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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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아연

2012년 02월 02일 (목) 00:50:20

새해 맞고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갔지만 얼마 전 보낸 ‘설’ 덕분에 얼추 그만큼의 날짜를 되돌려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이미 써버린 한 달치의 생활비가 통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처럼, 운좋게 시간을 덤으로 얻은 것 같아 다시 한 번 새해의 결심과 각오를 다져보게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초에 주고받은 덕담도 시나브로 설까지 이어지면서 올들어 처음 만나는 지인끼리는 아직도 첫인사가 이 말입니다. 저도 만나는 사람마다 여태껏 같은 말로 인사를 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속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납니다.

어느 핸가 “그렇게 말한다고 진짜 복을 받을 것 같으면 되도록이면 그런 말 안할 걸.” 하시던 친정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입니다. 평소 유머와 농담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지만 그 말씀을 하실 땐 마치 남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도 딴청을 피울 때처럼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곁눈질까지 곁들인 장난어린 표정이셨던지라 새해만 되면 그 기억이 저를 즐겁게 합니다.

타인의 복을 빌어주기는커녕 남의 불행을 웃기와 고명으로 살짝허니 얹어야 나의 행복이 더욱 고소하고 맛나게 느껴지는 게 사람의 비루한 심리이거늘 아무리 정초라지만 서로서로 ‘복을 받으시라, 그것도 많이’ 라고 선심을 쓴들 그게 진심이겠냐는 게 어머니의 ‘오래된 농담’에 대한 저의 해석입니다.

어머니 심중의 그 ‘복’은 탐욕과 허영, 사치와 허세를 채워줄 물질적인 의미일 뿐이니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귀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누가 누구의 복을 빌어주고 말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아흔아홉의 나머지를 채워도 순간의 갈증이 씻길까 말까하는 게 물질에 대한 탐심의 본질이라면 말입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한때는 숫제 “부자 되세요.”라는 노골적인 새해 인사도 있었지요. 이쯤되면 사람됨의 기본도 제쳐두고 돈벌이에의 몰입 내지는 혈안이 되라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니 그 또한 덕담은커녕 오히려 악담이 될 수도 있고, 제 어머니의 농담에 근거한다면 진짜 그렇게 될까봐 선뜻 할 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고난도 복’ 이라거나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의 복’까지는 아니라 해도 일상 중의 ‘복’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봅니다. ‘물질적 복’ 아니면 ‘정신적, 영적인 복’이라는 극간을 두지 않고도 우리의 삶 속에는 타인과의 경쟁이나 비교, 질투라는 잣대가 무용한, 오롯한 나만의 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어느 책에서도 말했듯이 남이 가졌다고 해서 내가 못 가질 복은 실상 없습니다. 남이 건강하다고 내가 건강하지 못할 것도 없고 남이 결혼했기 때문에 내가 결혼을 못할 까닭이 없으며, 남이 먼저 살을 뺐기 때문에 내가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억지일 테니까요. 엄격히 따지고 보면 남이 부자가 된다 해서 내가 부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실상은 물질의 복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시처럼 ‘거기서 누가 우느냐, 내가 울려는 이때를, 바로 거기서 누가 우느냐’라며 우는 것 갖고도 시비를 거는 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은 그악스레 남을 짓밟아야만 하는 심술궂은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장사를 해보니 연초에는 특히 지방이 들어간 우유 대신 탈지 우유로 거품을 낸 커피가 잘 나갑니다. 새해에는 건강을 생각해야겠다는 손님들의 작고 귀여운 결심이 반영된 결과일 테지요. 어쩌면 같은 이유로 연초에는 담배 판매량이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올 한해 동안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바로 큰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과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동의어처럼 사용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속물스러운가요. 게다가 제 어머니의 농담이 어쩌면 진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또 얼마나 민망합니까.

무심코 주고받은 덕담, ‘복’의 의미를 나만의 작은 소망과 수줍고 은밀한 기대로 바꾸어 생각하고, 어쩌면 복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어가는 것이라면 올 한 해 제 몫의 복도 한두 가지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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