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웃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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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웃 나라

김영환

2011년 03월 28일 (월) 02:24:47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 ‘부악36경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

일본의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에 ‘부악(富嶽) 36경’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후지산을 서른여섯 곳에서 보고 그렸다는 이 판화는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의 작품입니다. 그중 하나에 후지산을 먼 배경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 높은 파도 앞에 금세 뒤집어질 듯 위태로운 배들이 떠있는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冨嶽三十六景神奈川沖浪裏)’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최근 동일본 산리쿠(三陸) 지방을 폐허화한 3․11대지진과 해일을 연상시킵니다. 그림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가츠시카가 그린 큰 파도는 일본인들의 일상에 깊게 박혀 있을 터입니다.

일본인들은 자연과 싸우면서 삶을 지탱했습니다. 드라마이긴 하나 ‘초밥왕자’의 아버지는 싱싱한 횟감을 얻기 위해 어선을 타고 늘 바다로 나갑니다. 하루는 횟감으로 최고라는 청새치를 잡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그 창끝 같은 주둥이에 꿰뚫려 물속으로 사라집니다. 홀로 남은 아들은 가업인 초밥을 잇지만 요리대회에 나갈 때마다 생선의 눈을 보면 거대한 청새치의 공격 장면이 떠올라 눈을 뒤집고 발작합니다.

일본인들에게 자연은 다정한 이웃이 아닙니다. 펄펄 끓는 땅은 어디에서나 일본인들에게 온천의 즐거움을 주지만 지하는 그 위에 사는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대지진의 참극을 반복해 왔습니다. 지진은 일본인들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입니다. 1주일이 멀다하고 작은 지진파를 느끼게 되는 것이 일본에서의 경험입니다. 일본인들의 속언은 무서운 것을 ‘지진, 벼락, 화재, 아버지“순으로 꼽습니다.

최근 일본 지진에 대해 여러 실언이 있었습니다. 걸핏하면 한국을 헐뜯는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78․石原慎太郎) 씨는 대지진 발생 불과 사흘 뒤인 3월14일 “일본인의 정체성은 아욕(我慾)이다. 이 쓰나미를 이용하여 아욕을 한 번 씻어낼 필요가 있다. 역시 천벌이라고 생각한다”며 재해의 천문학적 무게에 비해 너무나 경망한 입을 열었습니다. 항의가 빗발치자 “말이 모자랐다. 발언을 철회하며 깊이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소설가인 그는 자신의 요설을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알 것입니다. 나가다 요시아키(長田義明) 오사카 의회 의장도 대지진에 대해 “오사카로서 천혜라고 한다면 말이 나쁘지만 정말로 이 지진이 일어나 좋았다”라고 했습니다.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일본인들의 망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일본의 재앙을 비판하는데 끼어들었습니다. 저명한 목사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답니다. 한 도지사도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실종만 2500여명, 연락불통 만 여 명이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있다.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린다”고 대지진 재앙을 종교와 결부시켰습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받는 이런 발언에 왜 가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른 들판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남을 위한 먹을거리를 부지런히 생산하는 게센누마(汽仙沼)의 농민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일본인은 범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유일신의 규범이 아니라 존재하는 상황을 중시하는 민족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노스리지에서 1994년 일어난 규모 6.7 지진에선 72명이 숨지고 9,000명이 다쳤으며 재산피해액은 200억 달러가 넘었죠. 지난 2월22일 아름다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는 규모 6.3지진으로 한국인을 포함해 160여명이 숨지고 12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냈습니다.

자연환경은 순한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인들은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16세기 말 처음 쌓은 웅장한 오사카 성의 축성술, 지진 다발국이면서 혼슈(本州)의 아오모리(靑森)와 홋카이도(北海道)의 하코다데(函館)를 연결하는 길이 54킬로미터의 세이칸(靑函) 터널(해저구간 23.3km)은 내진 기술의 상징입니다.

일본은 지진파를 흡수하도록 건축물 하부엔 일종의 베어링을 달고 상부엔 무거운 쇠를 올려놓기도 합니다. 일본은 영불 해저터널 건설에도 일본의 기술이 공헌했다고 자랑하며 지진파를 흡수할 스마트 소일(smart soil)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런 과학적 풍토로 ‘노벨상 프로젝트’가 없어도 샐러리맨이 노벨상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몇 만 명의 목숨을 삼키는 일본의 자연재해 앞에서 종교는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일본에서 1퍼센트 정도의 신도를 가졌다고 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처럼 자연의 폭주 앞에서는 인간의 연대가 신에의 기도보다 더 시급한 구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800여 명의 원전 결사대가 방사선 피폭에도 생명을 걸며 몰려드는 것이겠지요.

대지진을 둘러싼 황당한 발언들은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가 이웃나라 일본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웅변합니다. 우리들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아는 것보다 훨씬 적게 일본을 알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에게 일본은 아직도 ‘이웃의 먼 나라’라는 생각입니다.

정화수 (115.XXX.XXX.210)

잘 읽었습니다. 우키요에(浮世畵)의 한자는 浮世繪가 맞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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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3 1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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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115.XXX.XXX.178)

풍조를 말할 때는 당연히 고유명사인 '浮世繪'로 써야하는것인데 착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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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2: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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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오 (115.XXX.XXX.244)

아전인수 적 사고 는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합니다. 역지사지 적 사고라면 얼마나 좋을가요. 지정학적 위치와 변화에 따라 즉 환경적 조건에따라 발생하는 천재지변을 사람들이 자기입장에서 나름대로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답답한 일입니다.
이제 지구의 어느곳도 안심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태양이 폭발하고 지구의 내압이 변하고 지구의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모두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때입니다. 易之思地 의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이웃나라 일이 곧 우리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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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9 1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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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 (203.XXX.XXX.116)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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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1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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