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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법
박시룡 2011년 09월 20일 (화) 00:07:02
생태학에서 개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의 개체에 일어난 일이 그 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 가족이나 친지들이야 슬퍼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200년 후의 인류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극소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아주 희귀한 종의 경우에는 한 개체의 운명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황새는 아주 희귀한 종입니다.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황새 한 마리가 있고 없고는 우리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미 우리 생태계에서 사라졌지만, 인공 증식한 개체들이 향후 1년 정도 야생적응 훈련기간을 거치면 곧바로 한반도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바로 한 마리의 황새가 우리 생태계의 대변혁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아무 의식없이 사용했던 농약과 비료 사용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또 과거 논에 있던 둠벙(생태용어로 비오톱biotop:생물이 사는 그릇이라는 뜻)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천과 논을 이어주는 생태수로도 복원해야만 합니다. 이 일은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연간 수조 원이 들어갈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수조 원이 들어가도 복원된 생태계는 우리에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깨끗한 농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농경지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나라 삼면인 바다도 다시 살아나는 효과도 가져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부영양화로 인해 바닷가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바로 이 부영양화는 해마다 농경지에 뿌려지는 질소비료가 주 원인이기도 합니다.

황새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캠페인으로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캠페인은 해야겠죠. 그러나 법을 바꾸는 캠페인도 병행해야 할 것 같아, 이 법을 일명 ‘황새법’이라고 붙였습니다. 원래 황새(stork)는 그리스어로 스토르게(storge)라고 부르는데 '강한 혈육의 정'을 뜻하는 말로 고대 로마에는 이미 황새법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황새가 멸종되고 없어서 붙인 것이 아니고 자녀가 나이든 부모를 의무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그 법을 황새법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효도법인 셈입니다. 그럼 황새가 효도하는 새라서 이렇게 붙였을까요?

아마도 고대 로마인들은 황새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내려오면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을 자주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여름 새끼를 길러내기 위해 고생한 부모는 가끔 기진맥진한 채 발견되곤 했지요. 새끼들을 보살폈던 부모들의 수척한 모습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어쩌다 쓰러진 부모 곁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새끼들을 보고 아마 고대 로마인들은 황새를 효도 새로 여겼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날은 황새법은 더 이상 효도법은 아니고, '논생태관리기본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쌀재배 농가 소득을 일정 수준 보장하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 제도인 쌀직불제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황새법은 자기 논에 생물들이 살면 현행 쌀직불제에 해당되는 기본금은 물론, 생물다양성을 높이면 더 지원해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농촌을 생물들이 사는 서식지로 인식하고 이와 같은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농민들을 농산물 생산자로만 보지 않고 이제는 생태관리자로 인정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제도를 만들기 위해 올 9월부터 '지속가능한 생태조화형 농업모델개발과 제도개선'이라는 주제로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이제 겨우 연구가 시작됐으니 일명 ‘황새법'이 나올 때까지는 몇 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1971년 충북 음성 마지막 번식 쌍 발견-발견 후 3일 만에 총에 맞고 수컷 사망, 1994년 한반도 텃새 완전 사라짐, 1996년 황새 새끼 2마리 러시아로부터 첫 도입, 2002년 황새 인공 증식 성공-세계에서 4번째 번식 성공, 2009 년 충남 예산으로 황새 방사지 선정, 지금은 자연으로 돌아갈 비행훈련 중-2013년 자연 복귀, 2015년 황새법 국회 통과(?) …. 이런 여정을 밟아 황새는 한반도에 다시 정착하여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황새가 행복해지면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의 생태법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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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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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발전으로 착각한 아둔함이 아직도 주류인 울 나라에서,원전을 폐기하지 않고 청정에너지로 둔갑시켜 증설하는 울 나라에서 황새법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과 자연이 결코 하나이듯이 황새와 우리가 공생할 때 비로소 에덴의 관문이 열릴 것입니다!
매번 좋은 칼럼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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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14: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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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k (210.XXX.XXX.73)
글을 쓰면서 너무 감상적인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뭏든 농민들을 설득하고, 농식품부와 환경부 관료 그리고 국회와 맞탁트리야하는 험한 과정이 "황새법" 제정의 이 연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설득해야하는 일이 더욱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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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14: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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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k (210.XXX.XXX.73)
간단히 글을 썼지만, 글 쓴 것 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것을 잘 압니다. 촛불이 강풍을 만나 쉬 꺼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함축적인 표현이지만 새기겠습니다.
답변달기
2011-09-21 13:29:4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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