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적성도 좋지만
신아연 2011년 04월 21일 (목) 00:12:20
대학 졸업반인 아들애가 밥상머리에서 며칠 전에 친구가 학교를 그만뒀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고등학교도 함께 다니고 책을 읽어도 같은 걸 읽으며 생각도 비슷해서 대학도 둘이 같은 과를 택해 갔더랍니다.

“내가 영문과를 간 것도 걔 영향이 컸는데…”

“ 기왕 시작한 공분데 졸업을 코앞에 두고 그만둔 건 좀 그렇네.”

“대학 공부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거기다 자기한테 안 맞는 걸 어떻게 끝까지 해요. 잘 그만둔 거지.”

호주에 살면서 신물나게 들어온 레퍼토리가 또 시작되려나 봅니다. 바로 ‘적성타령’입니다.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면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유별나게 구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밉상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졸업을 1년도 채 안 남겨 놓고 휴학이라면 모를까, 아예 관둬 버렸다니 역시나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성 타령’은 아무래도 대학에 진학한 부류에서 심한지라 대학생들 중에는, 예를 들어 공대에서 약대로, 의대에서 법대로, 또 그 반대로 옮겨다니는, 이른바 전과를 일삼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니 나이는 점점 차가는데 노상 1학년인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영부영’은 꿈도 꿀 수 없는, 시쳇말로 ‘빡세게’ 공부해야 하는 이 나라 대학 현실에서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계속한다는 건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여북하면 새내기 대학생들 사이에 “나 다시 고3으로 돌아가고파~ ” 라는 절규가 터져나오겠습니까. 매년 낙제생이 부지기수니 이래저래 호주에서는 대학생이 있는 집에다 대고 “댁의 자녀는 지금 몇 학년입니까?” 혹은 “언제 졸업하나요?” 라고 묻는 것은 실례라고 하지요.

물론 적성에 맞는 미래를 계획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만큼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누군들 자신의 소질이나 전공 분야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느라 평생을 부대끼고 종당엔 회한에 젖고 싶겠습니까.

사전을 찾아보니 적성이란 어떤 일에 적합한 소질이나 성격, 적응 능력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일’에 알맞은 소질을 타고났는지, 나아가 그 ‘어떤 일’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다만 그 ‘어떤 일’을 꾸준히 해보는 도리밖에 없겠지요. 또한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해봐야 할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저희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한 청년의 예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청년은 3년간 요리사 과정을 밟으면서 소위 자기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수시로 했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길을 모색하기에는 지나간 시간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기가 송구했다고 합니다. 22년간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을 생각하면 적성을 따지기 이전에 무슨 일을 해서라도 이제부터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외동아들로 왕자처럼 자랐다고 하는 이 청년은 ‘왕자답게’ 집에서는 부엌에라곤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청년이 어엿한 요리사가 되어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낯선 나라에서 호구지책 이상의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가요.

만약 요리사가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이제는 이 일이 좋은지를 물으니 이전에는 IT계통을 하고 싶었지만 하다보니 요리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3년 전, 요리 공부에 회의가 일 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이 참 잘한 일이었고, 무슨 일이든 힘든 고비를 넘겨봐야 진정 그 일이 내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호주에 국한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말이 적성이지 일이나 공부에서 모자라는 인내심과 게으름, 의지박약, 두려움 따위에 대한 핑계를 찾느라 그렇게 둘러대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 눈에는 ‘적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쳐본들 일정한 고비를 넘기는 시점까지 노력하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전공을 택하건 공회전의 반복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적성이고 뭐고 취업만을 목표로 내달려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딱하지만 적성타령하며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에너지 낭비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가게의 요리사 청년처럼 부모와 사회에 대한 성숙한 자세와 책임을 우선에 두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적성도 자연스레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청년들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한승국 (110.XXX.XXX.249)
식당 일로 본업을 찾은 듯한 본인의 이야기 같습니다.^^* 글 긁어서 우리 따 아이에게 메일로 보내놨습니다. 철 좀 들라고요. / 대한항공 한승국 드림
답변달기
2011-04-22 10:54:45
0 0
이주호 (110.XXX.XXX.249)
지인들이 보기에도...제가 보기에도.. 지금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틈만나면 스멀스멀 생겨나는 두려움, 게으름에 또 다시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픈 충동은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신아연님의 글을 읽기 전엔 저의 고민이 적성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었는데....이제보니 두려움반 게으름 반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답변달기
2011-04-22 10:53:56
0 0
이종완 (110.XXX.XXX.249)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소질과 취향이 다른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를 도리켜 보면 적성 타령은 핑게나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공부하는 것을 둘도 없는 행운으로 여겼고 공부를 안 하면 죽는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 이외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유혹과 선택과 주의 산만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공부하는 습관과 혼자서 공부하는 습성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남이 밥을 먹여 주지만 좀 자라면 스스로 챙겨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적성보다 의욕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의 머리는 대동소이하고 노력하면 성공합니다. 적성 타령은 사치입니다.
이종완, 연변 과기대 교수
답변달기
2011-04-22 10:53:11
0 2
홍승철 (110.XXX.XXX.249)
신아연 님의 글을 읽으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이유로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삶을 정말로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나와는 꽤나 다른 경험을 하였지만 이를 통해 얻은 지혜는 '아하 그렇지' 하게 되거나 때로는 같은 것이다."
항상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삶과 생각을 보여 주셔서.
답변달기
2011-04-22 10:52:26
0 0
marius (220.XXX.XXX.171)
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해도 자기 페이스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조깅을 해봐도 조금만 자기 페이스를 지키지 못하며 곧장 무리가 오고 탈이 납니다. 사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다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갈 길은 자기가 잘 알아서 가야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말이 또 있겠습니까. 문제는 독립이라 봅니다. 몸과 정신이 다 크면 서로 피차간에 독립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독립해서 자기 페이스대로 가는 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 괘도를 때로는 이탈해도 다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남이 이렇다 마다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한 번 다시 생각할 소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1-04-22 10:47:59
0 0
신아연 (110.XXX.XXX.249)
자기 갈 길을 자기 페이스 대로 간다- 인생을 알차게 살아가는 방법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놔두질 않지요. 아니 내가 세상에 대해 의젓하게 반응하질 않지요.비교하고 경쟁하고 안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아주는 것처럼 피곤한 세상입니다. 말씀하신 '독립'은 타인으로부터의 독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답변달기
2011-04-22 11:32:42
0 0
인내천 (112.XXX.XXX.244)
현실이 허락한다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나서는 것이 최상이겠죠?
하지만 현실이 허락치 않은데도 적성만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 하고있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차선이구요.
울 큰 아들은 전공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토목일을 제치고 조선소에 들어가 기계 만지기를 좋아하는 적성을 택하여 즐겁게 일하고 있고,둘째는 적성에 맞아 정보통신을 전공했는데 그 분야의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적성과 상관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즐겁지는 않지만 크게 짜증스럽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호주야 어떨지 모르지만 이곳 고국은 적성이 문제가 아니라 취직이 우선이니까요 ~~^^
그래도 물불 가리지 않고 적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애겐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답변달기
2011-04-21 10:41:58
0 0
신아연 (110.XXX.XXX.249)
적성의 의미를 꿈으로까지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적성대로 사는 것은 한번 뿐인 인생에서 정말 행운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고 본인의 의지도 시나브로 퇴색해 가는 게 우리네 보통 인생이 아닐까요.
두 자제분은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답변달기
2011-04-21 19:57:04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