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와 멸렬_(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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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와 멸렬

김홍묵

2011년 09월 06일 (화) 00:50:31

지리(支離)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심한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 앞으로 가려고 손을 내밀면 발이 따라가 주질 않고, 왼쪽으로 가려고 하면 오른쪽으로 발이 향하는 중증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莊子)에 나오는 고사입니다.

장자는 또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멸렬(滅裂)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멸렬은 우직하고 경솔하고 말과 행동이 겉돈다는 뜻입니다. 뒤에 이 두 가지 말이 합쳐져 ‘지리멸렬’이라는 성어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어수선하게 엉켜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

요즘 나라 안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야말로 지리멸렬입니다. 법정에서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지 않나, 전직 공군 참모총장이 군사 기밀을 외국 방산 업체에 넘기질 않나, 육사 교수가 방탄복 납품편의 협조 빌미로 뒷돈을 받지 않나, 현직 검사가 (법으로 금지된) 정당에 가입했다 “사표를 내라”는 선배에게 “차라리 재판에 넘겨 달라”고 하질 않나, 중앙부처 관계자들이 룸살롱에서 산하기관 업무보고를 받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소신이다’, ‘몰랐다’, ‘관례다’라고 변명ㆍ강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국책으로 결정된 사업을 공권력도 무시한 채 반대하고, 재원도 없는 복지 정책을 툭툭 내던지고, ‘다른 것’은 다 ‘틀린 것’으로 매도하고, 건수만 있으면 ‘특위’를 구성해 놓고는 성과 없이 손만 털던 국회가 밀실투표에서 ‘라이언 일병(강용석 의원) 구하기’엔 야합을 하고…….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암울하기만 합니다.

특히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 사태를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18년 전에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하고, 4년 전에 주민 투표를 통해 입지를 확정하고, 지난해 1월 항만공사 계약, 착공과 함께 연말까지 토지 소유권 이전과 부지매입 및 어업 보상까지 끝낸 사업을 반 년 동안 반대세력에 밀려 ‘해방구’로 방치했으니 말입니다.

그 동안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소속 장병들은 수없이 시위대에 의해 목이 졸리고 견장을 떼이고 정강이를 걷어차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업단장(대령)까지 눈썹과 머리를 플라스틱 파이프로 얻어맞았습니다. 머뭇거리기만 하던 경찰은 지난달 24일 공사 재개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러 갔다가 350여 명이 억류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항복문서’와 다름없는 문건을 써주고 겨우 풀려난 경찰은 다시 시위대가 몰려오자 경찰서 문을 9시간 넘게 닫아걸고 농성했다고 합니다.

해군기지가 2014년 완공되더라도 계획 결정 시점부터 21년이나 걸립니다. 그 사이 북한은 황해남도 고암포에 올 들어 8개월 만에 공기 부양정 기지를 완공했습니다. 부양정 70여 척이 정박할 수 있는 육상 계류장까지 갖춘 대규모입니다. 백령도에서 불과 50여km 떨어진 거리여서 2개 여단 규모의 특수전 병력을 30분 만에 침투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에 이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피바다ㆍ불바다를 겪고도 안보의식이 이 지경이면 국가와 국민의 안위는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부국강병을 외치며 군 개혁을 하겠다는 정부는 육해공군의 밥그릇 싸움에 밀려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작년 을지훈련 때는 합참과 각 군의 지휘ㆍ통신 체계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령ㆍ보고가 안 되는 군대는 유사시 궤멸하고 맙니다. 2004년에서 2011년 사이 8년간 군사기밀을 빼돌린 현역 40명 중 실형 선고를 받은 경우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부대 설계도와 암호까지 건네주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병사들은 곰팡이 핀 햄버거 빵을 2년 동안이나 먹어야 했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행보는 또 어떻습니까?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도 변변한 정책을 내놓지 못한 한나라당의 수뇌들은 요즘 ‘완장’이라도 찬 듯, 한마디씩 던져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취임 초 ‘반값 등록금’을 이슈로 제기했다가 슬그머니 후퇴하더니, 지난 달 7일에는 취임 100일을 맞아 ‘만 0세부터 전면 무상교육 실시’ 카드를 덜컥 내놓았습니다.

당내 지도부가 불편한 심기를 보이자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황 대표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황 대표 자신도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정확히 산출해보진 않았지만, 무상교육에는 기존 예산을 포함해 1조 원이면 충분하다”고 해명했습니다. 비용 산출도 안 해본 복지정책을 구현하겠다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당의 빈민운동가 출신 강명순 의원(비례대표 1번)은 “돈이 없어 급식비를 못 내는 청소년이 137만 명이나 되고 가난한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신생아를 버리는 현실인데 반값 등록금이라니, 뭐가 우선순위인지를 모르는 정치인들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고 분개했습니다. 또 표 없는 137만 명은 눈에 보이지 않고 표 있는 대학생(281만 명)들만 보인다니 “한나라당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울분을 털어놓았습니다.

홍준표 당대표는 지난 달 15일 “동남권 신공항을 내년 총선ㆍ대선 공약으로 재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180억 원이나 든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앞두고 적전분열이 일어나더니, 새 시장 후보로는 “탤런트나 오세훈 아류는 안 된다”고 공박해 당내 분위기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독단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보온병 포탄’으로 웃음거리가 됐던 안상수 전 대표가 이임사에서 “청와대가 당의 말을 안 들어서……” 운운하더니, 정몽준 전 대표는 최근 박근혜 전 대표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에 대해 “내가 아는 교수가 써줬다는데……”라며 화살을 날렸습니다. 곳곳에서 당내 자중지란과 당과 청와대ㆍ정부 간의 불협화음만 들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적지 않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폭우로 물가가 뛰어 추석 차례상 차리기가 힘겹습니다. 주가 폭락으로 쪽박을 차거나 노후생계가 막연해졌습니다. 서울의 경우 2년 새 전셋값이 5,000만 원이나 올라 근심이 태산입니다. 수출이 아슬아슬하게 수입을 넘어 무역수지가 턱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역전을 바라며 복권만 살 수도 없고, 땅을 파면 돈이 나올까 마늘밭만 기웃거릴 수도 없고, 누가 ‘선의’로 몇 억원을 줄 리도 만무하고.

김쌍수 한전 사장이 지난달 29일 퇴임하면서 직원들에게 “한전 주변에 ‘깨진 유리창’이 다시는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1969년 미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한적한 골목에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놓은 채 세워 두었습니다. 그중 한 대는 유리창을 조금 깨뜨려 놓았습니다. 1주일 뒤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처음 상태대로 있었으나, 유리창이 깨진 차는 다른 유리창까지 깨지고 고철처럼 파손된 데다 배터리와 타이어까지 없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이 점에 착안해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작은 무질서와 소소한 범죄를 방치하면 심각한 범죄로 번진다는 이론입니다. 한전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사회 도처에 널린 깨진 유리창을 얼른 갈아 끼우지 않으면 국격이 떨어지고 국익이 손상되고 국권이 능멸당합니다. 지리멸렬해서는 안 됩니다.

utopco (116.XXX.XXX.162)

그래서 어떡하자는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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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3 10:54:52

0		0

1qaz2wsx (111.XXX.XXX.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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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0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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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3)

김 선생님, 이번엔 좌우를 고루 비판하신 것처럼 균형을 잡느라 애쓰셨네요. 하지만 다른 비판은 양념이고 핵심은 제주 강정리 해군기지 건설의 탸당성 강변인 것 같습니다.
김선생님께서 그토록 당연하게 여기시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그곳에 다녀 오느라 이제야 댓글을 올립니다.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으니 답변해주심 고맙겠습니다.
첫째,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면서 왜 제일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 세워야죠?
둘째,그렇게 중요한 곳인데 해방 66년째인 지금에 와서 세운다는 것은 그동안의 대통령과 군 지휘관이 직무유기를 했나요?
셋째,일본이 실질적 지배를 위협하며 교과서에 까지 올려서 침탈하려는 독도에 세우지 않고 어떤 나라도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제주도랍니까?
넷째,지는 해 미국의 요구대로 뜨는 해 중국을 포위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옳은가요? (주미 한국대사의 증언)
다섯째,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전쟁을 불러들이는 짓인데 그래도 좋은가요?
여섯째,국책사업은 환경영향평가,유물조사도 형식적으로 하고 2천여 주민중 겨우 87명만이 찬성해도 합법이 되는가요?
일곱째,분단을 확정 짓는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한 애국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미군의 지휘아래 육지의 군인과 경찰까지 동원해 전 도민의 30%를 학살한 4,3항쟁의 전철을 밟고 있는 지금의 해군기지 강행은 씻을 수 없는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범죄라고 생각하는데 동의 하십니까?

김 선생님, 제발 편향된 사고에서 속히 탈출하십시오! 지리멸렬 하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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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03:27:34

1		0

ggg (112.XXX.XXX.250)

"무능한" 민주 좌파 빨갱이들에게서 정권을 되찾아 가신 분들이,
왜 지금 "지리멸렬" 운운하십니까??
"능력있고 긍정적인" 보수 우파의 정권이 무려 3년이나 지났습니다그려.
혹시, 님께서 운운하는 "깨진 유리창"이 "좌파"들입니까?
아서라~
그렇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늘 당당한 우파들의 자세가 아니죠~
깨진 유리창은 바로 당신의 머리 속, 양심 속,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걸 아셔야겠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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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11:39:08

1		1

ggg (112.XXX.XXX.250)

오늘도 웃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해군 기지 얘기를 꺼내셨군요...
근데, 그 해군기지에 채울 군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셨나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해군 전력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대양 해군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 해군 기지가 필요했었지요. 특히 수출입 해운 노선을 지킬 수 있는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은 천안함사태를 전 정권의 대양 해군 때문이라면서, 노무현의 2020 국방개혁계획을 폐기하고,
연안 해군으로 급전환한 국방계획 307을 확정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80년 대에 취역하여 30년이 넘어가는 37척에 이르는 천안함의 동급함들을 대체할 2000톤급 차기 호위함들의 건조대수가
24척에서 급격히 감소하여 15척 내외로 줄어듭니다.
사실 이 숫자도 불분명합니다.
이지스함이나 잠수함 건조 계획도 물 먹었습니다.
노무현이 창설하기로 계획한 잠수함 사령부도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살아 남은 것들도 전력화는 언제 될지도 모릅니다.
이명박은 그 대신에 900톤급 고속정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200해리 EEZ를 연안용 고속정으로 지킨다고요?
고속정은 제주도 기지에 있을 이유가 없는 함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그런 거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주제에,
해군기지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코미디입니까
지리멸렬하지 맙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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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11:31:52

1		0

흰구름 (113.XXX.XXX.247)

ggg가 도대체 뉘신가? 행간의 뜻을 이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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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12: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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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 (112.XXX.XXX.250)

김홍묵씨의 행간은, 깨진 유리창을 드잡아 족치자는 거고,
나의 행간은, 깨진 유리창은 당신들 자신이니 웃기지 마시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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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13:44:11

1		0

김창식 (114.XXX.XXX.37)

나라 곳곳에 방치된 깨진 유리창 지적에 공감합니다. 울울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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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09: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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