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대 초 미국에서 성 범죄자에게 거세형(去勢刑)을 선고한 재판 결과를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성 폭력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주(州)법원이 내린 판결은 화학 약물을 투여하여 성욕을 감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피고인에게 투여하게 된 약물이 하필이면 자신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재직 중인 제약회사의 제품이어서 더욱 기이하면서도 아이러닉하게 느껴졌습니다.

거세라면 일단 내시나 환관을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중국 고대의 오형(五刑) 중의 하나로 역사가 사마천에게 내려졌던 치욕적인 궁형(宮刑)이 떠오르게 됩니다. 미국과 같이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주 국가에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형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소한 제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의 사회문제로 치열하게 논란이 되는 범죄가 어린이 성폭력문제이고, 물리적 거세가 아니라 화학적 거세라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고민과 결부시켜 관심을 끌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형벌제도가 다르지만 강간범에 대해서는 아주 중형으로 다스리는 전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으로 입법 활동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반역과 살인을 제외한 범죄에 사형을 없애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1776년 강간범을 사형 대신 거세로 처벌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되었다고 하니 당시 강간범에 대해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형벌제도로 진기하게 여겨졌던 화학적 거세형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시행된다고 합니다.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지난달 아동성폭력 전과 4범에게 성충동약물치료, 즉 거세형 명령을 내렸습니다. 45세의 이 남성은 2002년 혼자 걸어가던 10세 여자 어린이를 강제로 추행하려다 붙잡혀 징역형을 받은 후에 계속 세 차례나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으로 당국이 성도착증 환자로 판단한 것입니다. 오는 7월 형을 마치고 출소를 하는데,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 법무부가 화학적 거세형의 방법을 채택한 것입니다.

화학적 거세의 법제화는 2010년 여름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16세 미만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로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검사가 정신과 의사의 감정을 받아 법원에 치료명령을 청구하게 됩니다.

모든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큰 상흔을 남깁니다. 특히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성폭력은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줍니다. 그래서 개명된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린이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화학적 거세형을 채택하고 있고, 독일 스웨덴 폴란드도 비슷합니다. 체코는 최근까지도 범죄 예방효과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물리적 거세형을 시행해왔습니다.

형벌제도는 그 사회의 국민 정서를 반영합니다. 처음 시행하는 화학적 거세형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은 어떨까요. 어린이 성폭행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를 반영한 듯 반대 목소리는 SNS에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뜨거운 이슈로 발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이슈가 정파의 찬반으로 연결될 때 논란이 뜨거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거세형도 언젠가는 정파끼리 갈려 찬성과 반대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형벌도 찬반 논란으로부터 피할 수 없지만 화학적 거세형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거세는 인간, 특히 남성에게 가장 치욕적인 형벌입니다. 고대 야만의 시대에는 전쟁의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남자들을 모두 거세하고 여자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형을 면해주는 대신 내려지는 형벌로 간주되었습니다.

거세형은 수치심에 의한 정신적 고통과 약물 부작용 등 인권문제를 부릅니다. 성범죄 재범 방지에 효과적이냐를 놓고 논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화학적 거세는 신체적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권옹호론자들은 화학적 거세를 이중처벌이라는 논리도 폅니다. 반면 서구 사회에서 시행된 약물투여 방식에 근거해서 화학적 거세형이 성범죄 재발률을 현저히 낮췄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결국 화학적 거세형 논란은 사회적 안정과 범죄자의 인권이라는 저울추 사이에서 평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동안 성폭행 범죄자에 대해 보호감호조치, 정신과치료, 전자팔찌 채우기 등의 방법을 썼으나 그들의 습벽을 바꾸지 못했다면, 어린이 성폭행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는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여 거세형은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재범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국가가 거세를 하겠다고 덤벼드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