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등치기 국수, 입맛의 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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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치기 국수, 입맛의 새 발견

허영섭

2012년 06월 14일 (목) 03:28:25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각 지역의 토속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와 풍토의 차이로 인해 식재료와 조리 방법이 달라지게 되고, 따라서 미각 신경이 새롭게 자극을 받게 됩니다. 비록 접시와 그릇마다 아로새겨 근사하게 차려내지는 않더라도 토속음식은 그 자체로 짙은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을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겨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에도 그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의 백운산 등성이를 연결하는 ‘하늘길’을 4시간 가까이 걷고 나서 마주친 한 그릇의 콧등치기 메밀 칼국수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희끄무레한 면발의 겉모습처럼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이었다고는 해도 미각의 돌기세포를 마지막까지 은근하게 잡아당기는 메밀 장국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텁텁하고도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필경 메밀을 키워낸 고랭지 밭고랑 흙냄새에 햇빛과 비바람이 연쇄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만들어낸 작품일 겁니다. 메밀을 거두기까지 애쓴 농부들과 아낙네들의 땀냄새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자극적인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나머지 웬만큼 맵거나 짜거나 새콤하지 않으면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혓바닥도 콧등치기 칼국수에는 금방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트레킹을 끝내고 점심치고는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산길을 걸으며 등성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의 군락을 구경하면서 잠시 허기를 잊은 터였습니다. 해를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이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것도 해발 고도가 무려 1,000m가 넘는 트레킹 코스였으니 말입니다.

그 하늘길의 뿌듯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맞닥뜨린 것이 바로 콧등치기였습니다. 메밀 음식이라면 단순히 냉면만을 떠올리던 입장에서 나름대로는 새로운 발견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동안 강원도 지역을 적잖이 오갔으면서도 연락이 끊어졌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우면서도 약간은 어색한 듯이 마주하게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며 국수 사발을 훌훌 들이키다 보니 금방 다시 친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만드는 방식도 그리 까다로울 이유가 없습니다. 즉석에서 반죽한 메밀가루를 나무 밀대로 적당하게 편 다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뚝뚝 썰어내서는 된장을 푼 국물에 질끈 끓여내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물론 국수를 끓이면서 감자나 호박, 당근 등을 채로 쳐서 함께 집어넣으면 더욱 일품이겠지요. 그 맛을 음미할수록 하늘길의 바람소리와 아우라지의 흐름을 따라 퍼져가는 아리랑타령의 구슬픈 곡조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맛도 맛이려니와 콧등치기라는 이름에서도 운치가 묻어납니다. 후루룩 입속으로 빨아올리다 보면 그 탄력으로 뭉툭한 면발 끝이 콧등을 올려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이 약간씩 달라 ‘콧등튀기’라거나 그냥 ‘콧등 국수’라고 부르기도 한다지만 지난날 밥 지을 곡식이 부족한 탓에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는 방법이 개발된 것임은 마찬가지일 터입니다.

어디 콧등치기 국수뿐이겠습니까. 요즘 강원도 음식의 별미로 대우를 받는 메밀 전병이나 감자 옹심이, 수수부꾸미, 옥수수 전분으로 만드는 올갱이 국수가 대부분 그랬었겠지요. 지금은 영양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곤드레나물밥도 원래는 맛을 즐기기보다 모자란 식량 대신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물을 넣어 밥을 지었던 게 아닌가 여겨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이 생활의 여유로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본보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정선을 비롯해 영월, 평창, 태백 등 일대 지역은 나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날 석탄을 캐내 운반하던 백운산 운탄길이 석탄산업 사양화로 인적이 끊어지다시피 했다가 다시 트레킹 코스로 자리잡아 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늘길 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원랜드 카지노도 골프장, 스키장에 컨벤션센터까지 갖춘 종합 리조트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2018년으로 예정된 동계올림픽 준비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일대의 지형은 덩달아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콧등치기를 비롯한 토속음식조차 도시적인 얄싸한 입맛으로 바뀔까 지레 걱정됩니다. 나름대로 맵시를 갖추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나치면 이미 토속음식일 수는 없습니다. 마치 달빛 아래 소금을 뿌린 듯하다던 메밀밭이 갈아엎어지고 그 자리에 급조된 펜션이 우르르 들어서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걱정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콧등치기가 앞으로도 한결같이 지금의 콧등치기로 남아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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