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손톱 밑의 때
이상대 2011년 08월 11일 (목) 02:48:40

‘손톱 밑의 때’ 하면 좀 불결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필이면 때 이야기를 꺼내나 할 것입니다. 요즘도 그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엔 어른들이 좀 서운한 마음이 들면 흔히 “손톱 밑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평하곤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손톱 밑의 때’가 그렇게 생소한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때가 내 손톱 밑에 잔뜩 끼었습니다. 집에서 밤낮으로 손톱을 깎고 손질하는 사람들이나 네일샵에 지극 정성으로 다니며 발톱까지 열심히 다듬는 멋쟁이 여인들은 당연히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대로 손질하여 때가 끼지 않게 할 일이지, 쯧쯧 하고 나무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농사꾼에게는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피치 못할 일이 있습니다. 농사가 주로 흙속에서 흙을 만지며 하는 일이니까요. ‘흙이 아니라 분뇨더미 속에서 일하더라도 뒤처리를 잘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어쩌겠습니까.

요즘엔 시골에서도 부인들, 특히 젊은 부인들은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중무장을 합니다. 장갑을 끼는 건 필수적인 준비입니다. 부인네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일할 때엔 장갑을 애용합니다. 장갑을 사용하면 부상을 예방할 뿐 아니라 손톱 밑에 때도 덜 끼고 약간 끼더라도 작업 후 잘 씻으면 대부분의 경우 깨끗해집니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오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할 일도 많고 해서 마누라와 함께 시골 농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서로 조금씩 일을 거드는 게 많은 도움이 되고 일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고추 심을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마누라는 내가 좀 힘에 부쳐 보이는 일을 벌이려 들면 “환자가 일한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제가 하려고 나섭니다. 농사일을 하지 않던 여자가 하는 일이라 내 마음에 들 리도 없고 못마땅하기도 하여 몇 마디 참견하면 “그래도 밭을 고르고 이랑을 만드는 여자가 나 말고 어디 있겠느냐”며 화를 냅니다.

그러던 마누라가 액이 끼었는지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 응급실 신세를 지고 급기야 입원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몸이 안 좋다고 마냥 가만있을 수도 없는지라 거북하였지만, 혼자서 쉬엄쉬엄 일을 하였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장갑을 낄 수도 없었습니다. 물기가 많은 흙을 만지면 금세 젖어버리는 장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대로 하려면 수십 켤레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일하다 보니 손톱 밑에 때가 새카맣게 끼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쉬는 틈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잠시 손을 보니 정말 가관입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밭일을 끝내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 손톱을 깎고 손질할 때까진 꼼짝없이 이대로 있어야 합니다. 밭일을 할 때 손톱이 짧으면 손톱 밑이 갈라져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도리 없이 오며 가며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도 없지 않습니다. 일하다 생기는 손톱 밑의 때를 아름답게 볼 수는 없겠지만 불결하다거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일용양식이 대부분 그런 손을 한 농부들의 노고로 얻어지는 것이니. 내일도 비가 오락가락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글쓴이 이상대님은 경북 영주 태생의 농업인입니다. 육군 장교 출신으로 1988년 가을부터 전북 무주에 터를 잡아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가축, 주로 염소를 방목 사육하다가 정리한 후 지금은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오마리 (24.XXX.XXX.229)
흙일을 하다보면 때가 안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정원일 이것저것 매번 하다보면 손톱 밑에 때가 끼곤하지요.
전 항상 면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마미손)울 끼고하니 덜 합니다만
그래도 땅과 더불어 살다보면 흙물이 손톱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면장갑 위에 고무잡갑을 끼면 땀을 흡수하고 끼고 벗기도 쉬우니 그리 해보시면 어떠실지요.
손톱의 때를 너무 신경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답변달기
2011-09-09 23:06:17
0 0
차덕희 (121.XXX.XXX.212)
제 손은 나이에 비해 유난히 고와서 부끄러울때가 가끔 있습니다.
엄지와 검지는 가끔 손톱때가 낄때가 있는데 살림의 냄새가 밴듯하여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이상대님의 손은 성실한 손이라고 생각하지 부끄러운 손이 아님니다!.
답변달기
2011-08-11 09:33:08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