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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믿어주는 것
신아연 2011년 07월 15일 (금) 00:31:03
저는 요즘 아들애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을 마치면 자정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만 늦은 저녁을 한 술 뜨는 제 옆에 아들애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으면 새벽 두 세시를 넘기는 것은 예사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부모 자식 간에 대화하는 일이 특별할 게 뭐냐고 하겠지만 아들애와 저와의 대화는 그저 대화가 아닙니다.

‘나는 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명제를 붙여줘야 할 것만 같던 아들이, 머언 먼 길을 돌아와 이제는 마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듯 제 옆에서 노란 꽃잎을 피우고 있으니까요.

이민 2세대 특유의 정체성 혼란과 타고난 예민함으로 생모를 찾아 헤매는 입양아마냥 ‘나는 누구인가’를 끈질기게 묻는 10대 아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저는 그 무렵 이런 글을 썼습니다.

<가정주부들의 화제는 그저 남편이나 아이들에서 맴돌게 마련인데, 특히 자식들 이야기는 온종일 한대도 지침이 없다. 아이가 갓 났을 때부터 자랄 때, 학교 다닐 때, 시집 장가가서 자식 낳아 기르는 거며, 그야말로 내 목숨 다할 때까지 숨차게 이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밥을 잘 먹네, 말을 잘 듣네 어쩌네 하다가 학교엘 들어가면 공부를 잘하네 못하네, 안달복달 각양각색의 화제를 이어가지만 결국은 내 기쁨의 원천은 내 새끼이며, 내 삶의 존재 이유는 자식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말 그대로 '그대 있음에 내가 있는' 것이다.
어미된 자로서, 특히 한국 어미로서 자식과 나는 나눌 수 없는 한 덩어리라는 신념을 깨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덩어리에 차츰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듯한 낌새를 알아차리기도 여간해서 쉽지 않다.
"딸애한테 며칠 전 티셔츠를 사다 줬더니 얘가 이러는 거야, '엄마, 이 옷은 왠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는 내 옷은 내가 직접 샀으면 좋겠어.' 제 딴엔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지만 듣자니 참 황당하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가 골라주면 무조건 예쁘다고 하던 애였는데."
"자기 친구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고 퉁명스레 말하더니, 밖에서 놀다가도 집에 들어가 엄마 얼굴 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며 한술 더 뜨는 거야, 글쎄."

대학 2학년 딸과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아들을 둔 친구들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자식들의 태도변화가 황당하기 그지없다며 쏟아낸 하소연들이다.
"우리 아무개는 아직도 엄마밖에 몰라. 누굴 만나는지, 무슨 이야길 하는지, 어딜 가는지 꼭 나한테 보고하고, 옷 입는 거나 머리 모양이나 모두 내 맘에 들게 하고 다니잖아."
자기 옷은 자기가 고르고 싶다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아 상심하고 있는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는 자기 아들은 대학생임에도 아직도 자기 품 안에서 천진난만 노닌다며 만족과 안도를 표했다.
앞의 친구가 자식의 '반란'으로 인해 자기 존재와 정체성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을 불안해하고 있다면, 나중 친구는 반석같이 든든한 변함없는 자신의 존재감을 재확인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함께 있던 내 경우는 어땠는가. 친구들과 같은 또래의 두 아이가 있음에도 그날 모임에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내 경우는, 자식과 한 덩어리란 믿음에 틈새고 균열이고 감지할 짬도 없이 한순간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경우였다.
미성년인 두 아이를 품에서 잃은 후 애지중지 키우던 화초의 중턱이 예고도 없이, 여지도 없이 갑자기 잘려나간 듯 아리고 쓰라렸다.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난데없이 찢겨져 나간 자리의 상처와 상실감은 어미로서의 밑도 끝도 없는 책망과 우울감으로 이어지면서 나라는 존재의 무가치함과 수치심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힘든 시간과 전쟁을 치르며 아들 아이처럼 어쩌면 나 역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더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해거름 어둑한 거실 창가에 서서 나는 묻는다. 도대체 언제 떠나야 가슴 아프지 않겠느냐고. 대학생 딸에게 아직도 내가 사 준 옷을 입히고 싶고, 직장을 가진 자식도 한 지붕 아래 그냥 있었으면 한다면,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 있어야만 직성이 풀릴까.
사랑은 상대와 내가 하나되는 것임에도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두 존재가 완전히 분리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역설적 개념이 아닐까. 몸뚱이만이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으로 온전히 떠나보낼 때 둘의 사랑은 평온하고 아름답다.
자식 가진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완전한 별리의 격렬한 아픔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 서럽고 낯선 상실감은 결국 '자신과의 조우'를 준비케 하는 내면의 배려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떠났을 때의 아들과 돌아온 아들은 제게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 저는 어떤 엄마일까요. 엊그제 아들애가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은 믿어주는 거지, 끝까지 믿어주는 것, 그게 사랑이야.”

엄마가 자기를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랬어야 했다는 뜻인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어쨌거나 저는 지금 아이와 더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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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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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sun (184.XXX.XXX.82)
아이가 제대로 자기 갈길을 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요즘 정말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큰 위로가 된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솔직 담백한 글, 계속 기대하고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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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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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석 (110.XXX.XXX.249)
신아연 선생님

오늘도 저는 '낯설고 아픈 분리'의 문제로 앓고 있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인생이 성장한다'는 것이 자기와의 만남이고 헤어짐의 연습입니다.

믿을 수 있어야 놓아줄수도 헤어질 수도 있지요.

신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의미 있고 맛도 있습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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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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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110.XXX.XXX.249)
신아연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은 "agape" 무조건의 사랑인데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agape 이고 인간 사이에 agape에 가까운 사랑은 모성애 입니다. 참 사랑의 특징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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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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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진 (110.XXX.XXX.249)
항상 삶에서 뭇어나는 살아있는 사색의 정돈이 --, 이바쁜 사회에 휴식을 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해외 생활에 늘상 굳건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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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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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110.XXX.XXX.249)
나중에 아들과 딸이 더 크면 엄마를 무척 사랑하리라 확신합니다. 당신은 충분히 훌륭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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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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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oh (110.XXX.XXX.209)
참 멋진 글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공감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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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7 10: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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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같이 못난 부모에게서나 있는 일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책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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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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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34)
새벽녁에 며늘애가 흐느끼며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이 이혼하잔다고... 놀라서 아들집에 달려가서 두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무엇보다 며늘애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참을 수 없이 아렸습니다.' 아니, 너희들 언제나 손 잡고 다니더니 웬일이냐' 했더니 '어머니 걱정 하실까봐 그런거지, 저 사람 맘 변한지 오래예요' 하고 말했습니다.아들애는 늘 제 어미말을 잘 이해하는 편이어서 제 설득에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가끔 제 누이한테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답니다.이제 두 해 지난 옛일이 되었지만 가끔 며늘애의 홈피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살피며 얼음판 걷는 심정은 여전합니다. 내 딸이 이런지경이 되면 나는 이 보다 더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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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19: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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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아직은 제 배로 낳은 자식들만 가진 제가 며느님까지 보신 김윤옥님의 사연을 송구하게 읽었습니다. 부모는 눈 감을 때까지 자식 걱정에서 놓여날 수 없다는 것, 혼인을 한 자식들에 대해서는 그 걱정이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보통 보면 부부 관계가 힘들 때는 엄마를 찾다가 또 관계가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부모님들은 힘들 때 들었던 소식만 가지고 계속 걱정하고 계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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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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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역시 이별의아픔이 있어야 조우의 기쁨도 있군요.
철이 들어선 당연히 영역 밖으로 벗어나야 된다는 당위성 때문에.알량한 사회정의를 실현코저 바빴던 탓에 자녀들이 품을 떠났다는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답니다. 그런데 출가한 띨이 보내온 메일에 늘 집밖으로만 돌던 아빠의 사랑이 못내 그리웠었다는....
뒤늦게나마, 대의를 좇는답시고 자녀들에게 애정을 베풀지 못했던 아빠의 잘못을 빌었지요~~ 두 아들 역시 그런 불만을 토로하더군요. 아연님의 스스럼없는 아들과의 대화가 몹시 부럽습니다. 그렇죠.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한때는 반항하고 배회하는 시기를 거칠 수 밖에 없지만, 다잡고 되돌아갈 때 기다려주는 곳이 없다면 영영 미궁에서 헤어날 수 없겠죠?
믿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있는 집의 자녀들의 방황은 그래서 한 때의 헤프닝으로 끝나고 밤새는줄 모르는 대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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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16: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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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아이들이 한창 방황할 때 어느 분이 그러셨습니다. 부모는 고향같은 거라고... 이담에 이담에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고... 병아리가 어엿한 닭으로 변할 때 솜털과 닭의 제털이 비죽비죽 뒤섞여 아주 우습고 볼품없지요. 하지만 그 과정이 없으면 윤기 흐르는 닭털을 가질 수 없듯이, 정말 방황기의 아이들은 어른이 보기엔 철딱서니 없고 기가 찬 꼴이지만 그 모습이 곧 성장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신 인내천님과 엄마인 제 경우는 다르겠지만 자녀들은 결국 부모를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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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9 18: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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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용 (110.XXX.XXX.249)
안녕하십니까?
신아연님의 추천으로 귀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보다 크고 발전된 한국의 노둣돌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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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15: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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