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 문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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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문어의 죽음

김수종

2010년 11월 05일 (금) 00:24:42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인상 깊은 이미지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팀이 원정 경기서 첫 16강 진출을 이뤄내는 감격적인 모습도 그렇고, 재기발랄한 스페인 축구가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따내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은 ‘파울’이란 이름의 문어 한 마리가 쏟아내는 뉴스였습니다. 여덟 개의 발을 허우적거리며 탱크 속에 놓인 축구 경기팀의 국기를 감싸 안으면 다음 경기서 그 나라가 이기는 문어의 점괘를 보며 사람들은 놀라움과 신기함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이 점쟁이 문어가 지난 달 24일 독일의 해양생물관에서 수명을 다해 죽었다고 합니다. 해양생물관은 이 문어의 명성을 그냥 사라지게 할 수 없었던지 장례식도 치러주기로 했을 뿐 아니라, 디지털 기념비를 세워 이 문어가 승부를 예측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관람객에게 보여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어에 ‘Octopus Paul’을 쳐 넣었더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왔습니다.
이름: 파울.
성별: 남자.
직업: 축구 전문가.
생몰 연대: 2008년 1월 영국서 태어나 2010년 10월 26일 독일서 사망.
2년 9개월이란 짧은 생애를 통해 축구전문가란 타이틀까지 받았으니, 문어가 이 지구상에 생겨난 후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부터 이렇게 대접받기는 처음일 것입니다.

파울의 월드컵 축구 점괘는 신통했습니다. 적중률이 100%나 되었습니다. 파울은 독일이 벌인 7번의 경기에서 승부를 모두 맞췄고, 최종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이길 것이라고 예측해서 맞췄습니다. 두 팀이 경기를 벌일 때 승부를 맞출 확률은 2분의 1입니다. 그러나 연속해서 8개의 경기를 알아맞힐 확률은 256분의 1입니다.

문어를 가리켜 연체동물 또는 무척추 동물이라 부릅니다. 문어는 무척추 동물 중에서는 지능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바닷물 속에서 문어와 조우해 본 사람은 느끼는 일이지만, 문어는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는 달아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적절할 때 먹물을 뿌려 자신의 행방을 숨깁니다. 다리 하나만 들어가는 구멍을 발견해도 몸체를 최소로 줄이며 빠져나갑니다.

그렇더라도 256분의 1의 확률을 알아맞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작설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특정국가의 탱크에 문어가 좋아하는 물질을 가미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작설만으로는 파울의 승부예측을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동물의 미래 예측을 믿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게 ‘새점’입니다. 또한 동물이 자기 방어 본능이 환경변화의 단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진 지대에서는 땅속에 사는 동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지진을 예측한다는 속설이 있고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쥐들이 기어 나오면 그 배가 좌초한다는 말은 종종 들었지만 과학적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문어에게 월드컵 경기의 승부를 묻는다는 것은 과학적 타당성을 찾아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장난기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점쟁이 파울의 등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참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지식을 배우고 익혀도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월드컵 같은 운동경기도 그렇지만 한 인간이 개인적으로 미래에 어떤 일과 부딪치게 될지 거의 모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문어에게 미래를 물어 보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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