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남자, 문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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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남자, 문대성

방석순

2012년 04월 27일 (금) 00:27:47

조카가 대학을 마치고도 몇 년을 더 연구실에 파묻혀 고생하더니 마침내 박사학위를 따냈습니다. 집안의 큰 경사여서 모두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정작 그때부터 박사 조카는 적잖이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궁금증이 생기면 으레 조카에게 묻습니다. 대답이 마뜩잖으면 “박사가 뭐 그래?” 하고 핀잔주기 일쑤입니다. 학문 연구도 갈수록 세분화되어 비슷한 전공분야라도 마치 남의 나라 얘기처럼 생소한 게 많답니다. 그런 걸 모르는 집안사람들의 엉뚱한 공박에 박사 조카는 꽤나 억울했을 겁니다.

오래 전 현미가 불렀던 방송 드라마의 주제가가 생각납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하다못해 뒷골목 구멍가게 주인도 사장님으로 불리던 세태를 풍자한 노래였지요.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살짝 불렀더니 열에 열 사람 모두가 돌아보네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몽땅 사장님…” 그런 가사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석사, 박사들이 넘쳐납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학문적 연구도 깊이를 더해 갈 테니 당연한 현상입니다. 어느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에 박사 수십 명이 몰렸다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박사들 모두가 그 학위에 합당한 연구 성과를 거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로는 강의실에 몇 번 나가 보지도 않고 때가 되면 짜깁기 논문을 내서 학위를 받아가는 엉터리 박사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엉터리 논문에 버젓이 제 이름을 함께 올리는 지도교수, 그런 논문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학위를 수여하는 학교… 어쩌다가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학문의 세계가 야바위 판치는 저자거리처럼 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를 공들여 논문으로 발표한 진짜 박사들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신정아 사건’으로 촉발되어 한동안 가짜 학위, 가짜 학력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각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줄줄이 들통 난 허위 이력을 고백하며 자아비판을 했습니다. 벌써 5년 전 일입니다. 건망증 심한 우리 사회에서는 충분히 잊힐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비판대에 올랐던 인사들 대부분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을 것입니다. 검증의 도마에 오르지만 않으면, 아니 고비 한 번만 잘 넘기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아무런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엉터리와 가짜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체육계의 큰 재목으로 주목받던 태권도 스타 문대성 씨가 지금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습니다. 바로 학위 논문 탓입니다. 2007년 국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이 국민대에 의해 표절로 판정받은 것입니다.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에다 국회의원으로까지 당선되었지만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현재 교수로 몸담고 있는 동아대에서, 또 IOC에서, 국회에서 그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문대성 씨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약 세계적 스포츠 스타가 되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장신의 상대선수를 ‘뒤후려차기’ 한 방으로 쓰러뜨리던 장면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보다 쓰러진 상대를 걱정스레 들여다보던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에서 선수들의 지지를 받아 IOC 선수위원으로 뽑힌 것도 그 덕이었을 것입니다. 선수위원으로 성실히 활동해나간다면 언젠가 국내 스포츠맨으로서는 처음으로 IOC 정 위원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아직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쌓아야 할 시기. 무엇이 그를 그렇게 성급하게 만들었을까요. 아테네 올림픽 이후 불과 8년 안에 그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대학교수가 되고 IOC 선수위원이 되고 총선에 나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총선 출마는 악재였습니다. 경쟁 후보를 발가벗기는 것도 모자라 없는 허물까지 만들어내는 진흙탕 싸움에서 어설프게 쌓은 그의 성벽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논문 표절 파문에 앞서 4년 전 IOC 선수위원 선출 때 부당한 방법으로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 득표운동을 벌였다는 잡음까지 새 나옵니다.

이달 초 헝가리의 팔 슈미트(69) 대통령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마침 그도 1968년 멕시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두 차례나 펜싱 종목 금메달을 따낸 스포츠 스타 출신입니다. 그런 이력을 바탕으로 IOC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에는 내각의 지지로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20년 전에 받았던 박사학위 논문에 표절 논란이 일고 사퇴 촉구 시위까지 벌어지자 지난 2일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국가 통합의 책임을 진 대통령이 개인적 일로 분열의 상징이 됐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슈미트 전 대통령에게는 불명예 속에 사라질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문대성 씨에게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스포츠 영웅으로 거듭날 찬스가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 누려온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 출발의 의지를 보인다면 그는 아테네의 금메달보다 훨씬 더 짜릿한 감동으로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학과 체육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본보기로 칭송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슈미트가 던져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그가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방석순 (121.XXX.XXX.42)

쓸 만한 재목들마저 어른들의 잘못된 관행을 따르다 굽어지고 휘어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몸에는 좋아도 입에는 쓰기만 할 테니 올바른 충고라도 제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로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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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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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 (121.XXX.XXX.42)

직이 최고의 미덕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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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0: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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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 (121.XXX.XXX.42)

지당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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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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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자 (121.XXX.XXX.42)

이 시대의 시니어가 청장년들에게 주실 수 있는 훌륭하면서 심오한 충고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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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0: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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