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의 궤적_(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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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의 궤적

김창식

2012년 03월 21일 (수) 00:04:41

최근 사법기관의 권위를 추락케 하고 법의 권능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들이 잇따르는군요. 형평을 잃은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벌금형 석방 판결, 유력 여성 정치인의 낙마를 불러온 현직 판사의 '기소청탁의혹', 밤거리 조직폭력배의 힘겨루기가 연상되는 검(檢)‧경(警) 간의 '밀양고소사건'…. 이들은 맥락이 다른 별개의 사안들이지만, 두터운 커튼으로 가려진 권력층 내부에 이너서클이 있고, 관전이 허용되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반 국민은 그런 행태가 생경하여 어리둥절한 터에, 한편으로 기시감(旣視感)이 있어 더욱 착잡합니다.

몇 년 전의 '석궁테러사건'을 극화한 <부러진 화살>이 비수기인 겨울에 개봉하여 340만이라는 흥행 성적을 올린 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나 각색을 거친 이 영화가 논란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일반 대중이 사법부의 판결과 법 집행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의구심과 불신의 정서를 방증하는 사례로 여겨지는군요. 하긴 행방을 알 수 없는 '부러진 화살'의 궤적과 소재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화살은 먼 목표물을 향해서는 호선(弧線)을 그리지만 가까운 곳은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부러진 진 화살은 아마도 가까운 데 있을 법합니다.

법에 대한 가장 유명한 경구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 BC 399)가 언급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테네 민심을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독배를 마시기 전 친지에게 들려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오지요. 소크라테스가 법에 대해 견지한 올곧은 자세는 철인으로서의 면모를 상찬하는 사례로 자주 회자됩니다. 그의 말은 기본적으로 옳습니다. 법은 국가와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최후의 안전망이며 공동체 구성원 간에 합의된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아테네 현인이 보여준 차선의 선택에 동의하고 의연한 마음가짐에 감탄하면서도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정의와 공정성을 담보하는 법의 정신과 집행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공익의 실천에 반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서 자유롭지 않았거든요. 법체계가 개인의 양심과 신념, 보편타당한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혹시라도 의롭지 못한 이념이나 체제 유지를 위해 편법으로 존재한다면?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악법은 개선됨을 전제로 한시적으로만 기능과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체코에서 태어난 독일계 유대 작가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반어적 우화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카프카의 중편 <소송>에 인용된 '법 앞에서(Vor dem Gesetz)'라는 짧은 에피소드이지요. 한 촌사람이 법정에 들어서려 하나 문지기가 제지합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됩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수룩한 시골사람은 결국 늙어 죽음을 맞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문지기가 촌로에게 무심한 듯 내뱉는 말이 수상합니다. "자 이제 문을 닫아야겠소. 그런데, 이 입구는 원래 당신을 위해 있던 것이라오."

법체제에 대한 카프카의 날선 비판을 읽을 수 있지만, 작가의 관심은 보다 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에요.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거대한 관료 집단이나 권위주의적 시스템 하에서 억압 받는 인간존재의 실존적 불안과 숙명적 한계를 보여주려 한 것이지요. 카프카의 다른 저작들(<성>, <실종자> 등)을 살펴보아도, '어떠한' 또는 '그러한'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과 조우한 우리들 현대인이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좌초하거나 파국을 맞이함을 건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묘사해 '불편한 진실'을 한층 더 섬뜩하게 일깨웁니다.

어쨌거나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우화 속 시골사람과 같지 않다고 누군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나요? 혹 우리도 원래 우리가 주인이었으며 오래 전부터 진입하려 하지만 입구가 봉쇄된 성벽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아니면 거울 앞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며 탄식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우리 자신이 하수인이거나 가해자임을 증언하는 거대한 거울.

check it out (93.XXX.XXX.104)

9OUU8R Very informative blog.Thank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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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31 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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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1.XXX.XXX.200)

아이들이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엄마는 보지 마세요, 혈압올라 쓰러져요.' 하면서 극구 말렸습니다.
어디 혈압오를 일이 이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때론 선한 얼굴을 때론 악한 모습으로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난해한 존재인 것같습니다.
만인앞에 공정하다는 법도 이현령 비현령으로 '그때그때 달라요' 하면서 나약한 인간을 조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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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22: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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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do (114.XXX.XXX.55)

김윤옥님의 관점에 공감합니다.
이 글의 원 제목은 '벽(壁)과 경(鏡)'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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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5 12: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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