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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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신아연

2012년 06월 26일 (화) 01:17:30

며칠 새 부쩍 병이 위중해졌다는 소식을 엊그제 아들애한테서 들었습니다. 더 이상의 병원 치료는 의미가 없게 되어 퇴원해서 아주 집으로 돌아오셨다지요. 아들애 말이 명랑쾌활한 본성을 가진 ○○이도 혼자 있을 땐 많이 운다니 무척 마음 아픕니다.

페이스북에서 ○○이와 아들애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언뜻언뜻 ○○어머니의 병세가 섞여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를 여러 번 하던 끝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심을 이제사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암’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지가 언제라고 그간 안부 전화 한 통 못 하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오늘 이렇게 뒤미처 편지를 씁니다.

○○이와 친구로 지내는 아들애가 얼마 전, “엄마, 아줌마가 엄마 전화 기다리신다는데 왜 아직도 전화 안 드려요?”라며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을 때도 저는 군색한 변명만 찾았더랬습니다.

그러다 그애가 엊그제 또 저를 다그칠 때 저는 기껏 “많이 아픈 사람은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하는 법이야.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들고 하필 자신이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거든." 하며 비겁한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지난 번엔 어이없어하던 아들애가 “자존심은 무슨!, 엄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려고!”하며 따지듯 한마디 하곤 제게 단단히 실망을 해서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저는 사실 ○○어머니께 무슨 위로를 드려야 할지 두려운 마음에 지금껏 전화 한 통 드리지 못 했습니다. ○○어머니가 병만 아니라면, 아니 병도 괜찮지만 ‘암’만 아니라면, 여느 때처럼 전무님 안부도 묻고 유별나게 똑똑한 두 딸애들 대학 생활도 묻고 우리 식구 사는 이야기도 했을 텐데, 중병에 걸린 분과는 더 이상 그런 일상의 안부를 천연스레 나눠선 안 될 것만 같고 그렇다고 병세만 집중적으로 물어서도 안 될 것 같아 갑자기 거리감이 생겨 미루는 마음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부자연스럽게 대할 때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는 것을요. 지나치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행동하는 것도, 그렇다고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명랑함을 가장하는 것도 환자를 외롭고 고독한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을요.

그래서 어쩌면 저는 ‘일상적 나눔과 병에 관한 대화의 마치맞은 황금비율’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어머니와의 통화를 미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호주에서 주재원 가족 생활을 하실 때 제게 하신 말씀 기억나세요? 우리는 그때 너무 잘 먹고 잘 놀러 다니고 무엇보다 건강했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셨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러셨지요,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무섭다고. 단지 나 자신과 가족밖에 모른 채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이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줄 거라고. 그때 저는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겸손한 신앙고백과도 같은 그 말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희생은 고사하고 자기 가족 건사에도 생색을 내고 야박하게 구는 요즘 세상에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기 확장적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은 그 자체로 숭고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말씀만 그렇게 하셨을 뿐, ○○어머니가 주변에 베푼 넉넉한 인심과 푸근한 웃음,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던 모습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무렵 43세의 나이로 암투병 중이던 저의 서울 친정 오빠를 살아서는 마지막으로 보고 돌아왔을 때, 제게 “이제 고만 상심해라, 우짜겠노. 그러다 생병 난다.” 하면서 안쓰러이 위로해 주시던 일도 지금껏 고마운데, 지금 저는 ○○어머니가 제 오빠와 같은 처지에 놓이셨다는 게 가장 기가 막힙니다.

○○어머니, 아시다시피 저는 ○○어머니의 상태를 정확히 모른 채 그저 아이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를 통해 듣고 추측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현재 상태가 호전될지 악화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살아 온 50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를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단 한 가지만은 붙들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윤옥 (110.XXX.XXX.229)

대학동기중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지냈던 친구가 다시 위중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리라 맘먹었지만 하루 하루 미루다가 임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후회스럽고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녀 딸아이의 전언으론 우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침상에 놓고 지냈다합니다.
그렇게 쉽게 떠나다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가벼운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보내신이의 뜻에 따라 가야할 줄 알기에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해 봐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도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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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 21: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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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220.XXX.XXX.168)

죽는 것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찌보면 그렇게 큰 어려움은 아닙니다. 다만 고통없이 죽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자연사' 할 수 있을까 그것이 큰 숙제입니다. 무량광대한 이 우주 속에 던져진, 버려진 내 목숨 하나만 뭐 그리도 대수롭겠습니까. 이 아침 내 삶을 생각해보게 해주시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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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9: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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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3.XXX.XXX.30)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떠나갑니다. 마치 살면서 이 일처럼 쉬운게 없었다는 듯이 간단없이 이승의 경계를 넘어가는 지인들을 보면서 저 역시 떠날 채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늘이건 내일이건 보따리는 늘 반쯤 싸 둔 상태입니다. 먼지보다 못한 존재인 '나'이지만 그 속에 우주를 담고 있다고 하니, 죽음에 대해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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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4: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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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3.XXX.XXX.30)

죽기에 '적합한' 나이란 없겠지만, 그분을 생각하면 그래도 '아직은'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다시 태어나지만 그래도 별리의 슬픔은 감당하기 힘들지요. 희망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뜻은 희망없이 죽어갈 수도 없다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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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4: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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