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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 잡지 마세요
신아연 2010년 12월 14일 (화) 01:52:48
워낙에 섬섬옥수는 아니었지만 식당을 꾸리면서 손이 많이 거칠어졌습니다. 거친 손뿐 아니라 늘 식재료를 다듬고 만지고 하는 통에 아무리 바싹 깎아도 손톱 밑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김형경의 소설 <성에>에서는 살면서 되도록 마주쳐서는 안 될 것 중에 '옛 애인의 현재 모습, 작가의 맨얼굴, 요리사의 손톱 밑' 따위가 있다고 했는데, 이 일을 한 이후 그 대목이 자주 생각나 혼자 웃습니다. 김 작가는 요리사의 손톱 밑에 대해 그것은 '청결'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맛깔스럽고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신비한 손에 관한 '환상'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만.

손님들 중에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손 한 번 잡아보자는 분도 계신데 그럴 때마다 거칠고 마디 굵은 손을 내밀기가 부끄럽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거친 손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세라 그것은 '원단'의 문제라고 지레 항변합니다. 태생적으로 제 피부가 비단결이었다면 몇 달 새 그렇게까지 손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탄식과 함께.

말갛고 투명한 얼굴에 아직도 솜털이 보송한, 자식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주방을 꾸려가면서 그네들의 손과 손톱 밑을 유심히 볼 때가 있습니다. 바싹 깎은 손톱이지만 그 밑은 기름때가 벗겨질 날이 없고 물마를 새 없는 손은 또래들보다 훨씬 투박합니다. 불에 거슬리고 덴 흉터와 자국도 여러 군데입니다.

하지만 미관상 문제일 뿐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처럼 무더운 때에는 마치 용광로 속에 들앉은 것처럼 뜨거운 불판을 종일 껴안고 일해야 하는 환경과, 아무리 장정일지라도 무거운 조리 기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늘 손목 통증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애처롭고 안쓰럽습니다.

요즘 호주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TV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를 뽑는 각종 요리 경연대회의 높은 시청률에 힘입은 탓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명 요리사는 연예인 이상 가는 인기와 돈과 명예를 거머쥔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잘은 몰라도 한국도 비슷한 분위기이지 싶습니다.

매스컴의 부추김에다 이 분야가 갖는 어느 정도의 '쇼'의 속성을 감안할 때 '끼'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요리나 요리사는 김 작가의 말처럼 '환상'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게를 막 열고 한참 직원을 뽑을 적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한 아가씨가 주방보조 겸 웨이트리스로 지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법학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쳤다는 그 아가씨는 평소 자신의 꿈이었던 요리사가 되기 위해 인생행로를 바꿔 지금은 호주에서 요리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가씨의 돌연하고 당돌해 보이기까지 한 선택에 적이 놀란 저는 '요리가 뭐길래' 하는 생각을 대뜸 했습니다.

또 한 아가씨는 제과 제빵 과정을 마치고 빵집에 취직을 했는데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연일 져 나르다가 몸이 골병들어 그만두고 그보다는 좀 쉬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여 이력서를 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요리사가 되는 것만큼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분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데 익숙지 않은 요즘 세대들에게 특히나 요구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진 분야가 이 분야라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식당 주방 일은 환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상당히 멉니다. 몇 자루나 되는 감자와 양파의 껍질을 벗기고 고기를 썰고 해물을 다듬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빨고 바닥 물청소를 하는 등, 고되게 반복되는 일상 중에 환상이 끼어들 여지가 도무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차라리 쑥과 마늘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참은 덕에 사람이 된 곰, '웅녀'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매운 눈을 비벼가며 시종일관되게 일정한 형태로 양파를 썰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적지 않은 분량의 오징어에 동일한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야 합니다. 쉬운 일, 편한 것만 찾는 요즘 세대들의 틈바구니에서 힘든 노동을 마다않고 정직한 땀을 흘리고 있는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하루 평균 8시간씩 단순 노동이 반복되지만 그 인내 속에 비로소 요리사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점점 거칠어지는 손과 손톱 밑이 이 일은 결코 환상의 영역이 아님을 매 순간 일깨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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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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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19)
오늘도 제 옆에는 매운 눈을 비벼가며 시종일관되게 일정한 형태로 양파를 썰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적지 않은 분량의 오징어에 동일한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야 합니다. ............. 이 글로 미루어보건대 아연님의 식당은 엄청난 손님으로 머지않아 세계의 맛집 명단에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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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3: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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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철희 (121.XXX.XXX.16)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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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 12: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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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142)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정말이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제 자신이 많이 깍여나가면서 다듬어 지고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 모습이 남들에게는 아름답게 비치고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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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22: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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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42)
국내 모 출판사 사장의 말입니다. “책이 히트를 치려면 저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사연’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글쟁이가 주방장이 되셨으니. 갈수록 심도 깊은 글을 생산하시니 놀랍습니다. 주방장이 잘 되신 것인가 글이 왜 이렇게 좋아 나 혼자 묻고 답하곤 합니다.
어느 세계적 작가는 하루 9시간을 꼬박 서재에 스스로를 가두어둔다고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지 평생을 그런 중노동을 했기에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제는 소질에 맞느냐 그리고 자기 하는 일이 운명적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각 자는 타고난 디엔에이가 있나 봅니다. 부디 좋은 결실 맺으시길 빕니다.그리고 더 여문 손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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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06: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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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저는 닥치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저의 디엔에이 인가 봅니다. 가다가 길이 바뀌면 또 그 길로 열심히 가지요. 그러면서 그 길에서 자잘한 재미를 찾는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라기보다 살다보니 또 이런 길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또 무작정 달려가고 있답니다. 나이가 이쯤 들고보니 딱히 좋아서 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어떤 일이라도 감사할 것을 먼저 찾게 되네요... 너무 피곤해서 깊이있는 좋은 글은 쓰지 못하지만 글의 현장성만은 어느 글쟁이보다 치열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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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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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04)
많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잔잔한 감동이 있어요,
요리사의 일, 주방의 일은 매우 힘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운 여름 더욱 불판에서 일하는 것도, 종일 서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오더에 빨리 음식이 나가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집안에서 부엌일 하는 것도 저녁한끼 만들려면 무려 2-3시간 계속 서
있어야 합니다. 이 또한 대단한 노동이지요. 하물며 식당 주방의 일은
전쟁을 불사하는 심정일 것입니다.(오더가 밀리는 시간엔)

박수를 보냅니다. 응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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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02: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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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어쩌면 그렇게 해보신 것처럼 잘 아시나요?^^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그 수고를 '돈 내고 먹으니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건 좀 이기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에는 몰랐는데, 한끼 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비록 돈을 받는다해도 섬김을 실천하는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요즘은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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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0: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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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비 (110.XXX.XXX.249)
오랜만에신국장글보았습니다작년호주갔던일이 조금떠오르네요 다들안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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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19: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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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110.XXX.XXX.249)
너무 큰 감동입니다.......아주 작은 감동이기도 하구요.
저는 중국 연변에 사는 사람입니다. 식당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식당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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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19: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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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110.XXX.XXX.249)
샬롬!

어제 남빙양에서 메로잡이를 하던 원양어선의 침몰사고로 아까운 생명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영원히 떠나게 되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원양어선 선장을 하던 때 입니다. 밤낮없이 조업을 하다보면 손바닥은 군살이 박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죽으로 덮여있는 것 같으며 잘 굽어지지도 않게 되게까지 하지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별도로 치더라도 참으로 힘들었던 여정이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원들보다 더 많은 잠을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손바닥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하기 위하여 열심을 하였던 것 같고,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거칠어진 손바닥을 보고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떤 것보다도 값어치가 있고 고귀한 삶의 현장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답니다.

자신보다는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내밀어진 손은 비록 거칠어도 사랑이 넘쳐서 정겹고, 따뜻함이 느껴지리라 봅니다.

각각의 개성을 가진 요리의 개체가 손가락을 통하여 조화를 이루어, 원하는 맛을 내는 것이 조화(harmony)의 극치이며 삶의 원천이 되는 영양을 드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넘치는 생각일런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싱그러운 봄기운의 향기와 맛을 손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잘 전해주도록 하세요. 사랑의 마음을 듬뿍 담아서 ....



이 완식 드림leews10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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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13: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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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요리사 손보다 더 거친 손은 농부들의 손이랍니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서게 되면 온갖 치장을 하여 농민 아닌 것처럼 위장을 해도 검은 얼굴색과 마디 굵은 손은 어쩔 수 없어 들통이 나고 만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세상의 모든 먹을 거리가 거친 농미들 손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맛있게 먹도록 요리사들의 거친 손이 수고한 탓에 세상사람들의 생명이 부지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진짜 알고 있을까요?
고운 손, 하얀 얼굴을 가능케 하는 것은 거친 손 까만 얼굴들이 땀흘려 일하기 때문임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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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10: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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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맞습니다, 선생님. 저도 이 일을 하면서 그래도 농부들 손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검게 그으린 얼굴과 거친 손은 감출 길이 없지만, 그 수고가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수고가 아닙니까. 알면 어떻게 모르면 또 어떤가요. 거친 세계를 사는 사람들은 풀뿌리처럼 강하고 단단한 내면의 무엇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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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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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72)
주방일은 힘들고 고된 노동의 장소이지요.
면벽수도 만 수도가 아닌 생활장소의 수련장도 되지요.
손은 거칠어 가지만,마음먹기에 따라 적덕(덕을 쌓음)의 업종이지요.
힘든일 잘 해낼 것을 기대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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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4 09: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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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저는 제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한 후 더욱 단단해지고 낮아지는 자신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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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0: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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