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과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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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과 재개발

김영환

2011년 02월 23일 (수) 00:30:09

지난번 경기도 어떤 도시에서 재개발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재개발 공청회는 경과보고만 듣고 중단되었죠. 재개발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곳에 따라서는 재개발이 분명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돈 안 들이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지자단체의 수단으로 변질된 감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공원 조성까지도 재개발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시키려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게 재개발의 순탄한 진행이 어려운 데도 달려드는 것은 건설 업체들이 공사를 수주하려고 혈안이기 때문이죠.

재개발의 큰 맹점은 재개발 사업을 일으킬 당시에는 추진위원회는 물론 누구도 재개발 이후의 미래상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토지나 건물주들에게 들어갈 비용과 그에 따른 반대급부는 얼마나 얻을 것인지 제시하지도 못합니다. 현상 유지가 좋은 사람들에게는 동네가 좋아지니까 찬성하라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해 반대가 생기는 것이죠.

‘도시재생’이라는 해괴한 이름의 삽질은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는 영세서민들의 주거대책을 막막하게 만듭니다. 건물을 소유한 소규모 상공인들은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 중 몇 년을 수입 없이 기다려야 하고 높은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임차한 상인들은 턱없이 낮은 보상금을 받고 물러나야 합니다.

가령 세운상가 재개발은 오랫동안 표류하다가 무산위기에 처했습니다. 덕분에 건물주들은 8년 동안 임대수입이 없다는 군요. 신도시처럼 고층건물을 지어 사업비를 조달하려다가 종묘라는 문화재 보호에 저촉되어 층수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게 되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졌다는데 이젠 외자까지 끌어들이려 한답니다. 부실한 계획으로 독주하는 행정의 횡포를 보여주는 것이죠.

서울이건 인천이건 엔간한 대도시들은 재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재개발이 끝나면 유토피아라도 오는 양 착각과 환상을 불어넣으면서 말이죠. 재개발의 대가가 무엇입니까? 반환경적으로 하늘을 찌르는 주상복합 건설로 돈을 남겨보려는 상술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인천 가정동 경인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의 루원시티 사업은 1조원이 넘는 보상금을 지불하고서도 공사가 중단되어 유령마을이 되어갑니다. 부술 돈도, 지을 돈도 막막한 실정입니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나 지금 정가에서 부상 중인, 목표 없는 개헌론이 그 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헌을 하려면 전체적으로 헌법의 어느 조항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으니 어떻게 고쳐야겠다는 명확한 구조를 제시해야 하죠. 그저 21세기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한가하고 애매한 소리만 늘어놓아 진척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 문제가 정치인들 때문이지 헌법 때문입니까? 사법부나 헌재의 오락가락하는 판결 때문이지 헌법 때문입니까? 공직자들의 부패 하나만이라도 막아보자면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 찬성하는 공직비리수사처를 만들면 됩니다. 권력자들 스스로를 정화할 방안은 많은데도 불구하고 헌법만 고치면 된다는 파렴치한 발상은 자신들의 허물을 모두 헌법에 전가하는 행동이죠. 국가가 나아갈 명쾌한 비전도 없이 어찌어찌 하다가 권력을 쥔 사람들은 헌법을 탓하지 말고 있는 법 테두리 안에서라도 잘 하라는 말이죠. 걸핏하면 문을 닫고 있는 국회부터라도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드시라는 말입니다.

당파 싸움 때문에 가뜩이나 정치가 불안정하고 지하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20%(2008년 기준)에 육박할 정도로 부패한 나라인데 권력을 분점한다고 내각책임제라도 해보시죠. 야당은 아마 매일 내각 총사퇴 결의안을 제출하려 들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안보나 경제가 잘 될 턱이 있겠습니까? 그런 게 지겨워서, 독재가 지겨워서 1987년 체제는 가장 훌륭한 5년 단임 헌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정치가들은 잘 알아야 합니다. 설득력 있게 프로세스를 제시할 능력이 없으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목표도 정하지 않은 항로를 가려는 배에 누가 선뜻 탑승한답디까?

홍태식 (115.XXX.XXX.148)

정말 오랜만에 시원한 글 읽었습니다.분수를 넘어서는 의욕과 소영웅심에서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미문으로 호도하는 식상한 글들을 일거에 퇴치해 버린 것 같은 식견과 분석력에 감동하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글이 갖는 가치를 알아볼 것입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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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4 21: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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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115.XXX.XXX.14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회 리더들, 특히 정치인들의 지나친 이해타산과 무능함 그리고 전체적인 부조리를 통제하는 사회 시스템이 활발히 작동하여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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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4 21: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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