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를 접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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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를 접하다(1)

김창식

2010년 12월 16일 (목) 00:49:26

우연한 기회에 추사 (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라는 위대한 영혼에 접한 것은 올 한 해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추사와 서예이론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기 전까지 추사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그가 왕희지 이래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며 '추사체'라는 글씨체를 완성한 위대한 서예가라는 상식적인 것이었지요. 덧붙인다면 화첩이나 참고도록에서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판전(板殿)' 같은 글씨와 '세한도(歲寒圖)', '불이선란도(不二禪蘭圖)' 등 잘 알려진 문인화를 견식한 정도.

추사가 쓴 글씨나 그림의 테크니컬한 (또는 무기교의) 조형성과 가치를 논하는 것은 서예가나 추사연구가가 아닌 필자의 능력범위를 한참 벗어나는 일입니다. 단지 추사라는 거인의 체취를 접하며 일푼(一分)을 더듬는 과정에서 추사의 정신, 학문과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이 오늘날의 후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추사를 웅변하는 몇 개의 코드를 통해 지금의 우리 또는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현시성의 맥락을 짚어보고 싶은 연유입니다.

1. 문자향ㆍ서권기(文字香ㆍ書卷氣)

문자향ㆍ서권기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함께 추사를 상징하는 유명한 명제입니다. 추사는 좋은 서화를 위해서는 따로 법도를 배울 것이 아니라 맑은 마음과 높은 뜻(淸高), 예스럽고 단아한 인품과 정신(古雅)을 먼저 갖추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시문의 감성적 아름다움인 문자향과 학문의 정취와 정기를 아우르는 서권기는 어느 분야에서든 극의에 이른 사람을 대함에 느껴지는 광배(光背)와 같은 은은하고 맑은 기운을 일컬음입니다. 흠모하던 몇 분 시대의 사표가 우리 곁을 떠나고 주위에 고절(高絶)한 기품을 가진 분들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짐을 느껴 쓸쓸한 마음 가눌 데가 없습니다.

추사는 문자향ㆍ서권기를 중층적 의미로 사용한 듯합니다. 학문과 예술의 깊고 높은 경지에 닿으려면 기예와 기법보다 마음가짐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거나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져 앞에 놓이는 것은 아닐 테지요. 그것은 개인의 전심전력을 다한 노력과 연찬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추사가 말한 문자향ㆍ서권기는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결과론적 경계인 한편 치열한 자기 단련을 강조하는 방법론적 개념이 아닐까 추론해보는 것입니다. 문자향ㆍ서권기는 인과(因果), 또는 과정과 결과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과정과 결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어서요. 과정은 결과를 생산, 선취하고 결과는 과정을 추동, 추인하는 것이니까요.

2. 존고소원(尊古遡源)

당대의 걸출한 금석학자이기도 한 추사는 전거(典據)에 없는 말을 쓰지도 듣지도 말라고 당부합니다. 추사는 진흥이비(眞興二碑ㆍ북한산 순수비와 황초령비)를 고증해내는 과정에서 답사관찰, 동류비교, 탁본검토를 통해 의견을 세우고 전적근거(삼국사기 등)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직접 실증해 보였지요. 그가 수 대를 내려오는 동안 왜곡, 굴절돼 전해졌을 화첩(畵帖)보다 북비(北碑)를 중시한 소이(所以)이기도 합니다. 또한 추사는 옛 것을 거슬러 그 원류를 찾아야 함을 되풀이 강조합니다. 가까운 과거를 익혀 먼 과거의 연원에 이르는 행위를 말함이니 연어가 한사코 물살을 거슬러 원류에 회기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요. 추사의 사물에 대한 원리천착과 귀납적 접근자세, 실천방법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여 후학들에게 준열한 교훈을 주는 셈입니다.

'오리지널'을 강조한 추사의 경고를 오늘 날의 사회 현상에 대입해 봅니다. 시나브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나대고 짝퉁이 진품을 비웃고 판치는 감각적 세상입니다. 올 한해 사회를 들썩이게 한 몇몇 사태를 거론치 않더라도 근거가 확실치 않은 소문의 폐해를 우리 모두 절감하고 있지 않나요. 사이버 공간에서의 근거 없는 소문의 전파 속도는 빛의 속도에 견줄 만할뿐더러 그 익명성으로 인해 폐해가 한층 심각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선인의 경구도 있지만 요즘의 '말(言ㆍ馬)'은 날개달린 '페가수스'의 형상입니다. 출처를 알 길 없는 소문은 관련자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몸담고 있는 사회공동체에 불온한 땅거미를 드리웁니다. 소문은 절벽과 단애를 만들거니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작금의 사회 형국이 실로 그와 같지 않은지.

김윤옥 (210.XXX.XXX.119)

간송 전형필전에 보면, 서화, 골동품 수집에 일가견이 있던김용진(영운)의 서재에서 에서추사의 <난맹첩>을 보고나서 "어르신 덕분에 눈이 호사를 했습니다. 난을 치는 격식을 그린 단순한 화첩인데, 추사 선생은 그 격식마저 뛰어넘으셨군요. 정말 대단하신 분 입니다" 하고 감격했다 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 했는데 간송이나 창식님이나 남다른 관심 가지신 분들로 문화가 빛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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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5: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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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추사께써 제게 '藝林甲乙錄(추사 제자들의 모임)'에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김윤옥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평안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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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5 19: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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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18)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함니다.
옛 것을 거슬러 그 원류를 찾아야 함은 인간관계에도 필요하지요.
추운 날씨에 정신까지 개운해지는 추사의 정신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년말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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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8: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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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차덕희님 말씀에 십분 공감합니다. 저도 추사를 읽으며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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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8: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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