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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간
장주익 2012년 01월 27일 (금) 00:53:13
1889년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 1886년 프랑스 정부는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열기로 하고 그 박람회를 상징해줄 장엄한 기념물을 원하게 됩니다. 프랑스 통상산업부는 당시의 기술적 진보와 산업발전을 인상적으로 보여줄 높이 300미터 폭 114미터의 철제구조물을 세우기로 하고 설계를 공모합니다.

700여개의 설계도 중에서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 프랑스 태생)의 설계도가 당선됩니다. 당선작이 발표되자 반대론이 들끓게 됩니다. 철제 구조물이 “마치 괴물 같다”느니, “기린을 가두는 우리”라느니, “추악한 해골” 이나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는 등대”같다느니, 더 나아가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수치” 또는 “고전주의 법칙과의 비극적 단절”에서 “건축예술에 대한 전례없는 죄악”이라고까지들 떠들어 댑니다.

1887년 2월 14일 르땅(Le Temps)지에 모파상, 에밀졸라, 뒤마 등 당대 내로라 하는 파리의 작가,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이 “예술가의 항의” 라는 항의서를 발표하는데 “파리에 쇳덩이 조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삭막한 철 구조물을 세우는 것은 파리의 수치” 라는 내용입니다.

300미터 높이의 에펠탑은 당시 어느 수학교수의 진단으로 200미터 높이에 이르면 붕괴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고 탑이 서게 될 샹 드 마르스 공원 주변 주민들은 탑이 자기 집으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급기야 정부와 시를 상대로 소송하기까지에 이르게 됩니다.

에펠은 만일 탑이 중도에 무너지면 모든 손해를 개인 비용으로 보상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1887년 1월 28일 공사가 시작됩니다. 에펠은 탑을 건설하기 전에 이미 긴 스팬(150미터) 의 철골 아치 등으로 많은 철교를 건설한 바 있는 교량기술자요 건축가였습니다.

이 아치들은 비교적 작은 압연강(壓延鋼)을 대형 못(리벳)으로 접합하여 조립하는 구조입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질 좋은 압연강재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공급이 가능했었죠. 각각의 부재를 삼각형으로 서로 이어서 트러스를 만들어 가는 트러스 공법으로 에펠탑의 경우 1,700여장의 설계도면과 3,700여장의 부문도면으로 오차가 있을 수 없는 단단한 철제구조물이 탄생됩니다.

에펠이 설계에서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은 탑이 바람에 견디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바람에 견디도록 4개의 바깥쪽 기둥을 구조계산 아래 힘있고 강하게 구축합니다. 그리고 기하학적인 커브는 매우 부드러운 인상을 주게 되리라고 확신하였답니다.

에펠탑은 300명의 인부가 26개월 만에 완성하여 1889년 3월 31일 준공됩니다. 1만5,000개의 강철 조각과 12,050,000개의 대형 못(리벳)이 사용되었으며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면 10센티미터 정도 흔들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측되었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고 탑이 준공되자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당시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죠. 에펠은 자랑스레 외칩니다. “프랑스 말고 지구 상의 어느 국가가 자기네 나라 국기를 300미터나 되는 높은 깃대 위에서 펄럭이게 한단 말인가” 라고.

원래 계획된 수명은 20년이었지만 120년 넘게 서 있는 에펠탑은 높이 324미터(건물 81층 높이)로 41년이 지난 후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서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었습니다. 탑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는 주로 녹을 방지하기 위하여 7년마다 50 내지 60톤의 페인트로 도색작업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1985년 야간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파리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으며 2002년 11월 28일 에펠탑에 2억 명 째의 관람객이 방문을 했다고 합니다.

1886년 프랑스 정부는 신생 미합중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선물을 하게 됩니다. 뉴욕 앞바다 허드슨 강 입구의 리버티라는 작은 섬에 서있는 여신상의 발끝에서부터 오른손 횃불까지의 높이가 46미터이고 기단 부분은 48미터인데 그 전체의 내부 철재 골격을 에펠이 설계했다고 하는군요. 설계자, 건축가인 에펠 개인으로서는 자기의 이름이 붙은 에펠탑이 120년 넘게 서 있다는 것은 큰 영예임은 분명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국내로 눈을 돌려보죠. 30년 전인 1977년 서울의 대학로에서 붉은 벽돌로 새로 지은 문예회관(현 아르코 극장)의 준공식이 거행됩니다. 준공식에 참석하러 왔던 문화계 인사들은 의아해 합니다. 문예회관의 설계자요 건축가인 김수근 (1931~1986)이 단하에 앉아 있었다는군요. 당시나 지금까지나 김수근은 김중업과 함께 국내 건축계의 큰 거목으로 작품이나 따르는 제자에서나 문화예술계에서는 홀대할 수 없는 처지였었는데 말입니다.

단상에는 대단한(?) 인물들이 즐비하게 앉아서 축사, 기념사를 지루하게 이어갔겠지요. 30여년이 지난 2010년 10월 26일 서울 남산에서는 새로 지은 안중근기념관 준공식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측에서는 역시 현상설계 당선자인 젊은 건축가(임영환, 김선현)의 의자는 준비 해놓지 않았답니다. 전도유망한 두 젊은 건축가는 씁쓸히 준공식장을 벗어났다고 하는군요.

100년, 200년 가는 건물의 밑그림을 그려 창조하는 건축가와 2, 3년 혹은 4, 5년 가는 직함을 지닌 대단(?)하신 분들이 단상․단하로 나뉘는 세태는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변함이 없군요.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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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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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ypen (211.XXX.XXX.167)
자유의 여신상도 에펠의 작품이었군요.모파상 같은 대문호들이 에펠탑을 반대했다는 것 흥미롭네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두 김씨생각이 나는군요. 개발의 대척점에 있는 환경론자들도 생각나고요. 예술행사에서 예술가들이 홀대받는 것 볼썽사나운 꼴이죠. 단상에 안 올라가도 기록으로나마 제대로 대접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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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23: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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