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다시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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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다시 오는데

임철순

2011년 08월 24일 (수) 01:06:26

어제가 처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가을입니다. 가을은 어떻게 오는가. 처서 이 무렵에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합니다. 그 뜨겁고 잔인하던 햇볕도 이제 가늘게 여위어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합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니 가을은 그렇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공격성과 투쟁심을 거둬 가는 계절인가 봅니다. 올해처럼 유례없는 폭염과 폭우로 고통을 겪으며 여름을 살아내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가을은 반가운 안식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은 어디까지나 조락의 계절이며,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과의 결별이나 죽음, 물러남 사라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는 시기입니다.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인 송길원 목사가 최근 페이스북에 윤동주의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올렸습니다. ‘나는 나에게/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이런 시입니다. 말이 너무 착하고 교과서 같아서 윤동주가 정말 이런 시를 썼나 싶지만, 인생의 가을은 사랑이든 뭐든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되새겨 볼 만한 말입니다.

시인인 제주대 윤석산 교수는 8월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다 함께 시인인 부인과 두 딸, 사위와 외손녀의 글을 모은 문집을 냈습니다. 문단의 선ㆍ후배와 가족 친척이 모인 출판기념회에서는 40여 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의 길에 나서는 사람의 감회와 축하, 가족들의 화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의 끝인 8월은 이렇게 정년퇴직의 달이기도 합니다.

한국일보 이종재 논설위원은 8월 22일자에 ‘살아서 할 일’이라는 칼럼을 통해 네 가지 죽음을 소개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빈소도 차리지 못하게 하고 친구들에게는 죽기 전에 미리 쓴 편지를 보낸 서예가, 조문객들에게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고 유머모음 편지를 하나씩 갖고 가게 한 사람, 채소장사로 모은 10억 원을 성당에 기부하고 떠난 노부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의미 깊게 가꾼 사람들입니다.

칠순을 넘긴 어느 재미동포는 자신의 장례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합니다. 관은 얼마짜리로 어떻게 하고 묘는 어떻게 하고, 이런 지시는 물론 장례 미사에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장례 프로그램을 짜 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2년 전 아내가 사망했을 때에도 성당에서 통례대로 ‘지루하게’ 치러지는 장례식이 싫어서 음악에서부터 성가대, 만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명 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까지 불러 ‘장엄하고 근사한’ 장례식을 치렀고, 사람들은 “이런 장례식은 처음 본다”고 다들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잘 들리지 않던 말들이 이렇게 잘 들리게 된 것도 계절 탓인가 봅니다. 죽음을 준비할 나이는 아직 아니지만,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고 오래 몸 담아온 사회에서 물러나는 사람의 몸짓도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가을이 되면 괜히 한 살 더 먹는 기분이 듭니다.

며칠 전에는 집안일을 하던 아내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비가 하도 많이 와서 곰팡이 슬지 않은 게 없어.” 올해 여름은 해 나는 날이 적어 빨래를 해서 널기도 어려웠다면서 한 말입니다. 습기 찬 날이 하도 많아 올해에는 버섯이 잘됐다더니, 그렇구나 그렇구나 곰팡이가 많이 생겼구나. 그 말을 들으면서 내 삶에서 걷어내야 할 곰팡이를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송길원 목사가 페이스북에 쓴 다른 말도 생각났습니다. 슈테판 카우퍼라는 시인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가 쓴 글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어린 나이로 죽은 시인이 있다.’고 했던 것은 슈테판 카우퍼(Stefan Kaufer)였다. 가을은 내 마음의 죽은 시인을 만나게 해 줄까? 그때 나도 시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을까? 아, 가을.>

이희복 (180.XXX.XXX.49)

저는 이제야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길을 조금씩,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이죠. 나이를 먹어가며 철이 드는 것인지도...
릴케의 가을날이 생각납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는 귀절이...
아직은 열심히 집을 지어야겠습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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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4 20: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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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글을 뒤늦게 읽어 이제사 답을 합니다. 릴케의 그 시에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고 했던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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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23: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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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선 (121.XXX.XXX.16)

지루한 장마와 복잡한 일상으로 여름 너머 가을이 오리란 생각을 잊고 살았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문득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행복을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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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00: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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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52)

강아지풀

보들보들 강아지풀
누군가 자꾸만 부르는지
뽀송뽀송 가을 햇볕에 마른 씨앗
손에 꼭 쥐고
보이지 않는 바람 따라 나선다

어쩌다
꼭 움켜쥔 손 놓아버리면
작은 씨앗들
저마다 바람 부는 대로 먼 길 가겠지

그러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바람에 흩어지면 그만
어디선가 보들보들 강아지풀로
또 다시 피어나면

햇빛 가득했던 고향
그리워하겠지
........... 보송보송한 가을 햇볕에 강아지풀 처럼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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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6 14: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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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 (211.XXX.XXX.129)

너무 멋있는 말이라
돌이켜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내면에는 어린 나이에 죽은 시인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축 가을!
이런 말이 절로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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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4: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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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가을 아침에, 시인의 감성으로 쓰신 가을이 너무 의미심장합니다. 차라리 시인이 되실 걸...잘읽었습니다. 채길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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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0: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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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기 (211.XXX.XXX.1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차분히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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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0: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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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4.XXX.XXX.56)

슈테판 카우퍼의 말 가슴을 울리는군요. 처음 들어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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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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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저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쓴 사람에게 물었더니 시인이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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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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