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이발!_(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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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이발!

이승훈

2011년 11월 10일 (목) 00:09:05

처음 치과대학에 입학하면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더 이상 '이빨'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빨은 눈깔이나 주둥이처럼 동물에게만 사용하는 비속어이므로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일상적으로는 많이들 쓰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갓 입학한 신입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곤 하는데, 그때마다 선배들은 “너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을 치료하려고 입학했니?”라고 핀잔을 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 또는 '치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습니다.

지난 일요일은 안성에 있는 하나원에 봉사 진료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하나원은 북한에서 탈출한 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입니다. 여느 때처럼 별 생각없이 진료를 시작하려 하는데 재미있는 게시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표준어와 북한에서 사용하는 문화어 중에서 치과 진료실에서 흔히 쓰는 말 몇 가지에 대비해서 적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엔 표준어에 서투른 교육생과 문화어를 모르는 치과의사 사이에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기구에 얼룩이 묻으면 안 되기 때문에 치과 진료를 받기 전에는 립스틱을 지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눈치만 보고 있어 화장을 지우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왜 립스틱을 지워야 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해 주는 웃지못할 상황이 펼쳐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립스틱을 좀 지워주시겠습니까?”가 아니라“입술연지 좀 지워주시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치석이 많아서 스케일링 좀 하셔야 겠습니다.”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환자에게는 부득이하게 “이에 때가 많이 껴서 좀 벗겨내셔야 해요."라고 설명을 했지만, 이때는“치담이 많아서 좀 벗겨내셔야 해요.”라고 설명했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듯합니다. 함께 간 다른 선생님들도 진료 준비를 잠시 멈추고 게시물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좋은 정보를 알게 됐다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립스틱과 입술연지, 치석과 치담 같은 단어들 사이에 '이'와 '이발'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문화어로는 치아의 단수형 표현이 '이'이고 '이발'이 복수형 표현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이야기한다면 '이'는 tooth, '이발'은 teeth가 됩니다. '이발'에서 '발'은 장음으로, 문 앞에 가늘고 긴 대나 줄을 나란히 엮어서 걸어놓는 물건에서 왔다고 합니다. 치아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이로 만든 발'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빨이라는 말은 이발이 시간이 지나서 된소리가 된 것으로 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비속어로 되어 있지만 이빨의 어원은 이발에서 온 것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익숙해진다면 언젠가 시간이 지난 후 표준어로 인정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장면이 짜장면이 된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 이루어질 통일에 대비해서라도 문화어와 표준어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의사 같은 전문직의 경우 통일 직후 용어 일치 때문에 애를 먹을 것이므로 앞으로는 서로 다른 용어를 조금씩 알아가고 바꿔나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