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를 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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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기를 맡으면

방석순

2011년 04월 18일 (월) 00:51:50

“어머니, 또 올게요~!”
아내는 늘 하던 대로 길게 외치듯이 인사를 합니다. 우물우물 입 안에서 인사하는 저와는 딴판입니다. 어쨌거나 아내에게조차 꺼내 보이지 못하던 마음속을 털어놓고 일어서니 한결 편안해집니다. 역시 무덤은 떠난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날이 포근해서인지 봉분 둘레에 심은 꽃잔디가 막 꽃을 피울 듯 발긋발긋해 보입니다. 주위에다 채송화 씨를 덧뿌리려 했더니 아내는 꽃잔디가 상한다며 한사코 말립니다. 군데군데 꽃잔디가 허전한 곳에만 뿌리고 나니 어쩐지 서운한 기분이 듭니다. 뒤쪽으로는 분꽃 씨도 두어 알 묻었습니다. 봄날 저녁이면 나팔처럼 고개를 쳐드는 분꽃을 따 입으로 빼액~ 소리를 내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한결 따뜻해진 날씨에 햇볕은 구름에 가려 성묘에 맞춤한 날입니다. 두어 기 옆 모녀의 말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잘 계셨어요?”
아마도 집안 어른들을 모두 한 곳에 모신 모양입니다.
“여보, 날 좀 데려가구려!”
“안 돼, 그건!”
별난 인사에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딸은 화들짝 놀라며 어머니의 어깨에 매달립니다. 산소를 돌아보는 모녀의 모습이 봄 풍경처럼 정겹습니다.

묘원을 나서니 온 들판이 푸른빛입니다. 깨알 같이 작은 풀꽃들도 질펀하게 깔려 있습니다. 길가 공터에 차를 세웠습니다. 제물과 함께 호미, 면장갑, 비닐주머니를 챙겨 작심하고 나선 날이니 이럴 땐 그저 아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평화를 위한 길입니다.

“그건 뭐야?”
“늘 캐던 냉이잖아요.”
한 해 겨우 한두 번 들판에서 보는 냉이니 여느 잡풀과 분간키 쉽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잖아?”
“이건 고들빼기예요. 여기 씀바귀도 있네!”
“에이, 씀바귀는 버려 둬! 먹지도 못할 걸.”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 건데 그래요. 쓴 나물이 보약이라구요.”
뜻밖에 밭둑을 따라 무더기로 깔린 나물을 발견하고 아내는 신바람을 냅니다.

어이구, 먹고 죽지 않으면 다 나물인가. 예전 처가에서 처음 씀바귀 나물을 한입 물었다가 하마터면 밥상에다 뱉을 뻔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쓴 걸 음식이라고 상에 올리다니.
“그래. 냉이, 고들빼기까지는 참고 먹어 줄게. 씀바귀는 절대 섞지 말고 당신 혼자 먹어!”

차를 세워둔 공터에도 이름 모를 풀들이 아우성치듯 돋아나고 있습니다. 그 딱딱하게 다져진 땅을 쩍 갈라놓으며 솟아오르는 노란 새싹을 보노라면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봄에도 학업이 힘들어서, 세상살이가 고달파서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옵니다. 모두들 봄의 들판에 나와 새싹들의 합창이라도 들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나물은 캐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지만 다듬는 건 더욱 고된 일입니다. 고 조그만 풀을 한 포기씩 집어 들고 흙을 털고 잡풀을 떼어내고… 꼼짝 없이 붙잡혀 조수 노릇을 하면서도 깨끗하게 씻긴 나물들이 파릇파릇 되살아나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해 보입니다.

저녁상은 온통 나물 밭입니다.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나물에 냉이국, 거기다 장에서 사다 무쳤다는 참취 나물까지.
“뱀 나오겠다. 뱀!”
투정하면서도 온방 가득 퍼지는 봄 향기에 흐뭇해집니다. 직접 들판을 헤매며 캔 나물이어서 그런지 맛도 더욱 그럴싸합니다.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어.’ 송강(松江鄭澈)의 시조 가락이 절로 나올 듯합니다. 돌아가신 이 덕분에 더욱 사는 맛을 느끼게 되는 봄. 마음 저 구석에 몇 가닥 남아 있던 잔걱정들까지도 봄눈처럼 녹아내리는 봄날입니다.

송수남 (121.XXX.XXX.155)

'역시 무덤은 떠난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대목이 집 사람 장례 때 목사님이 오셔서 "장례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라며 건강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들으며 기분이 별로였던 생각도. 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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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10: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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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21.XXX.XXX.155)

^^* ^(^ ^)^ <^^! -> 맨 마지막 거는 거수 경례하는 겁니다. 잘 앍었다고요. 때가 실제상황이면서도 좀 늦은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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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10: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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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155)

꽃 박사님 앞에서 나물 이야기 하는 것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 ^^ 4월 초순 이야긴데 글 차례에 따라 늦어졌습니다.

물론 온 산과 들을 마구 헤짚는 것도, 공해 심한 도로변 나물을 캐는 것도 삼가해야 할 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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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10: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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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121.XXX.XXX.155)

좋은 글 고맙습니다.산지에서 캔 나물이야 별 탈이 없겠지요.그런데 올림픽대로 변의 쑥이나 냉이를 캐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는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이들이 다 먹을 것인지 아니면 시장에 내다 팔 것인지 늘 궁금합니다. 아주머니들이 캔 타이어 분진, 미세금속 먼지,아황산가스,황사 분진 등 각종 오염물질에 찌든 봄 나물을 먹으며 좋아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행여 몇푼 벌겠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선량한 아이들에게만은 먹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의 미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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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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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27)

골목길에서 몇 발자국 나서면 엄청 큰 프라타나스 가로수가 있습니다.
늦게 잎을 싹트이고 늦게까지 무성한 잎사귀를 볼수있어 힘들때에 위안이 되는 나무지요.
사람에게도 위안을 받지만 자연이 주는 위안도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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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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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선 (59.XXX.XXX.173)

농촌에 살면서도 미쳐 느끼지 못했던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평안한 글이었습니다. 봄나물을 좋아하시는 사모님이 계시니 더 행복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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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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