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바쁘고 생각은 좁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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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바쁘고 생각은 좁으니

방석순

2010년 11월 16일 (화) 01:31:31

흔히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거나 들으면 ‘말세(末世)’라고 합니다. 또 심한 세대차를 느끼면 “요즘 사람들은…” 하고 못마땅한 내색을 합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정말 걱정스러울 만큼 혼탁해지고 갈수록 망조(亡兆)가 드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해가 바뀔수록 밝아져 온다고 생각할 게 분명합니다. 신분과 연령의 고하에 따른 부당한 억압과 차별은 사라지고, 전철 간에서 자리를 다투든 자동차 접촉사고로 시비를 가리든 노소불문, 1대 1로 할 말 다하고 사는, 그야말로 개명사회가 되어가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신세대 역시 나이가 들면 나이 먹은 만큼 굳어진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성세대가 되고 말지요. 그 다음 세대가 다시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문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밝힙니다. 한 발 밀려난 세대는 새 사상, 새 문물, 새 세상에 어두워지고 두렵고 염려스러워집니다. 너무도 똑같은 이 세대 간 시각과 사고의 간격은 인간사회가 지속되어온 수천, 수만 년 세월 동안 똑같이 반복되어 왔을 테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일입니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쓴 소설 「람세스 2세」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문명사회의 이집트 여인들이 비천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치장을 흉내 낸다며 당시의 야릇한 풍조를 비판한 것입니다. 오늘날 뭇 여성들이 머리 귀 코 목 손 팔목과 발목, 심지어 배꼽에까지 달고 사는 갖가지 장신구들이 고대 이집트가 최고의 문명을 누리던 3천여 년 전에는 벌거벗은 아프리카 미개인들의 야만적인 풍습이었던 모양입니다.

인류 문명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우주선이 왕복하고 온천지에 민주화의 물결이 가득한 지금도 우리는 걸핏하면 ‘말세’라느니 ‘망할 세상’이라고 한탄합니다. 세상 이치가 이렇듯 밝아지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이렇게 풍요를 누리는데, 좀 웃기는 일 아닙니까.

400여 년 전 전라도 영광에서 태어난 강항(姜沆: 1567~1618) 선생은 선조 때 급제해 공조와 형조 좌랑을 지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이미 쑥대밭이 된 터에 정유년 또 다시 왜병이 쳐들어오자 선생은 남원에서 명나라 원군을 위한 군량을 모으다가 왜병에 붙잡혀 일본 땅에 끌려갔습니다.

몇 차례나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한 선생은 왜승들과 교유하며 적정을 탐색해 우리 조정에 몰래 봉서[賊中封疎]를 보내는 등 적지에 붙잡힌 몸이나마 고국에 대한 충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간양록(看羊錄)」에는 왜의 당시 정황, 그에 대처해 우리 조정이 취해야 할 일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왜의 정치, 군사, 사회 제도와 국토에 관한 상세한 기록[賊中聞見錄], 자신이 겪은 치욕의 세월에 대한 기록[涉亂事述], 적지에 함께 붙잡혀 있던 조선 인질들을 향한 격문[告俘人檄]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란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선조는 특별히 선생을 영접해 술상을 내리고 벼슬까지 내렸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죄인을 자처하며 모든 걸 사양하고 향리에 묻혀 지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조정을 드나드는 무리들이 적지에 끌려가 죽지 않고 살아온 그를 험담과 모략으로 몰아냈던 모양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이 외면 받게 된 사정과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전라도 무안 현감으로 부임했던 유계(兪棨; 1607~1664)가 뒤늦게 강항 선생의 제자 윤순거(尹舜擧; 1596~1668)를 통해 「간양록」을 처음 접하고는 이렇게 장탄식을 합니다.

“시대와 운명이 서로 마주 부딪고 세상의 인심 또한 몹시 어려운 시절이다. 다시 찾아낸 옥(玉)에서 흠만 찾으려 들고 고운 살결에 흉터만을 꼬집어 내려 한다. 공(公) 같은 고절(孤節)과 애끊는 심정을 세상에 널리 알려 이를 표창하여 주기는커녕 도리어 깎아내리고 매장하려 들었으니 천하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이건 너무도 심한 일이다.
내 생각에는 인격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불행한 환란을 만나 목숨을 버려야 할 경우에 목숨을 버릴 줄 아는 굳은 의지가 있고, 애당초 스스로 구차히 살아날 뜻이 없는 사람이면 그가 살아났거나 죽었거나 붙들렸거나 돌아왔거나 그들이 당한 처지는 다르나 그 이치는 한 곬이라 이르고 싶다.”

강항 선생이 왜란으로 고초를 겪었듯이 유계는 40년쯤 후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 척화를 부르짖다 귀양살이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선생이 당한 처지와 조선 사회의 편협하고 경박함을 옛날 송(宋)나라 장식(南軒張栻: 1133~1180)의 말을 인용해 탓합니다.

“참으로 남헌 선생은 좋은 말씀을 하셨도다. ‘옛사람들은 뜻과 생각이 멀고도 깊기 때문에 절조와 의리를 중히 여겼는데 요새 와서는 뜻은 바쁘고 생각은 좁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만을 중히 여긴다’고.”

남헌 장식은 주자학을 일으킨 주희(朱熹; 1130~1200)와 벗하며 함께 학문을 논하던 당대의 학자였다고 합니다. 장식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의 좁은 생각, 야박한 인심에 크게 실망했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 400여 년 전 유계의 탄식을 돌아보고, 유계는 또 그보다 400여 년 앞선 장식의 한탄을 되새깁니다. 그러니 갈수록 인지(人智)가 깨어나고 문명은 발달해도 인간의 심지(心地)는 갈수록 휘고 언행은 부박(浮薄)해지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강항 선생보다 조금 앞서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땔나무, 친구, 포도주와 문장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했답니다. “친구와 장맛은 묵을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조건 새로운 것이 환영받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특히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더욱 오래 소중히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윤옥 (210.XXX.XXX.11)

예나 지금이나 선구자적 고매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기하고 깎아내리려하는 사람들이 꼭 생기는 것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제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기에 부끄러움을 외면하고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여중생들이 어린 유치원생을 다치게하는 동영상을 보며 얼마나 혼자 분개했는지 모릅니다. 그 행위도 스스로의 열등감을 그런식으로 해소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악설, 성선설이 있지만 인간은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한존재가 아닐까? 하는 비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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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4: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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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6)

개신교도 이지만 가끔 안국동에 있는 조계사에 가곤 함니다.
흙마당 이어서 학교마당 같고, 팔정도를 쓴 수레바퀴기 있어서요.
학생때의 정신 세계를 되새김질 하고,나이듬에 생기는 편견을 삭히고 오지요.
육체는 어쩔수 없지만 정신이라도 삮지 않으려고요.
세대차이 어쩔수 없지만 기성세대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풍노도 시대를 보냈던 젊은시절을 생각해서 낯선 이방인 같은 청춘들을 덜 낯설어 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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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09: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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