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친서민 정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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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 친서민 정책 사이에서

허영섭

2011년 05월 30일 (월) 05:02:46

정부와 재계의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벌기업들이 정책적인 뒷받침 덕분에 막대한 이윤을 내고도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하고 있다며 이를 제도적으로 강요하려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여기에 은근히 반발하는 재계의 분위기가 서로 부딪치며 마찰음이 불거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초과이익공유제, 그리고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한결같이 불협화음 뿐입니다. 여기에 친서민 정책을 표방한 가격단속 조치까지 겹침으로써 상황은 더욱 미묘하게 꼬여가는 중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래 지속되어 왔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즉 친기업 정책에서 갑자기 노선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친기업 정책의 기본 취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살아나야 투자도 늘고, 일자리도 창출된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접근법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숙원이던 출자총액제한이 풀렸고, 법인세가 낮춰지는 등 그동안 기업활동을 가로막았던 ‘장애물 전봇대’들이 뽑혔습니다. 정부는 물가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며 기업들의 수출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투자도, 고용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재벌기업들은 돈을 벌었지만 협력업체들과의 상생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만 확인됐을 뿐입니다. 정부 일각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재벌기업들이 막대한 잉여금을 금고에 쌓아둔 채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심지어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경우도 적잖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재계로부터 “정부 정책은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정부 관계자들이 발끈할 만도 합니다. 더구나 일련의 정책 실패와 이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집권 한나라당이 지난달의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겪어야 했습니다. 친기업 정책도 그 하나의 이유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여당 내에서 ‘부자감세 철회’ 방안을 포함해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충분히 감지됩니다.

특히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정부 여당이 친서민 정책을 더 앞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은 당분간 구박덩이 신세일 것이 분명합니다. 기업들의 전반적인 행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군기를 잡는 차원을 넘어 기업경영을 저해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서는 곤란합니다. 친기업 정책이 옳고 친서민 정책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업과 서민을 편가르거나 기업활동을 배척하는 듯한 정책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반값 등록금'의 해결방안을 기업들로부터 거두는 세금에 직접 연결짓는 발상이 그렇습니다. 복지확대 정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처럼 기업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에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기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고용이 의도대로 늘지 않았듯이, 기업을 다그친다고 해서 그 반대급부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책 효과를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표심(票心)을 잡으려고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국민연금 투자지분에 대한 의결권행사 방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지분에 따라 의결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의결권을 어떤 방향으로 행사할 것인지 결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전체 국민의 의사를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결국 정부가 기업을 손보기 위해 꺼낸 방안이라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재벌 오너들이 기껏 3~4%의 지분으로 전횡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부의 물가단속 조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필품이나 휘발유 가격이 자꾸 오르는 것이 마땅치는 않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권이 선거에서 표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기업경영 풍토는 그만큼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의 조치를 두고 들려오는 “정부의 기업 인식이 권위주의 시절인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재계의 지적을 이해할 만합니다.

금명간 인하 방안이 발표될 예정인 이동통신 요금을 두고서도 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데도 요금을 일방적으로 낮추도록 한다면 앞으로 외국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은 소비자에게도 손실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하소연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 진행되는 요금인하 결정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자율적인 풍토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기업활동에 특혜를 주는 듯한 지나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래의 친기업 정책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친서민 정책과 등을 돌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그러한 여건을 조성하고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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