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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영락없이 낚였다
박상도 2012년 03월 14일 (수) 01:18:24
미디어 학술 용어에 유사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 상호작용이기는 하지만 진짜가 아닌 진짜와 유사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일컫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만나지 않고도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TV에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국민 MC라는 칭호를 얻은 유재석씨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의바르고 착하며 인정많고 웃기고 친근하며 배려심있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바로 그가 출연한 TV프로그램을 통해서 형성된 이미지인 것입니다. 저 역시 그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기 때문에 TV에 출연한 이미지만으로 그의 인품을 유추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그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유사사회적 상호작용이란 이러한 현상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마주치는 이웃집 아저씨보다 TV에 출연하는 연예인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물론 TV에 출연하는 앵커나 MC의 경우,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TV에 비춰지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은 자신을 미화시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더 인자해 보이게 한다든가 더 반듯해 보이게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죠.

이번에는 드라마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해를 품은 달’에 나오는 인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젊은 왕인 김수현은 여심을 사로잡으며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수현이 그렇게 순정파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이 ‘이 훤’이라는 극중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김수현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악의 근원지인 대왕대비 역의 김영애씨와 영의정 역의 김응수씨는 극을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희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처럼 냉정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으실 겁니다.

대왕대비 역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는 김영애씨의 연기를 보면서

“저 사악하고 욕심많은 노인네를 봤나” 또는 “어쩜 저렇게 표독스럽게 보일까?”라고 말하실 거고

영의정 역의 김응수씨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천하에 악랄한 인간일세” 라고 말하며 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 극명하게 펼쳐지는 드라마에서 실감나게 악역을 펼치는 연기자를 만나는 것은 감독에겐 커다란 축복입니다. 그만큼 악역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 배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악역을 맡은 연기자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바로 자신의 이미지가 나쁘게 고착되는 것이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가족들이 불편한 일을 겪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제대로 소화해서 연기를 잘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속의 이미지가 드라마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사 사회적 상호작용은 드라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도 우리는 캐릭터를 부여합니다. 슈퍼맨은 지구를 구하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외계에서 온 인류를 사랑하는 믿음직스러운 인물입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은 왠지 모자라 보입니다. 하지만 측은지심이 듭니다. 우리중 누구도 슈퍼맨이나 사오정과 대화를 나누거나 밥을 먹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캐릭터들이 어떤 성격인지 압니다. 왜냐하면 TV를 통해서 그 캐릭터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본 것 같은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TV를 통해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생활이 문란한 연예인이 가정에 헌신적인 역할로 드라마에 등장하면 우리는 그가 실제로도 꽤 훌륭한 가장으로 여기게 됩니다. 기업에 유착해서 금품을 받고 사사로운 접대를 받던 기자나 PD가 번듯한 차림으로 화면에 나와서 경제 정의를 외치면 그 기자나 PD는 꽤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TV앵커들의 클로징멘트는 여의도 1번지로 가는 다리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뉴스 말미에 속 시원한 클로징 멘트를 던졌던 앵커 중에 끝까지 언론인으로 남아 있던 분이 몇이나 되는지를…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짧은 선거 유세 기간에 유권자는 후보들의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생업에 쫓겨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분들은 후보들의 이미지에 의존해서 투표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이제 선거는 TV에 출연해서 좋은 이미지를 남긴 사람에게 유리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연기자로 성공한 동창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우스개 소리처럼 자신이 사는 지역의 구청장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레이건은 대통령도 됐는데 나는 구청장 못하겠냐?’면서 당당히 말을 하는 그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드라마속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 친구는 구청장이 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입니다. 에이브러헴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을 잠시동안 속일 수는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유사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우리는 잠시 허상에 불과한 이미지에 의존해서 대표를 선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깐 속아 넘어가는 대가는 너무도 큽니다. 4년을 실망 속에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TV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준 출연자들은 연말 시상식에서 보상을 받을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뽑는 인기투표가 아닙니다. 내가 사는 지역을 대표해서 일을 해주는 사람을 뽑는 행위입니다. 공정하게 일 잘할 사람을 뽑는 모습을 보여 주어 유권자의 존엄성을 보여준다면 선출된 자는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으로 4년 임기를 바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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