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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박상도 2012년 02월 14일 (화) 15:01:43
하의 실종, 상의 실종, 꿀벅지, 짐승돌, 짐승남...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낱말들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아이돌 스타들의 민망한 순간이 절묘하게 포착되어 인터넷에 떠돕니다. 그 중 몇몇은 검색어 순위 1위에 등극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기사가 났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걸 그룹 스텔라 속옷 노출’이었습니다. 한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그룹이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격렬한 안무를 하다가 치맛 속이 노출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해프닝에 대해서 ‘일부러 보여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해당 걸 그룹의 기획사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치마 속에 입은 것은 속옷이 아니라 속바지다’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수십 개의 관련 기사가 만들어져 인터넷에 떠돕니다.

속옷이건 속바지건 노출과 관련된 기사가 한두 번 있어왔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지만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그 까닭은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보여주는 행위가 걸 그룹과 인터넷 사이트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겁니다. 방송에서는 노출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PD와 국장은 상당히 곤혹스러워집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명자료를 제출해야 하기도 하고 사안이 심각해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태생부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의 침체 속에 IT산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미국이 인터넷 확산을 위해 애초에 규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터넷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훌륭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인간의 욕구를 해소해 주는 어지러운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웹페이지 중 포르노사이트가 전체의 37%에 달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모습에 길들여진 몇몇 포털 사이트들이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여주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걸 그룹이 무대 위에서 안무 도중 노출사건이 발생하면 절묘한 스틸 사진과 함께 포털사이트 첫 페이지에 살짝 기사를 올려 놓습니다. 거기에 제목도 안 볼 수 없게 붙여 놓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해당 웹사이트를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기사를 가져다 싣습니다. 노출사고를 일으킨 걸 그룹은 순식간에 검색어 순위에 포함됩니다. 결국 걸 그룹의 기획사는 노출 한 번으로 상당한 홍보효과를 얻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한 번의 노출사고로 기획사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모두에게 득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보여주면 그냥 감사히 봐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사회가 지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집니다. 새롭게 데뷔하는 수 많은 걸 그룹 중 노출사고를 일으킨 걸 그룹이 기사화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정상적으로 무대를 준비한 다른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게 됩니다.

둘째, 정도를 지키는 인터넷사이트의 자리가 좁아집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은 상당히 난잡합니다. 성인인증을 받아야 볼 수 있을 법한 화면을 별다른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웹사이트와 경쟁해야 하는 다른 건전한 사이트들은 늘 ‘우리도 선정적인 기사로 손님을 끌어야 하나?’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셋째, 도덕적 불감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성(性)이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닌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하게 됩니다.

넷째, 역치(閾値ㆍthreshold value)의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거 규제가 강하던 시절엔 대머리나 문신이 있는 가수는 TV출연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상해졌습니다. 앞으로 무대에서 속옷이 노출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될 날이 오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시선을 끌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속옷으로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뭘까? 상상하기 싫습니다.

다섯째, 이러한 종류의 노이즈 마케팅은 사회에 불신을 불러옵니다. 과거에는 톱 스타가 무대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의심부터 합니다.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내가 이 기사에 낚이는 것이 아닐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정말 실수로 속옷이 노출되는 일이 발생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늑대와 양 치는 소년처럼 말입니다.

매스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제 했던 잘못을 오늘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사를 씁니다. ‘내가 안 쓰면 다른 누군가가 먼저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누군가는 벽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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