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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왕 이창호
임철순 2011년 02월 17일 (목) 01:18:00
이창호 9단(36)이 14일 열린 제 54회 국수전 결승 5번기 4국에서 최철한 9단(26)에 불계패함으로써 타이틀이 하나도 없는 무관의 기사가 됐습니다. 14세 때인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최연소로 타이틀을 딴 이후 22년 만입니다.

이 9단이 그 이후 획득한 타이틀은 140개(비공식 2개 포함)나 됩니다. 또 1990년 최다 연승기록(41연승), 1992년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17세ㆍ제3회 동양증권배), 1994년 최다관왕(13개 타이틀 획득) 등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신중해 ‘돌부처’ ‘3중허리’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9단은 국내외 팬들이 참 많습니다. 그의 두터움과 순수함 겸손함을 좋아하는 국내 팬들은 ‘두터미’라는 클럽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력과 인품이 출중한 이 9단이 왜 무관의 기사로 전락하게 됐을까? 그는 이제 한물간 것일까? 이 9단을 아끼는 사람들이나 한국ㆍ세계 바둑사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는 사람들은 단연코 그의 퇴조나 몰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성기만큼의 기력이나 실적을 다시 보이기는 어렵겠지만 이 9단이 이대로 스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9단의 성적은 올 들어 11전 4승7패로 승률 36%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저조합니다. 프로기사 랭킹도 국내에서는 7위, 세계에서는 13위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종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이없는 착각이 잦습니다. 참고 때를 기다리며 상대를 압도하고, 수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고 평이하게 국면을 운영하던 ‘기다림의 바둑’이 대마 잡기와 전투에 승부를 거는 기풍으로 바뀌어 거꾸로 망해 버리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전성기와 달라진 점은 그가 나이 들었다는 것, 작년 10월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 체력이 점점 저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 9단의 바둑에서 치열함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기사는 “이창호 9단은 중ㆍ후반에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요즘 젊은 기사들이 연구를 많이 하면서 바둑이 강해진 게 이 9단이 고전하는 이유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지금 국내ㆍ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이세돌 9단은 결혼 직후 생활의 안정을 찾아서 그런지 두면 이기는 불패의 기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경우가 다른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총각 이 9단의 여성교제를 오랫동안 궁금해 하며 결혼이 그의 바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관심을 기울여왔는데, 아직 이 9단은 바둑과 결혼생활의 조화로운 행마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9단이 어려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 누구보다 먼저 출중한 기재를 알아보고 찬탄해 마지않았던 서봉수 9단은“이창호의 적은 이창호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 9단의 말대로 이 9단이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 몸을 추슬러 정상의 기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의 스승 조훈현 9단도 1995년에 이 9단처럼 20년 만에 무관이 됐다가 그 뒤 8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연 바 있습니다.

지금 맥심배 4강에 올라 있는 이 9단은 22일 목진석 9단과 결승 진출전을 벌입니다. 여기에서 이기면 최철한 9단 대 박영훈 9단 전의 승자와 결승전을 치르게 돼 경우에 따라서는 국수 위를 빼앗아간 최 9단에게 설욕을 하면서 바로 무관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국수 자리를 빼앗긴 대국은 불과 98수라는 단명국으로 끝났습니다. 이 9단은 1992년 조훈현 9단과의 대국에서 89수 만에 돌을 던졌고, 그보다 4년 전에는 역시 조 9단과의 대국에서 80수 만에 돌을 거둔 일이 있습니다. 조치훈 9단은 일본 최고의 타이틀인 기성(棋聖) 방어전에서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ㆍ사망) 9단에게 69수 만에 패배를 선언한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일찍 돌을 던지는 것은 상대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 깨끗한 패배 선언이라는 점에서 좋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14일 대국은 오전 10시에 시작돼 오후 3시 56분에 끝났으니 점심시간(오후 1~2시)을 빼면 5시간 가량 걸린 셈입니다. 그런데 이 9단은 돌을 던진 후에도 대국시간의 절반인 2시간 30분 동안이나 복기를 했습니다. 타이틀을 빼앗긴 사람에게 복기는 정말 힘겨운 일입니다. 왜 졌는지, 무엇이 그 국면에서 최선의 이 한 수였는지를 따져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9단은 대국 상대인 최철한 9단, 참관하러 온 이세돌 9단과 함께 셋이서 진지한 복기를 했으니 훌륭합니다.

그런 진지함과 겸손이 이 9단에게는 큰 자산입니다. 다시 일어서서 오래 오래 좋은 기보를 남기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경우 ‘면돗날’ 사카타 에이오(坂田榮男ㆍ1920~2010) 9단은 80세가 돼서야 현역에서 은퇴했고, 그와 함께 일세를 풍미했던 후지사와 히데유키(藤澤秀行ㆍ1926~2009) 9단은 67세 때 왕좌전에서 우승하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 ‘살아 있는 기성’ 우칭위엔(吳淸源) 9단은 95세이던 2009년에 이창호-최철한의 제 6회 응씨배 결승 5번기 2국을 휠체어를 타고 입회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길게, 오래 활동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창호 9단만이 아니라 조훈현(58) 서봉수(58) 유창혁(45) 이세돌(28) 9단…이런 불세출의 기사들 모두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조치훈 9단(55)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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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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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비 (121.XXX.XXX.16)
무관은 단식이요 단식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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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05:52:34
0 0
윤준식 (121.XXX.XXX.16)
바둑과 인생을 음미하시는 멋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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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05: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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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74)
바둑에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아들아이가 초등시절 제 사촌형과 오목을 두었는데 백전 백승이라 혹시 재능이 있나 싶어서 4학년 때 바둑 학원에 데려갔지요. 학원에서 수강료를 피아노 레슨비 보다 조금 더 받아야 겠다기에 가계에 부담이 되서 그냥 데리고 나오다가 그 때가 80년대 초여서 이름도 생소한 퍼스널 컴퓨더 강좌 포스터를 보고 데려간 것이 인연이 되서 지금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 기업 연구원들 대상으로 강연을 가서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돈이 없어서 바둑을 포기하고.... 로 지금의 자신이 된 얘기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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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22: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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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사람은 결국 자신의 천성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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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8 05: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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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211.XXX.XXX.129)
관심 만땅 글입니다. 바둑에도 조예가 깊은신 걸로 사료됩니다. 저는 오로바둑에서 5,6단이 왔다갔다 하는데요, 이창호에 대한 저의 바램이 이 글에 전부 나와 있군요. 이창호의 건투를 새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세의 영웅이 30대의 나이에 스러짐은 아니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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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16: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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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식 (211.XXX.XXX.129)
저도 바둑뉴스를 늘 봅니다만 이렇게 분석하거나 종합하는 사고는 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임주필님의 글을 보니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세상에는 가볍게 넘길 일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이창호의 부활을 염원합니다. 우리도 언제 한 번 만나 수담이나 나누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소주 뒤풀이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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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13: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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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 (121.XXX.XXX.244)
어디 바둑 기사들만 그런가요.
임주필도 90세 넘어까지 오래 오래 건필을 유지하세요.

지난 설에 복 많이 받으셨을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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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09: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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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설마 그렇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치매나 중풍환자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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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14: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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