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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get old"
신아연 2011년 05월 25일 (수) 00:25:36
가게에 자주 오시는 손님 중에 노년의 오누이가 계십니다. 오전 열한 시 무렵, 따스한 차와 커피, 토스트 한 쪽을 가운데 두고 조근조근 오손도손 말씀을 나누다가 돌아가곤 하십니다. 두 분은 불편한 걸음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늘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데 하루는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뜨리셨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제가 부축해 드리자 온화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Don't get old(늙지 마세요)" 하시는 게 아닙니까. 얼결에 저도 "impossible(가능한 일인가요?)"이라며 웃었지만 할아버지의 그 한 말씀이 노년의 서글픔과 무기력, 신체적 불편과 한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한동안 어두운 여운을 남겼습니다.

늘 함께 오시던 노부부가 어느 날부터는 할머니 혼자만 오시길래 망설이다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니 그 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손이 떨리던 분이라 사기잔 대신 뚜껑 덮은 종이컵에 차를 담아드리곤 했지만 건강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돌아가셨다니 선뜻 믿기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도 할머니는 이따금 혼자 커피를 마시러 오십니다.  

우리 가게에는 유난히 노인 손님이 많습니다. 탄력 잃고 주름진 뺨일지언정 발그레한 볼터치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하게 멋을 낸 할머니들이나, 고령임에도 여성을 배려하는 신사도가 여전히 몸에 밴 할아버지들을 뵐 때면 마음이 절로 훈훈해집니다. 그런가 하면 혼자 힘으로는 외출할 수 없어 간병인이나 보호자에 이끌려 휠체어에 의지하여 나들이를 나오는 분, 보호시설에서 지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자상한 사위와 도란도란 점심을 함께 하며 아기처럼 투정을 부리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상황이 조금 낫든 그렇지 못하든 노년의 무력함과 우울, 서러움과 외로움이 몇 마디 격려나 위로로 가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가게의 노인들처럼 비록 거동은 불편해도 아직은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드실 수 있는 분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10년 전쯤 노인 요양 시설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호주의 노인시설은 건물을 둘러싼 세밀한 조경과 운치있는 경관으로 바깥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고급스런 휴양단지를 연상케 합니다.
단촐하지만 정갈하고 품위있는 내부 장식 또한 차가운 병동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정작 노인들에게 시설 입주는 곧 무덤을 의미한다는 것을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으니 무덤은 무덤이되, '아직은 산 자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거대한 묘지에 출입문을 달고 직원인 우리들은 순번을 정해 무시로 그곳을 들락거렸습니다. 마치 우리는 영원히 살 자인 것처럼 죽어가는 노인들을 무척이나 가엾어하고 동시에 직업적임을 핑계삼아 지나치게 무심하거나 덤덤하게 굴었습니다.

야간 근무시간,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핏기없는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구천과 이승을 넘나드는 혼령과도 같이 복도를 배회하던 노인을 가까스로 달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들던 섬뜩함과 기괴함, 다음 근무 교대 시간에 듣게 된 그 노인의 그날 신새벽의 임종 소식, 왜 하필 나와 부대낀 그 날... 내 탓이 아님에도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 따위로 우울함이 반복되면서 알록달록하던 생활이 흑백 텔레비전 속처럼 갑자기 무채색으로 보이는 것도, 아기자기하던 일상사가 두터운 회칠을 한 듯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것도 모두 그 일을 시작한 이후인 것만 같았습니다.

지나친 감수성으로 힘들어하는 저를 주변에서는 일은 일로 끝내야지 자기 생활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말로 딱하게 여겼지만 어떤 영화나 소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을 때의 재미없음과 시들함처럼 모든 삶의 비참한 종말을 미리 보아버린 것 같아 그 무렵 저는 시들시들 병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6개월을 못 채우고 결국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내 여생의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양로원에서 배웠다고 할 만큼 갓 40세에 경험한 그때의 일이 50을 코앞에 둔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식당을 꾸리면서 다시 노인들을 모시되 그때처럼 병들고 아픈 분들이 아닌, 젊은 여인 못지않게 화장과 장신구로 멋을 낸 건강한 할머니들, 여전히 넘치는 매너로 파트너를 에스코트하는 노년의 신사를 자주 뵐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남다른 행복입니다. 와인잔을 부딪히며 왁자지껄 시끌벅적 떠드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성과 주고받는 백발 홍안들의 청춘 못지않은 은밀한 눈빛들이 노년의 삶도 여전히 즐겁고 흥겨울 수 있다는 것을 제게 속삭여 주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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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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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15)
이 나이쯤 되면 '누가 나오라고하면, 지체하지말고 뛰처나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많큼 노년의 고독이 무섭다는 얘기겠지요.어렷을 적엔 혼자 있기를 좋아했는데 이나이(육십대 중반근처) 되는동안 저도 참 많이 변했는지 꼽아보았더니 매달 모이는 팀이 8개나되었습니다.딸아이는 만나자는 사람들 고마운 줄 알고 부지런히 나가라고 충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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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1 23: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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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선 (59.XXX.XXX.173)
'늙지 마세요!' 노인의 이 한마디가 가슴에 크게 와 닿습니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노년들도 커피 한잔을 놓고 한 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그리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이 없을 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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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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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아름다운 노년! 멋있는 노년! 여유있는 노년!
누구나 바라는 노년기에 대한 바램이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진 않아 마음이 아립니다.
누구에게나 비켜가지 않는 삶의 마무린데, 바람직한 노년기는 편하게 즐기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건강하게 할 일이 있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할 일이 있어 정신없이 바쁜 노인, 멋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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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10: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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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06)
나뭇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에 서 휴지기로 들어서는 겨울을 반추 해 볼수 있는 내용이네요.
아연씨,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나이가 있더군요.
가게에 들리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지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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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09: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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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무섭 (220.XXX.XXX.203)
삶과 죽음, 삶은 나의 것, 죽음은 너의 것, 사람들은 이렇게 분리한다고 합니다. 죽음도 내 것이지만 마치 남의 것으로 본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철없음에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해 하는 사람들!
이번 글은 부드럽고 그리고 강하게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의 게으름을 꾸짖고 독촉하는 듯해서 좋습니다. 신아연님의 글에 더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서고 싶습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동료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양로원에 근무한 경험은 나에게는 없는데 부럽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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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07: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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