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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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여성입니다

오마리

2012년 05월 07일 (월) 00:14:06

철새들이 돌아온 호숫가의 봄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적한 공원은 봄의 색깔이 완연했습니다. 혼자 즐기기에는 아까운 풍경들이지만 언제나 그러했듯이 나 홀로 하는 산책길이 누군가의 눈에는 외로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전 지인 중의 한 사람이 “항상 외로워 보여요.” 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로워 보일지는 모르지만 평상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거나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냥 외로워도 차라리 이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공원을 산책하며 내가 이런 외로움에 잘 견디도록 키워주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서서 힘겨운 세상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유년기에도 외로웠던 꼬마였지만 홀로 잘 놀았습니다. 막내로 태어나 형제들과 터울이 커서 집안에서 함께 놀아줄 형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다 어머니는 독립심이 강한 분이어서 학교에서 가져온 과제물을 거들어 주시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너는 이 다음에 무엇이 되어라, 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나에 대한 믿음이 컸던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랬기에 어린 딸을 주저 없이 이국땅으로 떠나보내셨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교육으로 나는 항상 홀로 놀고 홀로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닌가 싶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그 교육이 내겐 참으로 훌륭했다고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는 나이 마흔아홉에 아버지와 사별을 하시고 사십칠 년이란 세월을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와 살아오신 시간보다 홀로 사신 시간이 더 길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소천을 하신 후 어머니는 많이 외로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빈 자리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한 말씀은 천금과 같은 것이어서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는 어머니께 감히 대들 수가 없었는데 아버지 사후 어머니는 아들들의 태도에 많이 실망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엄마와의 재혼을 원하는 좋은 분들이 있었으나 오빠들의 거센 반발로 어머니는 혼자 그 오랜 시간을 사셨습니다. 오빠들의 반대 이유는 현대교육을 받은 그들로서는 타당하지도 않은 ‘가문의 망신’이란 이유였습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사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혼을 해서 어머니 나름대로의 행복한 여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살기에는 나의 어머니는 신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이었고 사회활동도 활발했던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했던 어머니가 홀로 살아오신 사십칠 년 간, 특히 돌아가시기 전의 십여 년은 뇌경색으로 언어 장애와 반신마비증이 왔습니다. 자존심이 강했던 어머니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음을 심히 상하셨습니다.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거나 어머니를 곁에서 지극하게 모시고 효도했던 아들도 며느리도 딸도 없었습니다. 우리말에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는 말이 바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어머니는 훌륭한 재혼 상대가 있었음에도 홀로 사셔야만 했던 것일까요? 자식들이 어머니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음에도 자신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홀로 살게 만들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비인륜적이며 비극적이기도 하였다는 생각입니다. 나이 마흔아홉의 어머니는 여성이 아닌가요? 지금 내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어 생각해보니 그 나이면 너무 젊은 어머니였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감성이 살아 있고 사랑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 하여 감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요사이 가끔 한국 TV방송을 보며 향수를 달래곤 하는데 어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러고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치아가 빠지고 주름투성이인 그 노인의 눈물은 차라리 숭고해 보였습니다. 내가 그 노인에게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 사람이 벌써 팔십이 넘은 할머니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나이에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듯 그 할머니 또한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젊은 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기에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도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딸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오십이 넘은 여성이거나 팔십이 넘은 여성일지라도 그들이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딸이며 가슴이 살아서 뛰는 여성, 사람인 것입니다.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내가 이 외로움을 느끼며 공원을 걷고 있듯이 나처럼 선영의 호숫가와 나무숲을 걸으며 외로워하다 세상을 떠나셨을 것입니다. 물론 나무와 화초 그리고 자연에 자신의 정을 쏟고 살며 위안을 받으려 하셨고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셨지만 그것이 어디 사람이 주는 정과 따스함 같았겠습니까? 아무리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물질의 풍요함이 크다 하여도 사람에게서 받는 훈기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그 선영의 방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어졌을 때 어머니는 사람의 인기척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어머니의 사후 수백 개가 넘는 조화(弔花)가 병원에서 거리까지 줄을 지었다고, 나중에는 더 이상 꽃들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조화를 사절했다는 말로 오빠들은 호상이었다고 만족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사후에 받은 셀 수도 없었다는 그 조화들이 생전 어머니의 외로움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지 나는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효녀였던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 집 자식 중 누구보다도 못한 불효의 대표자식입니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해외에 있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생신도 명절도 어버이날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딸이었습니다. 거기에 편안하지 못했던 결혼생활과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돌아가실 때까지 졸이게 하였던 딸이었습니다. 더욱이 가장 컸던 불효는 어머니가 숨을 거두시던 그 순간, 막내딸을 애타게 찾으셨다고 하는데 나는 그 임종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후약방문으로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만 만일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다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어머니 곁에서 몇 년간이라도 봉양하러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불효를 씻고 싶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큰 불효는 보고 싶은 자식들의 얼굴을 자주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는데 젊은 날의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식들의 관심과 사랑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깨닫고 있는 어리석은 초로의 여성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빨강머리 앤’에 푹 빠져 있던 철없는 소녀 같습니다. 가끔 젊은 날의 사진첩을 꺼내 회상에 젖는 날도 많아집니다. 그 사진첩에는 많은 추억과 사연이 여기저기 어려 있으니까요. 그 속에서 유난히 어머니의 처녀시절 사진이 눈에 띕니다. 키가 유난히 커 날씬했던 어머니 그리고 커다랗게 쌍꺼플진 눈과 호수같은 눈동자의 어머니, 그 해맑은 어머니가 나의 엄마라니요!

그림 (110.XXX.XXX.58)

배교문학상 수상식을 하는 날이네요
기쁘고 복된날이네요
정말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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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5 14: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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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XXX.XXX.117)

로그인을 반드시 해야하니 덧글이 많이 줄었네요
맞아요 자식이 타국에 있으면 마지막을 못 볼 경우가 많지요
그 아쉬움 가슴 아픔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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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1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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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31)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사연입니다.
가정의 달에 한번쯤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겠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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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09: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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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71.XXX.XXX.61)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제 대신 글을 써 주신 것 같아서. 이제 보니 내일 모레가 어버이날 이군요. Take care. Thank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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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08: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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