기념으로 오피스텔 사줬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하며(암센터 로비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려나), 과다 부동산 보유 의혹에 대해선 "여름과 겨울 각기 다른 곳에서 지내려고 집을 샀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되물었지요(에게해가 보이는 별장이나 코파카바나 리조트 펜션도 아닌데 뭘).

그들의 궤변에 대해 국민들은 아연실색, 넋을 잃었습니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부를 쌓았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재산의 규모를 탓하겠습니까? 재산 축적 과정에서의 정상적이지 않음도 문제지만 장관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행세해 온 사람들이 그런 군색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낼 정도의 지적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에 국민은 참담해 했습니다. 권력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 얼결에 대충 둘러댄 것인지, 그런 발언이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리라는 것을 모른 것인지(그것도 지적 수준에 관련되는 일이긴 하지만), 알고서도 그런 말을 했다면 국민의 정서를 도외시한 오만함과 뻔뻔스러운 처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현 정부가 최근 재‧보선에서 승리하여 숨을 돌렸다고는 하지만 일부 국민들 사이에 상존하는 부정적 정서의 연원에는 집권 후 처음 조각 때의 인사 해프닝이 자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각인된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통념이 유령처럼 떠도는 데다 이후 정부가 정책현안을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한 것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고 거부감의 싹을 키운 것이 아닐까? 정부로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첫 인상은 오래가는 것이고 논리와 이미지가 충돌할 때 대체적으로 일반 대중은 후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어서요.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 물의를 자아내고 국민정서에 생채기를 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전임 대통령 탄핵 때 역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당시 야당의 여성 최고위원은 이렇게 사퇴의 변을 말해 고소를 자아냈습니다. "지도자 중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겠기에…." 이해타산의 반석(磐石)위에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당원의 줄서기로 선출된 집단지도체제 하의 최고위원이 국민의 지도자인가요? 누가 자격을 부여하고 인정한 지도자라는 것인지.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스스로 머리 위에 덧씌우는 고깔이라도 되는 걸까요. 하긴 탄핵을 당한 대통령 자신도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폭력 조직의 보스 같은 말을 하며 수시로 국민에게 겁을 주었으니 말해 무엇 하리오? 오히려 국민들이 '국민 안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정치인의 말실수 퍼레이드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6.2 중간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 홍보수석은 이렇게 사퇴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나도 신성일, 김진규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 허장강, 박노식 같은 악역을 해야겠기에…." 자신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희생자'나 '순교자'의 이미지로 포장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끌어다 쓴 비유도 틀린 것입니다. 사실 확인이 잘못되었지요. 허장강은 악역이었지만 밉지 않은 소탈한 배우였고, 박노식은 악역도 아니었을 뿐더러 유쾌하고 호방한 사나이 역을 담당한 주인공이었으니까요.

정치권에서든 연예계에서든 아니면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든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또 '해서는 안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침묵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침묵의 소리'는 의외로 공명이 크거든요. 말을 하기 전 한 번쯤 듣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또한 말을 해야 한다면 강력한 내용일지라도 표현은 되도록 순화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만, 우리 모두 비슷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