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 학교를 생각한다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방석순 프리즘

다시 우리 학교를 생각한다

방석순

2012년 01월 06일 (금) 01:06:08

“우리 가족들, 제가 이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 갈 거 같지만 우리 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이런 가슴 미어지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사람은 겨우 열네 살 소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만화나 게임에 빠져 있을 법한 나이에 저렇게 가족들을 염려하며 절절한 사연을 남기고 떠나다니. 죽음을 선택한 용기로 폭력에 맞설 수는 없었을까요. 저런 분별력으로 학교 폭력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님을 깨우치지는 못했을까요.

대구 모 중학교 2학년 A군이 꽃봉오리 같은 나이에 낙화처럼 스러져 갔습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동급생 두 사람은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대책 없이 세 어린아이들을 격리해 버렸습니다. 비슷한 시기 광주에서도 동갑내기 소년이 또래들의 폭력에 못 견뎌 목을 맸습니다. 지난해 학교 폭력 피해자는 1만3천여 명, 지난 5년 동안 폭력이나 어린 나이로는 감당 못할 고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생이 7백여 명이라고 합니다.

최근의 잇단 사건에 경찰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 1만2천 명의 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랍니다. 교육과학부는 형사 미성년을 만 12세로 낮추고, 생활기록부에 폭력 전력을 기재하며, 가해자가 중학생이라도 전학, 퇴학시킬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들고 나왔습니다.

과연 그런 조치들로 학교 폭력이 사라질까요? 아이들을 법만으로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다면 학교 폭력은 진작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동안 학교와 경찰이 손잡고 교내 폭력을 단속하는 ‘학교지킴이(스쿨 폴리스) 활동’, 어머니들을 내세운 ‘스쿨 폴리스 맘 제도’ 등등 단속 위주의 대증요법을 동원했지만 별무효과였습니다. 상대가 철부지 어린아이들이요 충동에 쉽게 흔들리는 사춘기 청소년들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의 원천적 가해자는 실상 우리 어른들인 셈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미숙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맞벌이로 너무 바쁘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안쓰러움 때문에 그 잘못까지 끼고 돕니다. 학교에서 체벌이라도 받았다 하면 교사의 멱살부터 잡고 봅니다. 교육 이상주의자들은 학생 인권을 들먹이며 교사들로부터 사랑의 매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과연 그 결과가 매 맞는 학생을 구했습니까. 친구를 때리는 학생을 구제했습니까.

대구에서 숨진 A군이 만에 하나 태권도나 호신술을 배웠더라면 그의 학교생활이 어땠을까요. 실제로 급우들의 따돌림과 구타에 맞서려고 무도를 배우면서 곤경을 극복함은 물론 인간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A군이 혹시 스포츠를 좋아했었다면, 그리고 학교-사회의 연결 프로그램을 통해 야구 스타 이승엽과 의형제를 맺기라도 했었다면. 혹시 가수의 꿈을 키우다가 비슷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스타 소녀시대와 멘토-멘티 관계라도 맺었었다면 어땠을까요. 매일처럼 아이들에게 시달리더라도 마음속에 뺏길 수 없는 자랑, 희망을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괴롭히던 아이들이 다투어 친구가 되어 달라며 졸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학교 폭력 해결의 열쇠를 예방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교사와 학생이 학교라는 자율의 울타리 속에서 즐거운 학교를 만드는 일이 시급합니다. 학교에서 수학, 영어뿐만 아니라 사물놀이나 대금, 트럼펫을 배울 수 있다면, 외발자전거나 록클라이밍, 스포츠댄스를 즐길 수 있다면 아이들에겐 지금보다 훨씬 신나는 학교가 되지 않을까요. 스포츠의 단체 응원, 영화나 연극의 단체 관람, 봉사활동, 그와 관련한 토론회 개최 등의 단체활동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특기교육과 단체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젊은 혈기를 쏟아내고 자신감과 적극성, 협동심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면 폭력이 깃들일 음지는 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영어 수업시간의 10분의 1을 쪼개서라도 의무적으로 학생들에게 그런 교육시간을 갖도록 한다면 학교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그런 교육의 평가는 수강 실기 능력보다 수업 참여의 성실도에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특기교육이나 활동에 필요한 전문 인력, 시설을 학교 교정에 모두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학교-사회의 연결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방과 후 학교’를 보다 폭넓게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학교에 부족한 인력이나 시설을 사회에서 충당하는 것입니다. 인근 지역사회의 인사나 사회에 진출한 선배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최근 친구 하나가 자신이 경험한 멘토-멘티의 만남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멘티보다 멘토인 그가 더 가슴이 설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교 선배로 정(情)도 다지고 격려도 해 주자는 뜻으로 후배 김군을 처음 만났다. 50년 가까운 나이 차이, 앞으로 1년 반 동안 나와 사귈 고1 새카만 후배다.
김군은 두 번에 걸친 개복 수술을 받으며 의사의 꿈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마침 내가 의사여서 그의 멘토로 정해진 모양이다. 나 자신 탁월한 존재가 아니어서 멘티가 탁월한 삶을 살아가게 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는 김군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의 눈을 통해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본다. 희망을 본다. 여러 모로 많이 모자라지만 최선을 다해서 멘티를 보살필까 한다. 아니, 섬기려 한다.”

그 친구와 함께 다니던 고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3학년 때던가, 정규수업이 끝나면 같은 자리에서 바로 보충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급우인 H가 책가방과 모자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일어났습니다. 키 크면 싱겁다고 곁에 섰던 K가 공연한 시비를 걸었습니다. “너 왜 보충수업도 않고 가려고 그래?” 순간 H가 K의 멱살을 끌고 교실 구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내가 네 친구야?” 하더니 후크 몇 방을 올려붙였습니다. 반 아이들 전체가 끽소리도 못했습니다. H가 교실 밖으로 사라진 뒤에야 “쟤 깡패야. 건드리지 마!”하고 수군거렸을 뿐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H는 개업의로, K는 종합병원 교수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웃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엔 영락없이 폭력배라 여겼던 친구들이 제 영역에서 어엿이 인정받는 사회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마터면 아까운 싹을 자를 뻔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법의 가위보다 사랑의 매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장래를 바꿀 수도 있는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의 위력을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학교 울타리 안에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위협으로 경계하는 것은 하책(下策)입니다.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교사의 권위와 열정을 되살려 모두가 즐거운 학교, 신나는 학교를 만드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인 학교 폭력 예방책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박대석 (121.XXX.XXX.42)

참 좋은 생각, 대안을 제시해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목사로서 학교폭력에 대해 설교는 해야 되겠는대,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는 칼럼이 없었습니다. 교사 학부모들이 이 글을 널리 읽었으면 합니다.

답변달기 ▼

2012-01-09 11:04:08

0		0

방석순 (121.XXX.XXX.42)

좋은 말씀에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보다 가정에서 먼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가까운 데서부터, 집안에서부터, 우선 나부터 언행과 자세를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답변달기 ▼

2012-01-06 18:17:16

0		0

김윤옥 (210.XXX.XXX.11)

어제 인터넷에서 여고시절 왕따 시켰던 친구가 자신의 남편 회사사장님 사모님이 되서 곤경에 빠진여자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단 한번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다'고 분개한 댓글을 달았습니다.

제 딸아이가 손녀 유치원에서 학부모 상담 시간에 아이가 '인지능력은 뛰어난데 사회성이 부족해서 친구들을 배려하기보다 휘어 잡으려한다'는 교사의 충고를 정말 고맙게 생각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매일 잠자리에 들어 엄마랑 얘기하는 중에 선생님이 손을 들어도 시켜주지않는다고 불평하면서 '그렇다고 말을 안하고 살수도 없고...' 하면서 혼잣말을 해서 온가족이 웃었습니다.
이 세상을 이웃과 조화롭게 잘 사는 훈련을 가정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답변달기 ▼

2012-01-06 14:01:51

0		0

250 (112.XXX.XXX.250)

이 나라에서 도대체 학교 교육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노동력을 키우는 교육입니까?
아니면 정글의 왕자를 키우는 교육입니까?
왕자는 못 되더라도 생존자라도 되라는 교육입니까?

이 나라의 물질만능 사회 구조를 보아 하니,
적어도 각자 참된 인간을 키우려는 교육은 아닌 것 같군요.

답변달기 ▼

2012-01-06 09:03:10

0		0

열쇠 (67.XXX.XXX.218)

힘들게 살아가는 "어른"들은 이러한 문제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겟죠?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 좋은 방안도 좋지만, 학교를 벗어난 가정과 사회시스템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끼리끼리 동호회에서 등산은 잘 가지만 가족등산은 잘 보기 어려운 사회,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며 - 또는 무시받은 쓰라린 경험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오직 성공만을 바라는 "어른'들... 이러한 사회 현상들도 분명 문제를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BULLY"문제는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정말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답변달기 ▼

2012-01-06 04:30:16

0		0

차덕희 (121.XXX.XXX.208)

어찌할꼬,어찌할고...
이런 류의 한탄이 먼저 나오는데 사회의 총체적 책임감을 느낌니다.
학교란 우리 시대는 "가방만 잘들고 다녀라"하시던 부모님들의 좀 허술한(지금에 비하면) 단속으로 즐거움이 있는 느슨한 교과과정이였지요.
선행학습이라는 것으로 학교 수업시간의 호기심의 기대치를 낯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이라 사려됨니다.
빡빡한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상상력이나 시행착오의 연습을 할 겨를이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시행착오 또한 젊음의 특권인 것을...

답변달기 ▼

2012-01-06 03:32:05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