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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놀이
안진의 2011년 08월 16일 (화) 01:33:57
여름밤이 되면 우리 집은 안방에 커다란 모기장을 세웁니다. 열 살 된 딸아이가 모기장을 야영장의 텐트처럼 생각하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밤에 불을 끄고 모기장 안의 아늑한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기다리는 차례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남편이 아이에게 해주는 좀비 놀이입니다.

좀비(Zombie)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하는데 컴퓨터 게임에 많이 등장하는 일종의 귀신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귀신이라는 용어보다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에 종종 등장하는 좀비라는 캐릭터에 더욱 감정이입이 되는 모양입니다.

좀비가 된 남편은 매일매일 살아 돌아옵니다. 컴컴한 방에 손전등을 턱에 대고 모기장 안으로 들어오거나, 목이 돌아간 좀비라며 뒷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선글라스를 머리 뒤로 쓴 채 걸어오기도 합니다. 무서운 눈을 만들어 실제 눈에 붙이더니, 다음날엔 송곳니도 만들고 혀도 만들어 붙입니다. 가끔은 웃통을 벗고 눈동자 모양을 가슴에 붙이고 나타나기도 하고, 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써서 배꼽을 잡게 합니다.

아이는 쫓기는 자고 남편은 쫓는 자고, 저는 말리는 자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롤플레잉 게임의 요소가 들어있는 셈입니다. 거의 매일 밤 이루어지지만 취침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나 여의치 않을 때면 “오늘은 좀비 안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도 흔쾌히 수긍을 합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고 ‘놀이’의 가장 큰 특징대로 의무감이 없습니다. 놀이는 노는 자의 즐거움과 선택에 맡기는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역할극에 푹 빠져 아빠좀비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재밌어하며 도망 다니는 아이는 놀이가 끝난 후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더욱이 살짝 미소를 짓고 자는 모습은 행복해 보입니다. 물론 좀비가 매일매일 새로워지거나 강해져야 하며, 나아가 또 다른 놀이의 개발이 필요하기에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이와 교감하는 잠깐의 놀이가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게 하며 정다운 추억이 될 거라는 믿음은 분명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것을 걱정합니다. 아이들이 컴퓨터에 고립되어 부모와 갈등을 겪고 행동 장애까지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TV와 컴퓨터에 이어 태블릿 PC, 스마트 폰을 이용하는 ‘전자 놀이터’의 확산으로 과도한 디지털 자극을 받을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나 우뇌에 비해 좌뇌의 기능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통해 가족의 역할을 이해하고 인형놀이를 통해 미적 감수성을 키워갔습니다. 술래잡기를 하며 협업을 배우고, 블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으로 세계여행의 꿈을 키우기도 하는 등, 놀이는 간접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경험적 도구였습니다. 그러한 놀이는 이제 컴퓨터가 모두 대체해 줍니다. 컴퓨터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놀이공간에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가족이 함께 하는 ‘놀이’가 소중해지는 시기입니다. 여름 방학이 끝나갑니다. 아이의 인지 및 정서능력을 높이며 함께 웃을 수 있는 놀이의 추억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녀와 함께 하는 놀이는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돈독히 하고, 유익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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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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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47)
이 글을 읽는 동안 안진의님의 열살 짜리 따님과 똑 같은 행복감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뵌 적은 없지만 아빠의 자상하고 따뜻한 성품을 느낍니다. 예전에 한 동네에사셨던 서강대의 이상우 교수님댁의 잘 자란 자녀들을 보며 흐믓했던 그 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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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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