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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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

허영섭

2012년 05월 26일 (토) 03:07:53

대만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의 집권 2기를 맞아 한국과 대만 양국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가 관심입니다. 비록 외교관계가 끊어져 있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지난해만 해도 양국을 오간 인원이 무려 65만명에 이르며 무역액 규모도 330억 달러에 이를 만큼 중요한 협력관계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양국 교류가 공식적인 통로를 거쳐 진전될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1992년 중국과 수교가 이뤄지면서 대만과의 외교관계가 끊어진 지 20년 동안의 공백이 그만큼 크고도 깊다는 얘기겠지요.

대만과 일본과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197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한 이래 서로 대표부를 설치하고 민간 형식의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대만과 우리의 관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과거 청일전쟁의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50년 동안이나 대만이 일본의 식민체제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잉지우 총통이 지난 20일의 취임연설에서 일본과의 ‘특별 동반자(special partnership)’ 관계를 거듭 강조한 데서도 그런 분위기가 확인됩니다. “지난 40년간 대표부 설치에 덧붙여 항공·문화·투자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평가입니다. 현재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23개 국가와의 친선을 다짐하는 외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및 일본과의 우호관계만 언급됐을 뿐입니다.

항공 분야에서의 진전이라면 오히려 최근 부활된 서울 김포공항과 타이베이 쑹산(松山) 공항 노선이 고려됐을 법했는데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979년 폐지됐다가 33년 만에 노선이 새로 열렸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마 총통 자신이 지난 2008년 처음 총통선거에 나서면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추진과제였기에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을 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마 총통이 이번 취임연설에서 한국을 전혀 거론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개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경쟁자로서의 관계였습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중·일 3국간에 논의가 시작된 FTA를 거론하며 대만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응책으로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과 경제협력을 가속화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한국과 대만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풀리지 않는 앙금이 쌓여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지난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 종목에 출전했던 양수쥔(楊淑君) 선수의 실격패를 계기로 반한감정이 표출된 것이 일시적인 현상만은 아니었다고 여겨지는 까닭입니다. 대만의 유력 정치인들이 한류를 이끌어가는 한국 드라마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던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됩니다.

이를테면, 대만에 있어 한국은 과거의 ‘형제의 나라’가 아니라 ‘그밖의 다른 나라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대만을 소원하게 대하는 결과임은 물론입니다.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잊혔을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피해자로서의 기억이 어른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양국 관계에 드리워진 불편한 분위기가 앞으로도 여간해선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의식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대만과의 관계 진전을 회피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때문에 동시에 양쪽과 교류를 진전시키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겠지요.

실리 외교라는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해안에 출몰하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문제로부터 최근 랴오닝(遼寧)에서 체포되어 구금중인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의 석방문제에 이르기까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중국 및 대만과의 관계에서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대만과의 관계가 살아 있다면 중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이 남한과 교류하면서도 북한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형평성을 우리는 왜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센카쿠(尖閣) 열도의 관할문제로 중국과 일촉즉발의 분쟁을 겪으면서도 대만과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지혜가 부러울 뿐입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대만과의 관계 개선은 정부보다는 기업체나 대학, 문화단체 등 민간 채널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로서는 민간교류를 적극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양국의 외교관계가 끊어진 지 20년을 지나면서 민간 차원에서나마 서로 앙금을 털고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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