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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김유경 2012년 03월 08일 (목) 00:34:38
어릴 적 '망태할아버지'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말 안 듣고 떼쓰는 어린 '나'에게 '곰쥐'와 '망태할아버지'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올해 여덟 살 된 딸아이와 일곱 살 된 아들에게 애용하는 방법이지요. (아쉽게도 곰쥐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너 빨리 안자면 망태할아버지한테 전화한다!’ 꼬맹이들은 기겁을 하고는 이부자리로 들어갑니다. 그 귀여움에 장난이 도를 지나쳐 아이들을 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습니다.

옛날 옛적의 망태할아버지는 그냥 '망태할아버지~!'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사람(?)이었죠. '망태할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잡아간다는 말에 막연히 공포를 느꼈던 저와는 달리 우리 꼬맹이들에겐 어디선가 ‘뿅’하고 나타난다는 설정보다 전화를 하면 오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가 준비한 자루에 꼬맹이들이 들어가 있으면 연락 받고 온 망태할아버지가 자루를 들고 가 배고플 때마다 한 명씩 꺼내 잡아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잡아먹는다’는 표현은 옛날 옛적과 같은데도 어쩐지 흉흉한 요즘 세상에 더욱 공포스럽고 잔인해 보이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자리에 눕는 것부터 잠들기 전까지 전쟁이었던 ‘꿈나라’로 가는 시간이 한결 단축되었었죠. 너무 남용을 한 탓인지 요새에는 되레 배짱을 튕기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망태할아버지'가 찾아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을 거라는 둥, 꼬맹이 둘이서 장난감 칼을 들고 매우 비장한 표정으로 망태할아버지를 때려잡겠다며 문 앞을 지키기까지 합니다.

고슴도치엄마처럼 내 눈엔 그저 귀여운 반항일 뿐이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그 작고 여린 손에 무기까지 쥐고 망태할아버지를 '때려잡겠다'는 아이들이 마냥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 혹시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거울이 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논다거나 평소 놀 때의 모습들 가운데에서도 ‘아이’가 아닌 ‘끔찍한 어른들’의 모습이 중간 중간 끼어 있었음을 떠올리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어른’의 모습은 물론 부모인 저부터 시작됩니다. 딸아이가 한 살 어린 남동생에게 저의 말투를 흉내 내며 혼내는 소리가 들립니다. “원종아! 간식 먹을 때는 식탁에 앉아서 얌전히 먹어야지!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바닥에 다 흘리잖니!” 마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뉘앙스로 엄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동생을 혼내는 딸아이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뒷부분입니다. 여전히 망아지마냥 뛰어다니며 간식을 거실 바닥에 뿌리고 다니는 동생을 보며 딸아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뜸 파리채를 찾아들고 바닥을 탁탁 쳐대며 “원종이 누나가 지금 세 번 이야기했다! 너 진짜 혼나볼래?”합니다. 평소에 서너 번 이야기해서 제어가 안 될 때 때리지는 않지만 파리채를 바닥에 탁탁 치며 “엄마 지금 세 번 얘기했다! 엄마 한 번 더 똑같은 말 하면 혼나는 거 알지?”하고 혼내던 모습을 딸아이가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손에 무기를 드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제야 파리채를 없애고 벽에 ‘칭찬스티커’ 표를 만들어 붙여놓고 스티커를 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어른’의 모습은 부모 다음으로 TV와 컴퓨터에서 이어집니다.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아이들끼리 밖에 나가 노는 일은 절대 금지입니다. 최근 근처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실종사건 때문이기도 하고 집 근처에는 놀이터는커녕 골목골목 고속도로 달리듯 달려대는 자동차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꼬맹이들은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적입니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만화채널에서조차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합니다. 한 번은 아들이 장난감 칼을 가져와 등 뒤에서 저를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에게 그 일은 '사건'이었습니다. 장난이지만 전혀 장난이어서는 안 되는 것. 아들을 앉혀놓고 물어보자 "아까 만화에서 어떤 아저씨도 다른 아저씨 등을 이렇게 했는데?"라고 대답합니다. "원종이가 생각하기에 그게 좋은 거였어 아님 나쁜 거였어?" 라고 물으니 "나쁜 거!! 찌르면 아파! 다치니까 나쁜 거!" (엄마를 찌른 이유는 장난으로 정말 그렇게 되는지 궁금해서였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커갈수록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거울인 '어른'들을 배워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정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뉴스에는 하루에도 끊임없이 ‘끔찍한 어른’을 흉내 낸 아이들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고 있으며, 종전에 문제가 되어오던 끔찍하고 엽기적인, 생각하기조차 싫은 범죄들이 ‘어른’에서 ‘아이들’로 점점 연령이 낮아지고 확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세상을 배우게 될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 ‘어른’이고 그 ‘어른’들이 이젠 그런 ‘아이들’의 거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옛날 옛적 망태할아버지의 웃지못할 추억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순수한 추억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 막연하기도 하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이 외로운 외침을 저뿐만 아닌 다른 ‘어른’들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유경
4명의 아이와 함께 자라는 어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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