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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김유경 2012년 02월 27일 (월) 00:29:58
시골의 새벽은 고요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차갑고 차분하고 묵직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며, 다들 잠든 사이 혼자 음악을 듣기도 하고, 부엌의 오래된 식탁에 앉아 노트에 생각을 써 내려가며 웃기도 울기도 합니다.

그날은 깊이 잠든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 겨우 감길 듯했던 눈이 떠지고 말았는데,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건만 그날따라 유난히 짜증이 났습니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저로서는 간만에 찾아온 잠이 달아나버린다는 것은 다음 날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기는커녕 엄청난 피로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익숙한 일이지만 정말이지 익숙해지기 싫은 일입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평소 같으면 음악을 듣거나 부엌에 앉아 생각을 하며 잠이 올 때를 기다렸겠지만 그날은 왜 그랬는지 TV를 틀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댔습니다. 그리고 이내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리모컨 버튼을 누르던 손이 멈춰졌습니다.

잘나가는 건축가였던 남편과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한 부인. 앉은 자리에서 아이를 기다릴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아이들을 찾겠다며 친 자매인 첫째와 둘째 입양을 시작으로 각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해 6남매를 기르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 남편은 입양한 아이들이 계기가 되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 목사가 됩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부인도 남편의 결정을 두말없이 받아들여 지금은 목사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청소 등 온갖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의 수술비, 치료비를 마련하고 생계유지와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국가의 지원 없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6남매의 엄마는 말합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났어도 다른 곳이 아닌 우리에게 입양되어서 고맙다.”고.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도 서슴없이 그녀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혼내다가도 아이들이 쓴 웃지못할 반성문에 화내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리는 말 그대로 ‘엄마’입니다.

다큐가 끝나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소음과 뿜어져 나오는 빛이 거슬려 TV를 껐습니다. 창밖에서는 빛 한 줄 새어들지 않는 그 새벽. 저는 묘한 감정에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새벽 6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습니다. 결국 올해 갓 여덟 살 된 딸과 연년생인 막내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두 시간 후에 다시 일어나야 했지만 말입니다.

아직도 그 다큐가 왜 저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막연히 그녀도 저도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라는 공통점에 공감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요. 그 공통점이라는 것도 참 애매모호합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이들에게 ‘엄마’가 될 자격요건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이 경우의 ‘자격요건’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라는 말은 일단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다녀도 친구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만큼 누가 봐도 연령적으로 성숙미를 지닌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스물네 살의 철없는 아가씨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의 4남매 중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첫째 딸과 중학교 2학년이 된 둘째 딸은 저와 함께 다니면 친구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여덟 살 된 딸과 일곱 살 된 막내아들도 함께 다니면 큰 언니나 누나 쯤으로 오해받기 일쑤입니다. 저보다 열다섯 연상인 남편은 홀로 4남매를 키워왔습니다. 웃지못할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나가면 종종 저는 남편의 아내가 아닌 큰딸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자격요건’. 저는 우선 외관상 ‘자격요건’에 한참 미달인 셈이지요. 특별히 양가의 반대 없이 처음 남편과 가정을 꾸리기로 했을 때 가장 큰 염려는 아이들과 얼마 안 나는 나이 차이, 그래서 남들의 시선에 의해 혹은 저의 존재로 인하여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아이들. 특히 첫째 딸과 둘째 딸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꼬맹이들은 이미 ‘엄마 껌딱지’가 되어 있었지만 큰 아이들은 한참 예민할 시기이기도 하고, 과연 저를 온전한 엄마로 받아들여 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었죠.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 그저 ‘잘할게’라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될 것 같지 않았기에 스물네 살 철없는 아가씨는 ‘엄마’라는 말의 무게를 처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잘해 주겠다는 약속은 안 할게. 너희가 잘못하면 혼낼 거야. 시골이라 말 많은 사람들끼리 해대는 손가락질에 상처받을지도 몰라. 대신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약속할게. 어디서든 당당하게 ‘엄마’가 되어 줄게.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너희가 엄마를 창피하게 생각해도 엄마는 항상 ‘엄마’가 되어 줄게. 그리고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좋은 점이 있다면 너희가 말하고 생각하는 걸 엄마는 아빠보다 더 많이, 더 쉽게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거야. ‘엄마’라고 억지로 부를 필요 없어. 힘든 거 알아. 그냥 너희가 진짜 엄마한테 예의바르기만 한 딸들이 아니라 투정부리고 짜증부릴 때까지 기다려 줄게.”

처음의 걱정과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사소한 것도 재잘거려 주고, 아직까진 어설프긴 하지만 곧잘 투정도 부려 주는 친구 같은 딸들과 엄청난 ‘엄마 껌딱지’인 꼬맹이들에게 좀 더 능숙한 엄마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오늘도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아이들이 되어주어서.”라고….

그리고 시골 밤하늘에 눈이 시리도록 밝은 별들 중 나의 어머니를 찾아 기도합니다. ‘어머니’와 같은 ‘엄마’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성격 좋고 친절하기만 한 ‘엄마’가 아닌 그냥 말 그대로의 ‘엄마’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모든 면에서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하나씩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차가운 시선을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도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함을 지닐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며 울고 웃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함께 자라날 것입니다.

김유경
4명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어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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