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정책’
방송통신위의 종합편성 사업자와 보도채널 사업자 선정 결과를 두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대체적인 여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케이블의 종합편성 TV는 보도 연예 스포츠를 망라해 방송하는 공중파 급의 방송사입니다. 기존의 KBS MBC SBS 3사(KBS2를 별도로 치면 4개사)보다 많은 방송사를 신규 허가 했으니 그런 평가는 당연합니다.

연합뉴스에 보도채널을 허가한 것은 ‘무감각의 정책’입니다. 연합뉴스는 연합통신 시절인 1993년 한국의 CNN을 만들겠다며 YTN을 설립했다가 경영실패로 경영권을 공기업에 떠넘긴 장본인입니다. 공기업이 대주주인 YTN에다 정부가 대주주인 연합뉴스에 보도채널이 더해지는 것은 보도채널의 정부독점을 의미합니다.

보도 채널은 그동안 YTN과 매일경제신문의 MBN 두 채널 체제였습니다. 이번에 매일경제신문이 종합편성채널로 옮겨가면서 보도채널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보도 채널수에 순증(純增)은 없습니다. 다만 군소 언론사들의 보도채널 신청을 배제하고 연합뉴스 하나를 선정한 것은 종편의 무더기 허가와 대조를 이룹니다.

이런 결과는 방송관련법의 입법과정과 국회에서 파행 통과될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조중동의 방송진출은 진보성향의 김대중 노무현 집권시기의 KBS MBC 대 조중동의 대결구도에 원인(遠因)이 있습니다. 현 정부가 자유경쟁 논리로 방송에서의 보수 대 진보의 균형을 꾀하려 한 것이 이번 결정입니다. 점수로 계량이 안 되는 이념성이 개재돼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정부의 입장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을 겁니다. 신규허가는 1개, 많아야 2개사에 그쳐야 기업적으로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위해 선별을 하게 된다면 후환을 감당키 어렵다고 본 겁니다. 싸우다가 망하거나, 합치거나, 반납할 수도 있는 일, 일단 내주고 보자는 쪽을 택한 겁니다.

보수 언론들도 4개 방송이 신규 참여하는 상황이라면 기업적으로 승산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회사의 자존심과 존립 기반이 걸린 방송 진출을 포기할 수도 없었겠지요. 이제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방송진출을 마냥 달가워 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방송광고의 연간규모가 2조5,000억원 수준인데 그나마 절대 물량이 줄고 있는 여건입니다. 반면 신규 4개 채널의 한 해 소요 경비는 1조원 가량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종편 재앙설’의 주된 논거입니다.

신문을 기반으로 한 종편TV의 광고영업은 신문광고영업과 연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자체 신문은 물론 여타 군소 신문, 기존 공중파 방송사들의 광고단가 인하로 이어질 것이고, 영세 케이블TV(PP)의 광고에는 직격탄이 될 것입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언론생태계 전반에 큰 혼란이 우려됩니다.

이의 대책으로 정부가 광고시장을 올 해 8조원 규모에서 2015년까지 13조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우선 의약품 광고를 늘린다고 했으나 그것은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술 광고를 풀지도 모릅니다. 메이저 언론사에 방송을 차려준 대가로 소비자의 속이 쓰리게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컨소시엄의 견고성도 논란이 될 것입니다. 각 사의 출자자 컨소시엄은 아직은 느슨한 상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나 장사가 안 되는 것이 명확한 사업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것이 기업들로서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벌써부터 3,000억원에서 4,000억원 규모로 써낸 자본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출자금 납입단계에서 투자축소나 철회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키 위한 조치일 것입니다. 그 밖에도 채널 번호, 프로그램 제작 및 편성에서의 특혜요구도 쏟아질 것입니다.

사사건건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정부가 기억해야 할 일은 1995년 지역민방 및 케이블TV 도입 당시 일본 등 외국으로부터의 대규모 방송장비 수입으로 1997년 외환위기 초래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일입니다.

종편의 장비는 민방이나 PP의 장비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외화낭비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황금 알을 낳는 오리’라며 무더기 허가된 지역민방이나 케이블TV의 대부분은 아직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종편도 그런 신세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종편 사업자가 이제부터 정녕코 해야 할 일은 허가 취지대로 종편이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할 조건을 만드는 겁니다. 언론사 간의 동업은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므로 당분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겠지만 그래도 어렵다면 어떤 식으로든 통합운영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종편사업자 선정이 언론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온다면 방통위는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언론에서 자유경쟁 논리는 자칫 언론의 자유를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론입니다. 한국의 종편 정책이 그것의 대표적인 실증사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