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정원_(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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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정원

오마리

2011년 10월 17일 (월) 01:15:04

캐나다 국기에는 빨간 단풍잎이 그려져 있습니다. 단풍잎이 캐나다의 상징일 정도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설탕단풍나무, 꽃단풍나무, 자작나무와 전나무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언덕, 숲과 초원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형형색색 빛나는 가을은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자랑, 단풍잎들이 심술을 부리는 기후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금년 가을엔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지 시심(詩心)도 사라집니다. 단풍이 한참 절정을 이루어야 할 시기와 단풍이 들도록 나무 스스로 준비해야 할 가을 초입에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올해 단풍은 색깔을 곱게 물들이기도 전에 흉한 모습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단풍뿐만이 아니라 가을 내내 내린 비에 정원의 가을꽃들과 늦가을까지 꽃을 피워주는 장미조차도 맥을 못 추고 말았습니다.

작년과 금년 봄여름 내내 삽질을 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나쁜 흙을 들어내고 좋은 흙으로 바꾼 후 화훼들을 심는 일은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농사일이 그렇듯이 정원 가꾸기도 감상할 때의 즐거움에 비하여 수십 배의 힘과 땀, 인내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런 노고를 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던 정원조차 올해는 뜻하지 않은 잦은 비로 별 즐거운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후에도 오히려 잘 크거나 꽃을 피우는 나무나 화초들이 그나마 정원의 체면을 세워줍니다. 서늘한 기후와 물을 좋아하는 클라우드 9 같은 나무는 비가 많아야 무럭무럭 자라 내년 봄에 필 하얀 꽃망울들을 준비합니다. 꽃은 피우지 않더라도 일년 내내 녹색의 가지들을 하늘로 뻗치고 서 있는 시더(CIDER) 상록수도 비를 좋아합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말라 죽거나 비틀어집니다. 레이디스 멘틀이나 제이콥 레더, 호스타(옥잠화) 같은 화초들은 그늘을 좋아하고 그늘 속에서도 꽃을 아름답게 피워냅니다. 하이드렌지아(수국)도 물을 좋아하고 그늘을 좋아하며 그런 환경에서 핀 꽃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또 그들은 그들끼리 코드가 잘 맞아 그런지 함께 어우러져야 그 조화로움이 빛을 발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태양을 좋아하는 장미나 노란 꽃을 피우는 블랙아이 수잔, 빨갛고 하얀 꽃들을 무리지어 피우는 플럭스 데이비드는 물기가 줄기에 닿으면 곰팡이가 피어 잎들이 썩어가고 꽃들을 잘 피우지 않아 흉측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장미는 장미이되 작은 꽃송이가 계속 무리지어 피는 그라운드 커버 장미들은 많은 비와 가뭄에도 씽씽하게 잘 버텨내고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잘 견뎌주는 장미들에게는 덜 관심을 가지고 덜 사랑을 주게 됩니다. 말없이 순하게 자라주고 피워주는 꽃들이기에 팽개쳐 두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러다 다른 꽃들이 시들시들할 땐 이 꽃들이 고마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미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얘들아 미안하구나.”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지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나의 행동이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가끔 나는 화초들과 나무를 대할 때 싱긋 웃을 때도 있고 말을 걸 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단 그들은 피를 흘리지 않을 뿐 그들도 아파할 경우가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니 어쩌면 거미나 개미에게도 영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은 금년에 내가 죽인 거미와 개미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발보리심(發菩提心)’이란 말을 외치며 죽이긴 했지만 그래도 죽이면서도 괴로워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생물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그 속은 모르겠지만 단 사람이 아니니까 덜 양심에 걸렸을 뿐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정원을 돌아보며 사람의 영혼 또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득 '영혼도 일종의 정원이지’라고 말하는 디뉴의 주교님을 떠올린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가 파악했듯이 우리의 영혼이 정원이라면,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영혼의 정원은 어떤 형상이며 무엇이 담겨 있을까, 하루 종일 깨어 있는 시간에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을까? 내일은 증권이 폭락할지 몰라, 어느 지역 아파트 값이 올랐을까, 금값은 추락인가 상승인가, 복권을 사볼까, 은행에 맡긴 예금은 탈이 없는 것인지, 추악하기 그지없을 수도 있겠고 선하기 그지없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손발에 쇠고랑을 찬 도형수로 지내다 석방된 후 다시 주교의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를 형사 자베르의 손에서 벗어나게 한 주교의 영혼은 어떤 정원이었을까요? 보통사람들이 지니지 못한 인류애와 인간의 존엄성으로 향긋한 꽃을 피우고 있는 정원일 것입니다.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장 발장으로 하여금 사랑을 깨닫게 하였고 그가 양심에 따라 선행의 삶을 실천하도록 참 사랑을 보여준 주교를 생각했던 것은 아마 쓸쓸한 가을 탓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생물과 달리 섬세하고 미묘하고 신비스럽고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추해질 수도 있기에 수시로 가꾸어 주어야 하는 정원입니다. 지저분한 낙엽들, 시꺼멓게 죽은 꽃들이 꽃대에 매달려 있거나 떨어져 쌓여 있는 정원으로 놔둘 수는 없겠지요. 시든 꽃들을 제때 빨리빨리 가위로 잘라주어야 새 꽃들이 더 많이 활짝 피어나는 섭리처럼 영혼 속의 찌든 것들을 자주 쓸어내야 우리의 삶이 윤택하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물론 욕망의 때로 얼룩진 세상에서 독야청청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을비 속을 걸으며 어둡고 추해진 영혼에 불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wheeling (67.XXX.XXX.78)

귀한 장미꽃 망울 하나 따다 식탁위에 올릴수 있는
낭만과 깊은 사랑을 가진
그대의 따스한 우정이
다시금 느껴지는 글...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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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1 12: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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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석 (24.XXX.XXX.229)

영혼의 정원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나는 영혼에대해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느낄수있는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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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06: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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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4.XXX.XXX.229)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집 근처의 우면산으로 산책을 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더워서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갔는데 이제는 긴팔 셔츠에 등산용 점퍼를 입어야 하는 날씨로 변했지요. 오늘도 산책을 하면서 숲속의 나무들을 음미하며 인생의 가을을 깊게 고민하며 걷고 왔는데 마침 오마리씨의 영혼의 정원이란 글이 내 마음과 딱 들어맞게끔 와닫는 것 같습니다. 옛날 벤쿠버에서 거닐던 바닷가 인근의 숲에서 느꼈던 나무들의 처절하고도 아늑한 삶을 다시 맛보는 듯 합니다. 자연이 주는 맛을 오마리씨의 글을 통해 느낀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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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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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j56 (211.XXX.XXX.208)

이제 곧 겨울이 와도 꽃을 사랑하는 마리님 정원을 잘 가꾸시네요
내 마음의 정원도 내일 곧 떠난다 할지라도
자를것은 자르고 보살필 것은 보살피면
내 마음의 정원은 언제나 아름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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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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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아우의 정원, 그 마음의 정원, 남의 영혼을 보살피는 영혼의 정원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항상 여름 꽃밭 같은 정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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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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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76)

우리의 영혼을 깨끗히 다듬어야 하는 정원이라는 말슴이 너무너무 좋네요.
그냥 놔두면 황폐해지지요.
글 잘읽고 많이 퍼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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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3: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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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글을 많이 퍼가신다니 더욱 좋은 글을 써야 할 터인데
하며 걱정도 되는군요. 항상 읽으시고 좋은 답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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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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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모두 식물정원 가꾸기에는 열심이면서도 자신의 영혼밭 가꾸기엔 게으르르고 인색함을 돌아보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식물도 영혼이 있더라구요.
지난 무이파 태풍이 불 때 저희 벼는 마악 이삭을 내미는 찰나여서 일년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는 위기의 순간이었답니다. 다급한 김에 논으로 뛰어갔더니 세찬 바람에 파아란 벼들이 몸서리를 치더군요. "벼들아! 힘을 내! 이 앙당물고 오늘밤만 견디자! 이번 태풍만 견디면 누우런 황금들판으로 직행할 수 있으니까! 알았지?" 큰 소리를 지르며 1600평짜리 볏논을 한바퀴 돌았죠.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은 멀쩡하더니 2,3일이 지나자 벼이삭들이 거무튀티하게 변하는데 가슴이 메이더군요. 예년보다 절반만큼만 수확해도 감지덕지해야할 정도로.....
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조금씩 조금씩 회복하더니 언제 태풍이 지나간 흔적도 없이 완전 회복되어 자그만치 40킬로그램 포대로 72포대나 수확했다니까요!
이웃 농사꾼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저희 논의 기적을 인정했답니다. 유독 저희 벼만 누우렇게 익었으니까요!
벼들도 걱정해주는 주인의 마음을 읽고 이를 앙당 물고 빗물과 바람의 침투를 막아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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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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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자연처럼 위대한 그 무엇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자주 자연의 모든 것들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들과 꽃들과 대화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요.
아마 님의 벼들도 그렇게 자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한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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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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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134)

어느 시인이 외친<자연은 경외敬畏여라> 가 생각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건승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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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08: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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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언제나 주신 귀한 말씀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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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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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콤 (203.XXX.XXX.158)

마음이 맣아지는 글, 감사합니다. 마리님 같은 케나다하늘아래 사시네요.
귀한글들로 이웃을 말키는 님의 정원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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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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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아~~ 캐나다에 사신다니 반갑습니다.
더욱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힘이 솟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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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1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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