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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래
권대욱 2012년 01월 19일 (목) 00:40:58
아침부터 눈이 옵니다. 바람도 제법 있습니다. 2층 창 너머로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다 어느덧 온 허공을 하얀 꽃잎으로 가득 채우며 춤추듯 흩날리는 눈! 방안은 따뜻하고 개
들은 평화롭습니다. 산막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 같은 아름답고 조용한 날이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송OO 선생님! 미술을 전공하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십수년 전 기천문의 도반(道伴)으로 만나 같이 집짓고 가꾸며 살다가 남편 따라 지방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산중 도장의 기둥에 새긴 조각이며 그림들… 분당 도장에서의 새벽 수련… 부안에서의 바지락 죽! 그녀와의 인연은 이렇듯 깊습니다.

수년 전 그녀가 지방으로 직장을 옮긴 후 이곳의 오두막과 땅을 처분했으면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도반 중 어떤 분이 인수코자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인수할 입장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또 몇 해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문득 그 오두막과 땅을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송 선생 남편의 정치입문 실패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원인(遠因) 중 하나이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꼭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것을 인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인수할 의사가 있고 인도할 의사가 있으니 값만 맞으면 되는 일.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중개인을 넣든가 흥정을 할 일이었지만 명색이 도(道)
공부를 한다는 사람끼리 세속적인 거래를 할 수는 없었지요. 아니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투입원가, 청산(淸算)가격, 교환가격, 대체(代替)가격… 소위 물건 값을 매기는 경제학적 이론들을 총동원하고 정황조건까지 감안한 인수가격을 정한 후 전화를 드렸습니다.

“송 선생님! 이곳 선생님 집과 땅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권 사장님이 알아서 주시지요.”
“그럼 제가 드리는 대로 받으십시오.”
“네, 그런데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이것이 우리가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생각하는 값을 적절한 시차로 지불했고 거래는 끝났습니다. 송 선생의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이 한마디에 저는 제가 내정했던 인수가격을 상당히 올려야 했습니다. 진정한 고수(高手)는 송 선생이었고 저는 하수(下手)였습니다. 무수(無手)가 상수(上手)였던 것입니다.

몇 해 전 집 거래를 하던 중 복비(중개 수수료) 이야기가 나와 중개인에게 말했습니다.
“복비는 내가 주는 대로 받으시지요!”
별 미친 사람 다 보았다는 듯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정한 대로 주셔야 합니다!”
단언코 말하거니와 나는 절대로 그가 부른 복비를 그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산막의 집과 땅은 아직도 송 선생 것입니다. 적어도 제 마음속으로는 그렇습니다. 언제든 원하시면 다시 돌려드릴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이야기할 것입니다. “송 선생님! 너무 많이 주시지는 마세요.” 라고.

권대욱
중앙고 졸업. 서울대에서 농업토목을 전공했다. 한보종합건설을 비롯, 유원건설, 극동건설, 효명건설 등 건설사 국내외 현장을 지휘했고 CEO를 역임했다. 현재는 (주)아코르-앰버서더 코리아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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