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금욕, 낭비와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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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금욕, 낭비와 절약

김홍묵

2012년 03월 12일 (월) 02:36:59

우리 동네에 올 들어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하철 분당선을 수원 쪽으로 연장하면서 주민들이 이용하던 보정역(용인)을 남쪽으로 200m 가량 옮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바로 인접한 이웃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을 내왕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역에서 집까지 오가는 거리와 시간을 다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더 지름길이 없을까 하는 심리에서 사람들은 보도 대신 정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정원수로 심어 놓은 영산홍과 대추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어떤 나무는 무참히 뽑혀 나갔습니다. 제 길로 가더라도 더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안 되지만 뽑히고 생채기 난 정원수를 보면 지나갈 때마다 처연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작은 편익 때문에 곧 봄꽃을 피울 꽃나무를 저 지경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니….

편안함을 찾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손을 대신하는 리모트 콘트롤러, 물지게를 없앤 스프링클러 시스템, 손빨래보다 편리한 세탁기, 도서관의 책보다 빠른 인터넷 정보, 땔감이 필요 없는 가스ㆍ전자레인지, 식탁이 없어도 되는 패스트푸드. 인간의 안이하고 게으른 속성을 대체해 주는 발명품들입니다. 모두가 인간의 생활을 편하고 풍요롭게 만든 기술의 산물들입니다.

그런데 안락만을 추구하는 와중에 인간은 스스로 나락의 구덩이를 파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로 중국 베이징(北京) 땅이 가라앉고 있다고 합니다. 시 전체 면적의 16.2%(2,650㎢), 서울 여의도 면적의 300배가 넘는 도심 상업ㆍ문화 중심지가 해마다 지반 침하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된다고 합니다. 가장 심했던 2009년에는 한 해 최대 13.8cm, 10년 간 1.16m가 내려앉았습니다.

과도한 지하수 개발 때문입니다. 1972년 큰 가뭄 이후 대대적인 지하수 개발에 나선 베이징시는 그 동안 1만 5,000곳 이상의 관정과 우물을 파 전체 용수의 3분의 2를 지하수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지하수원의 고갈로 1999년 지하 12m였던 지하수 수위가 2010년에는 지하 24m로 내려갔습니다. 이 바람에 지하 매설물이 뒤틀리고 파열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베이징 등지의 지반 침하와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남쪽 창장(長江)의 물을 끌어 오는 거대 수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남수북조(南水北調) 프로젝트로 2014년부터 연간 10억 ㎥의 물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싼샤(三峽)댐에 가둔 물을 베이징으로 빼돌리면 양쯔장(揚子江:아편전쟁 당시 영국군이 揚州 부근의 長江 하류 일대를 양쯔장이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함) 하류는 어떤 재앙이 닥칠지 아찔합니다.

물뿐이겠습니까. 만물이 숨 쉬고 생명의 자양분이 되는 공기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히고, 오폐수와 축산 폐기물 악취에 종종걸음을 쳐야 하고, 마모된 타이어 먼지로 길가에 쌓인 눈이 시커멓게 변하고, 방바닥을 닦은 걸레가 거무칙칙하게 되는 것들은 눈과 코로 바로 느끼는 현상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대기 오염은 더 두렵습니다.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한 환경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Al Gore)는 가공할 지구변화를 예측했습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해수면이 높아져 6,000만 명이 거주하는 인도의 콜카타와 방글라데시가 사라질 것이다, 상하이 일대 주민 4,0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물에 잠겨 물에 떠다니는 건물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영국 고등법원의 마이클 버튼 판사는 고어의 주장을 담은 저서 ‘불편한 진실’의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과학적 사실보다 위험을 과대 포장했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강력하고 잦은 허리케인과 토네이도가 미국을 휩쓸고, 공포의 쓰나미가 일본 해안을 덮치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 여름철 뱃길이 열리는 일들은 사실입니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질까봐 노심초사하는 기우(杞憂)로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지구의 변화입니다.

인간의 생활을 진일보시킨 신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톨릭 의대 연구팀은 최근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들은 지능 발달이 늦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판단력ㆍ이해력ㆍ어휘력이 일반 청소년보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노래방의 출현으로 노래 가사를 다 잊어버리고, 휴대전화 때문에 전화번호 암기를 포기해 기억력이 감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미국 뉴욕대에서 미디어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싱글맘 수잔 모샤트(50)씨가 2009년 아들(15) 및 두 딸(18, 14)과 함께 6개월 동안 체험한 ‘로그아웃 세상’ 이야기는 무척 이채롭습니다. 바닷가 외딴 마을에서 2주간의 정전(停電) 훈련을 거쳐 스마트폰ㆍ아이팟ㆍ컴퓨터ㆍ게임기ㆍTV 등 모든 전자기기의 스위치를 끈 채 생활하는 색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디지털 금욕 6개월. 처음에는 투덜대던 아이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람있게 보내는 법을 깨달을 만큼 달라졌습니다.
△ 음악ㆍ글쓰기ㆍ요리 등 재능 발휘 △ 학업성적 향상 및 독서량 증가 △ 함께 식사하며 대화시간 늘어 친밀도 증가 △ 책과 신문을 읽으며 깊은 대화를 할 만큼의 집중력 향상 등이 성과였다고 합니다.
모샤트 씨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과잉 정보는 우리를 구속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실험을 ‘디지털 권리장전’(Digital Bill of Rights)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시적 삶으로 되돌아가야 할까요? 매연도 전자파도 비만도 게임중독도 없는 세상으로? 아마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라는 양화는 욕망이라는 악화에 밀려나기 십상이니까요. 육류와 소금을 적게 먹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온수를 절약하고, 냉난방 시간을 줄이고, 외출 시 전원을 끄고, 세제와 치약을 적게 쓰고, 재활용하고, 자동차 공회전을 시키지 않는 일들이 위기의 지구를 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지난달 하순 출범한 LOHAS코리아 포럼(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창립기념식에 초청받아 간 일이 있습니다. 이만의(李萬儀) 전 환경부장관이 이사장인 LOHAS는 우리의 건강과 후손을 위해 자연과 자원을 보존하는 생활방식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게 주 목적이라고 합니다. 불편한 진실을 생활화하겠다는 포럼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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