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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계세요?”
신아연 2011년 06월 14일 (화) 01:50:45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우편번호는 몇 번이시구요? 티켓은 내일이면 나오시구요, 공항세는 320불이세요, 지난 달까지는 270불이셨는데 이번 달부터 50불이 오르셨어요.”

지난 주, 한국에 가는 큰애의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해 대한항공에 발권 문의를 했습니다. 몇 차례 변동이 생겨 세 번 통화를 하고 마지막으로 표를 찾을 때까지 다섯 담당자들과 연결이 되었지만 단 한 명을 빼고는 주어와 주체가 무엇이든 마구잡이로 모든 술어를 경어체로 말했습니다.

그네들의 해괴한 말법이 귀에 거슬려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옆에 있었다면 정말이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내용만 알아들으려 해도 손톱 거스러미처럼 자꾸 신경이 쓰여 대화 내내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우스개로 옛날, 갓 상경한 어떤 촌사람이 말끝이 상냥한 서울 말씨를 흉내내려다가 푸줏간에서 “돼지고기 계세요?”라고 실수를 했다더니 이제는 그런 식의 우스운 말이 일상화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 올릴 때 올릴 줄 알고 그대로 두어야 할 때 둘 줄 아는 단 한 명이 그렇게 대견하고 귀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세대들의 혼탁하기 그지없는 언어환경에서 어찌 그리도 독야청청 올곧게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는지 마치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를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 한인이 경영하는 동네 일식당에 갔을 때였습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동안 말끝마다 돕겠다며 부자연스럴 정도로 예의롭게 구는 태도가 밉살스럽던 차에 음식값을 치르려 할 때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하는 소리에 기어이 한마디가 나왔습니다.“계산은 나도 할 줄 아니까 그것까지 도와 줄 건 없어요.”밥 한 그릇 사먹는 걸 가지고 뭘 자꾸 도와준다고 하니 듣기가 영 거북했습니다.

그렇다고 엉터리 말하기가 요즘 세대들만의 심각한 문제는 아닌가 봅니다. 어떤 여자가 TV 토크쇼에 나와서 “저 같은 경우는 52세이고 남편 같은 경우는 54세예요.”라고 했다니 낫살이나 먹은 사람도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저는 52세고, 남편은 54세예요.”라고 왜 못할까요.

‘기분이 좋은 것 같다’거나 ‘예쁜 것 같다’는 말로 자기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두고 “ 지가 좋으면 좋고, 지 눈에 예쁘게 보이면 예쁜 거지, ‘같다’는 건 또 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의 언어혼란 사태에 비춘다면 그 정도는 약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적 표현으로 쓰여야 하는 ‘너무’가 ‘너무’ 오용되다보니 이제는 ‘너무 예쁘다’ 고 하거나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해도, 너무 예뻐서 오히려 좋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석하거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불쾌할 지경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말입니다.

이민와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존댓말을 가르치느라 또래 부모들이 애를 먹은 기억이 납니다. 어려운 말법에 스트레스를 받은 저희들끼리 무조건 말끝에 ‘요’자를 붙이는 것으로 “존댓말 공부 끝”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곤 했는데 “엄마는 시장 갔다요, 할머니 안 계시다요, 나는 모른다요.” 하는 식이었습니다. 요즘은 이 말이 ‘역이민’을 했는지 한국에 사는 아이들도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탓에 어느 곳에 살든 한국의 같은 세대들끼리 연합하고 더불어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으니 차라리 고립된 이민 환경에 놓여 있던 한 세대 전 이민 자녀들의 한국어 구사가 가장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전에도 같은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영어식으로 말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에 이번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한된 우리말 환경에 있는 제 경험도 이 정도이니 한국에서 경험하는 우리말의 파괴 정도는 말해 뭣하겠습니까.

우리말이 이렇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고 이런 상황이 결국 고착될 것이라 생각하면 답답하고 절망스럽습니다. 이제는 저처럼 말이나 글을 통해 개인적으로 한 번씩 ‘강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교육적으로 젊은 세대, 다음 세대들의 잘못된 말법을 고쳐주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쉽게는 국어 시험에 올바른 문법과 회화 문제를 집중해서 내면 될 것 같은데 대입시를 위한 국어 교육에는 그것이 하나도 안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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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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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민 (110.XXX.XXX.249)
동감입니다. 대개는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러려니 하고 말지만 가끔은 말의 모순을 지적해 주기도 합니다. 제도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필자 님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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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3: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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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균 (110.XXX.XXX.249)
100% 공감! 요즘 아나운서나 앵커들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해결 방법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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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3: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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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110.XXX.XXX.249)
잘 읽었습니다. 저도 도처에서 경험하는 중입니다.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첫째로는 비즈니스 대화에서 무감정, 의례적인 태도, 앵무새같은 단순반복, 감동을 주는 서비스 정신의 부재 등일 수가 있고
둘째, 무식하며
셋째는 아무생각없이 그냥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행태 등이 아닐까 합니다.

콜센터와 통화 시 또는 매장 등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네, 고객님~~'하는 아무런 로봇이 하는듯한 감정없는 말을 듣는 자체로 기분이 가라않는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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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3: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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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110.XXX.XXX.249)
저도 똑같은 상황을 여러번 아니 매번 경험 하면서 대한민국의 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합니다. 한 두명이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층이 아무런 의식도 하지 못한체 쓰고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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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3: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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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110.XXX.XXX.249)
아주 적절한 지적 감사합니다. '과공은 비례'라고 하는데 지나친 경어가 저도 거슬릴 때가 많았습니다. 제목이 재미있으시네요^^ 가 아니지요. 제목이 '재미있습니다'가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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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3: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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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무섭 (220.XXX.XXX.203)
비인칭에 존대말을 붙이면 부드러운 말로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는 편입니다. 물질 과잉 숭배가 이런 현상을 불러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 해운대는 '문텐로드'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그냥 무슨 무슨 오솔길이라 햐든지, 달빛 오솔길'이라든지 해도 될 것을 무슨 이상한 말을 구청에서 만들었답니다. 그쪽에 전화를 해서 나의 간곡한 뜻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답답은 냉냉했습니다. 지금도 이 일을 어찌면 좋은지 하고 그러나 낙심은 안 합니다. 언제 고쳐도 고쳐야지 지금도 마음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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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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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물질과잉 숭배의 한 현상이라고 하셨는데 독특한 지적입니다. '문텐로드'라... 정말 어색한 길이름입니다. 해당 관청에 그런 문제를 지적하신 교수님 같은 분들이 많이 계셔야 할텐데 실제로 얼마나 그렇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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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5: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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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14)
일반적인 대화의 잘못쓰임도 문제지만 청소년들의 상스러운 말투도 한계에 닿은듯 함니다.
지나가는 교복차림의 남학생들의 입에서 어찌나 상스런 욕들이 거침없이 나오는지 나이들은 층에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래문화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총체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는 느낌인데 잘 지적해 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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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1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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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정말 그렇습니다. 지난 번 한국 갔을 때 남자 중학생들이 한 무리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지는 발이 없냐, 손이 없냐, 나더러 물을 떠달래지 뭐야?" 그게 누구냐하면 바로 자기 아버지...

대화 중간중간 욕은 기본적으로 섞어가면서... 애들이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는 뜻도 되겠지만 정말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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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5: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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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문법,어순 모두 파괴하고 자기네들만이 통하는 신조어(?)를 양산하고 있습니다.더구나 컴이나 핸드폰을 통한 대화를 많이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샘"으로 표현한다든지......
자적하신대로 존칭어를 남발해서 도대체 학교에서 뭘 가르쳤나 싶을 정도라니까요.심지어 교회 목회자들 중에서도 대중 앞에서 자기 부인을 호칭할 때 사모님이라고 하는데는 질렸습니다.우리 사모 또는 집사람,아님 자녀 이름을 대며 00엄마라고 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대중 앞에서의 부인에 대한 호칭은 예절에 관한 것이지 성차별이나 존대에 관한 것은 아니니까요.사회적 환경은 영어 경외(?) 한글 비하로 치달으며 "철도청"을 "코레일"이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으로 바꾸면서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히히덕 거리며 KTX라고 명칭한 쾌속열차가.....
코레일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KTX는 Korea Train express의 약자라는 어느 여직원의 답변이 씁쓸합니다.영어의 관점에서도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KTX,코레일 어떻게 할까요? "철도청"아님 "한국철도"가 코레일보다 월등하고,KTX보다 "빠른기차" "괘속열차"가 얼마나 한국적인데 영어에 상사병이 들었는지 원...쯧쯧~~미칠려면 제대로 미치든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최우선적으로 바른 국어를 가르쳐야하고, 세계에서 가장 어휘가 풍부한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가르쳐 어디서라도 자랑스럽게 사용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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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11: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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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잘못된 호칭도 정말 사람을 당황하게 하지요. 아내를 남 앞에서 부인이라고 하질 않나, 사모님이라고 까지 한다니... 자기 남편을 직함으로 부르는 사람도 정말 꼴불견이지 않습니까. 우리 회장님, 목사님, 박사님, 뭐 이런 식으로. 뭐든 영어를 붙여야 품위가 있다고 믿는 생각도 문제이구요.. 정말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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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5: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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