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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 산막의 하루
권대욱 2012년 02월 16일 (목) 02:58:55
전원생활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수고가 따릅니다. 모든 옳고 아름답고 멋짐 뒤에는 남다른 노력과 수고스러움과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 이거 정말 멋진 일 아닙니까?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일 이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아무런 수고나 번거로움도 없이 돈만 있다고, 권세만 있다고 그냥 오는 것이라면 좀 갑갑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가지지 못한, 아니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소외감과 상실감이 어떻겠습니까?

얼마 전 피치 못할 운동 약속 때문에 저녁 늦게야 산막에 도착했습니다. 날이 무척 차가워 가자마자 장작난로부터 지폈습니다. 기름보일러 하나에 의존하기에는 산중의 추위가 너무 심하고 비워둔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난롯불 하나 지피는 것도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불쏘시개를 잘 써서 처음엔 가는 나뭇가지부터 점차 굵은 놈으로, 그리고 불이 완전히 붙어 난로가 충분히 데워지면 굵은 장작을 넣고 불구멍을 잘 조절하여 은근히 오래가게 하는 게 요령입니다.

난로도 길이 잘 나야 불길이 잘 흐릅니다. 다행히 이곳 산막의 무쇠난로는 그간 수도 없는 시행착오 끝에 이제 길이 무척 잘 들어 추운 겨울밤을 따뜻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땔감도 잘 선정해야 합니다. 너무 잔 가지는 쉽게 타버리니 난로에 공급해 주는 게 번거롭고 소나무 잣나무 등은 화력은 좋으나 그을음 때문에 연통이 쉽게 막히는 단점이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참나무가 가장 좋습니다. 연기 많이 안 나고 화력 좋고 오래 가고… 일단 화기가 승하면 아주 굵은 참통나무를 서너 개 넣고 불문을 적절히 조정해주면 밤새껏 따스한 온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 탁탁 장작 터지는 소리… 밖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 그 사람 참 신선놀음 하는구나. 돈 있으면 뭔들 못하겠나,’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읽어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것 참, 쉬운 일 없네’ 라고 말이지요.

온천지가 다 산이니 나무야 그야말로 ‘천지삐까리(엄청나게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첨엔 그리 생각하고 산에 가서 땔감 해 오려는 맹랑한 생각도 했었지요. 실제로 리어카 끌고 산에 가 죽어 나자빠진 나무 동강이며 톱으로 벨 수 있는 잡목 등 하루 온종일 나무하고 나르고 쌓다보니 하루해가 그냥 쉽게 갔습니다. 그러나 쌓아놓은 나뭇더미를 보니 애걔, 요것 참으로 한심하더이다.

나무 베고 자르고 가다듬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운반이 문제였습니다. 그 무거운 리어카 혼자 끌고 내려오다 길바닥에 처박힌 적도, 비탈 심한 산기슭에서 넘어져 다친 것도 다반사. 온몸은 나뭇가지에 긁히고 가시에 찔려 상처 아물 날 없었지요.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산에서 땔감 구하는 건. 대신 참나무 장작 파는 곳을 인터넷 뒤져 한 차 가득 주문해서 씁니다, 요즘은. 애당초 나무꾼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요. 주문한 장작 쓰면서 혼자 그럽니다. 아 참, 이게 싸구나. 정말 싸구나 하고 말이지요.

난로로 장작 나르는 것도 만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야적장이 마땅찮아 저쪽 빈집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 2층집 아래 소야적장으로 나르는데 일단 우리 집 위까지 리어카로 운반한 후 일일이 수작업으로 아래층까지 날라야 합니다. 아래층 야적장에서 난로까지 옮겨야 하는 수고는 너무도 당연한 거구요. 두꺼운 가죽장갑은 필숩니다. 안 그러면 손 데고 긁히고 가시에 찔리기 다반사니까요. 눈 오는 추운 겨울밤 타고 남은 재 버리는 일 또한 장난 아닙니다. 가끔씩 연통도 떼어내 청소를 잘 해줘야 합니다.

장작난로 때기 간단하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 동네 은행 지점장을 지낸 친구는 여태 장작난로 장만 안 하고 전기난로로만 버팁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 친구 곧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라도 장작난로로 돌아올 거라고…

나무꾼 되기는 이리하여 포기한 것이지만 앞산 소나무 숲 가꾸기는 지금도 계속하는 저의 겨울 운동이자 스포츠입니다.
‘제 산도 아니면서,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수고를?’에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온산이 모두 내 산이요, 바라보는 모든 경치가 다 내 것이다. 내 맘속엔."

자연히 도구와 장비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톱과 낫, 정글도(문막 읍내 철물점에 특별 주문해 만들었습니다. 거금 3만원 주고. 자동차 스프링 강철로 만들어 튼튼하고 야무집니다). 전정도구는 기본이고, 전기톱, 엔진톱까지, 그것도 아주 성능 좋은 놈으로 모두 장만했습니다.

장만만 해선 아무 소용없습니다. 직접 쓰고 분해하고 조립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꼭 수업료를 내게 만들더라니까요. 톱날 거꾸로 끼운 줄 모르고 아무리 해도 나무가 잘라지지 않아 “이거 불량품이다” 하여 가져간 공구상에서 더벅머리 총각한테 “이런 것도 모르냐” 타박 받은 건 그래도 나은 편이고, 오일 넣을 줄 모르고 쓰다가 낭패 본 일,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적당량(25:1) 섞어 써야 하는데 휘발유만 넣고 쓰다가 엔진 망가뜨린 일, 기계 쓰고 오랜 기간 방치해서 애먹은 일 등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이젠 초보 졸업하고 기계 제법 다룰 줄 알고 분해 조립 척척할 정도가 되니 일하는 것도 신이 납니다. 오늘 아침 연료 채우고 초크 빼고 몇 번 시동을 거니 부르릉 파란 연기 내며 묵직히 움직이는 기계소리가 왜 그리 좋던지요. 산에 올라 소나무를 가리던 잡목들 몇 그루 잘랐습니다. 다듬는 일은 다음에 와서 해야지 하며 한숨 돌리니 아, 왜 그리도 세상은 아름답던지요. 노동의 즐거움 절실히 또 느낍니다. 겨울 햇볕도 더욱 따사롭습니다.

권대욱
중앙고 졸업. 서울대에서 농업토목을 전공했다. 한보종합건설을 비롯, 유원건설, 극동건설, 효명건설 등 건설사 국내외 현장을 지휘했고 CEO를 역임했다. 현재는 (주)아코르-앰버서더 코리아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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