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신아연 2011년 10월 11일 (화) 01:56:18
우리 가게는 시쳇말로 그네들의 ‘아지트’라 할 만큼 신부님들이 손님으로 많이 오십니다. 가족이 없는 분들이다보니 혼자 조용히 식사를 하거나 호젓하게 차나 커피를 마시기에 그분들 사이에 우리 가게가 편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가 싶습니다.

책과 와인 한 잔이 곁들여진 소박한 저녁 식탁을 마주하거나 다탁(茶卓) 가득 자료를 펼쳐놓고 강론을 준비하는 신부님들의 단아한 자태에서 성직자의 정결한 인품을 읽게 됩니다.

며칠 전, 저녁 장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엊그제 다녀가신 신부님이 동료 신부님과 함께 당황스레 찾아오셨습니다. 일요일 점심 때 열 몇 분 신부님들이 우리 집에서 회식을 했더랬는데 그날 깜빡 잊고 미사가운을 두고 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놓고 가신 물건이 없다고 하자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낭패어린 표정을 지으십니다. 함께 오신 신부님이 작은 목소리로 “내 그럴 줄 알았어. 저 양반 평소에도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을 못할 때가 많아요. 며칠 전에도 자동차 키를 찾느라 법석을 떨었거든.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노상 저런다니까. 건망증이라기보다 치매기가 약간 있는 것 같아요.”하며 공연히 미안해하는 저를 안심시키셨습니다.

따로따로 오실 때나 함께 식사를 하실 때나 한결같이 온화하고 인자하게만 보였던 분들이라 인간적 한계나 치부를 미처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 신부님이 정말 치매에 걸리셨다면 가족도 없는데 누가 돌볼 것이며, 엊그제 오셨던 분들은 서품을 받은 지 대부분 50년이 가까운 고령들이시니 굳이 치매가 아니라도 중병에 걸리면 보통 사람들보다 인간적으로 더 외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노년의 병마와 외로움은 나중 걱정이고 당면한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가게에 거의 매일 오시는 신부님 한 분은 커피 한 잔 값도 부담스러우신 것 같아 어떤 때는 그냥도 드리고 아니면 에누리도 해드리지만 그래도 토스트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울 때가 많습니다. 어쩌다 저녁에 오셔도 우리의 짜장면 값밖에 안 되는 파스타 한 그릇이 고작이구요.

그럴 때 저는 ‘기왕이면 목사가 될 일이지. 그러면 가족도 있고 좀 좋아. 거기다 신자들이 줄줄 따라다니며 서로 밥 사겠다고 난리지, 생활 안정돼, 자식들 해외 유학에, 운 좋으면 치부도 하고 본인이 잘못해서 관둘 때도 전별금까지 두둑이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잖아?’ 하고 하나님께 벌 받을 못된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일부 한국 목사 이야기입니다. 신부들처럼 혼자 다니진 않는다 해도 이곳 호주 목사 중에서 그리도 권위적이고 기름진 생활을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 신자들끼리도 작금의 한국 기독교가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과 특히나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목불인견 행태를 한탄하곤 하지만, 우리끼리 말해본들 파행적 계급구조로 굳어질 대로 굳어진 교계 시스템을 어찌해 볼 수는 없다는 것에 일치된 무력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교회 활동에 열심인 것과 신실한 신앙심은 완전 별개 내지는 반비례한다며 비아냥거릴 때도 있습니다.

이른바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거침없이 부와 명예를 좇거나 목회 세습을 둘러싸고 자리다툼을 벌이는 양상은 세속인들의 그것보다 더욱 씁쓸함을 자아내고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까지 배신감과 공분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내면의 내밀한 순결함에 튄 오물이나 구김처럼 찝찝함, 당혹감, 절망감, 좌절을 안겨주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의 선행이나 미담을 접했을 때 내 속에도 있는 선한 본질이 채워진 듯, 더불어 안도감과 푸근함을 느낄 때와는 상반되는 심리 작용이라 할까요.

성직자와 그의 삶은 인간 본성 속의 순하고 선한 내면, 왜곡되지 않은 본래적 자아, 참 자기의 상징과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마땅히 걸어야 했으나 가지 못했던 의롭고 좁은 길을 기꺼이 대신 가 주는 자가 있을 때 세속에 찌든 내 영혼과 정신이 순간이나마 의지할 곳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성직자의 본질적 자질은 우리 가게의 신부님들처럼 가난과 외로움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배가 부르고 등이 따숩대서야 신부나 목사, 승려라고 하기에 거슬리고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도 흔히 고독과 배고픔을 벗삼거니와 하물며 ‘영’의 필요를 채운다는 사람들이 영적 헌신은커녕 ‘육’의 일에 몰입한 듯한 모양새는 정말이지 보기 싫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고재윤 (110.XXX.XXX.249)
정말로 동의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목사 및 신자들의 위선적인 자선행위라고 할까요. 다시한번 바로잡아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정말말로 좋은 지적으로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재윤
답변달기
2011-11-01 09:44:44
0 0
찌비 (110.XXX.XXX.249)
오랜만에 신아연 공감 감상합니다 갈계시죠



아들이 우리은행 시드니 근무하고있어요



며느하고 애기는 내년 초에 들어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시드니가 더 반가운 것 같네요 앞으로 글 자주 볼 기회 주세요 수고하세요
답변달기
2011-11-01 09:43:54
0 0
이완식 (110.XXX.XXX.249)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저희 교회도 부족한 헌금에도 불구하고 성전(예배처소인 예배당이 맞는 것 같습니다만)을 건축하는 중이고, 이를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편하지 않답니다. 어쩌다가 주님을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다시 가두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분명 어느 곳에도 십일조나 기타 헌금을 불쌍한 레위족속을 위하고 남은 돈은 이웃이나, 가난한 자, 과부 등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하였는데(저희 가족은 십일조를 아프리카로 보내고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고 돌리기에는 처해진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100억이 넘는 은행으로부터 차입은 분명 은행을 배불리게 할 지언정 주님의 사업에는 어쩌면 전혀 무관한 것 같아서요.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드려지는 예물이 은행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오는군요. 저에게 능력이 닿는다면, 차라리 부족한 금액을 충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준공이 조금 더 소요되더라도 차분하게 준비를 함이 어떨련지 모르겠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 위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멋진 만남의 장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완식 드림.
답변달기
2011-11-01 09:41:41
0 0
정달호 (203.XXX.XXX.30)
마음에 쏘옥 드는 글입니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비유와 언어로 매우 복잡한 문제를 한 손에 잡히게끔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귀포에서 정 달호 드림
답변달기
2011-10-13 18:10:58
0 0
김윤옥 (210.XXX.XXX.48)
김수환 추기경님의 무심하지만 든든하던 표정이 그립습니다. 배우자나 자녀 없이 말년을 보낸다 하더라도 언제나 의지하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그 분이 돌보아 주실 것을 믿을 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개신교가 지금 처럼 부와 명예에만 집착하는 너무나 세상적인 늪에서 빠져나와야 할 텐데 지금 보기엔 요원 할 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11-10-12 23:10:31
0 0
신아연 (203.XXX.XXX.30)
개신교는 구조적으로 부폐를 가져올 성향이 높다고 봅니다. 붙박이로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있는 구조에다가, 직계 가족을 모두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욕망의 유혹에서 자유롭게 하질 않으니까요.
답변달기
2011-10-13 19:04:48
0 0
인내천 (112.XXX.XXX.244)
넘 오랫만에 쓰셨네요?
사업이 잘 되나 봅니다 ^^
몇일 전에 제주 강정리에 다녀 왔습니다.역시 길 위의 신부 문정현,문규현 신부님께서 그곳 주민들의 이웃으로 고통을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매일 타지역(멀리 육지에서도) 신부와 신도들이 이어서 미사도 드리고.......
저도 개신교도이지만 목사님들의 참여가 저조해 떳떳치 못했답니다. 물론 가정을 가져서 신부님들만큼 자유롭진 않지만 그래도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소홀한 것 같아 편치 않았답니다.
순순한 우리의 해군기지라 해도 그렇지만 순전히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으로 일환으로 절차법도,문화재도 아랑곳 없이 강행되는 제2의 4,3항쟁이 재현되는 듯 하답니다. 그곳 호주 교민들도 반대에 나서고 있더군요. 가게에 오시는 신부님들께 제주에 세워지는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동참해주시라고 거들어 주시죠 ~~ 인내천의 부탁이라고.........
답변달기
2011-10-12 17:31:41
0 0
신아연 (203.XXX.XXX.30)
네, 오랫만에 글 올렸습니다. 여전히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교계도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니 당연히 정치를 해야 하는 곳이지만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모양새가 거북해서 쓴 글입니다.

인내천님 부탁 말씀은 우리 가게 신부님들께 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튼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답변달기
2011-10-13 19:08:29
0 0
류문일 (203.XXX.XXX.30)
그렇지요?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류 문 일 드림
답변달기
2011-10-12 13:49:25
0 0
안홍진 (1.XXX.XXX.234)
뭉클한 글 잘 읽엇어요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1-10-11 16:22:57
0 0
신아연 (203.XXX.XXX.30)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1-10-13 19:05:22
0 0
곽무섭 (220.XXX.XXX.123)
왜 이렇게 글이 안올라오는지 기다렸는데 역시 좋은 것은 기다려야하나 봅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닙니까. 본업은 제쳐두고 돈벌기에 급급한 사람들. 영어에서 이런 사람들을 가짜라 표현합니다(fake). 배우가 되어 인기를 끈 다음 연기연마에는 덜 관심을 갖고 광고 같은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들을 관객들은 눈살을 찌푸립니다. 아니꼽다는 말이지요. 본업에는 입맛이 없고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오늘 이 글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깔려있는 가짜의 모습들을 되새겨주는 훌륭한 내용이라 마음에 담아둡니다.
답변달기
2011-10-11 07:28:54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