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발로 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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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발로 차지 마라”

임철순

2012년 07월 11일 (수) 00:23:35

‘도종환 시인의 작품 교과서 삭제’ 논란이 일단락된 것은 다행입니다. 도 시인의 작품을 배제토록 했던 교육과정평가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중앙선관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삭제 촉구방침을 철회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평가원이 위촉한 교과용 도서 검정심의회는 10일 오후 회의를 열어 격론을 벌인 끝에 게재 허용으로 선회했습니다. 17일까지 새 교과서 수정안을 내게 돼 있는 출판사들은 이 방침에 맞춰 교과서와 관련 도서를 제작하면 됩니다.

이번 일은 거의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생각해야 할 점이 좀 있습니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2013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국어 검정교과서 16종에 대해 검정사업을 해온 교육과정평가원은 대학교수ㆍ교사 등으로 구성된 검정심의회를 거쳐 지난달 26일 출판사 8곳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의 시와 수필을 넣지 말라고 수정ㆍ보완을 권고했습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출연한 영화 <완득이> 사진도 교체토록 요청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열흘도 더 지난 9일에야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평가원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서 현역 정치인을 포함한 현존 인물에 관련된 내용을 제외하는 것”이라고 수정ㆍ보완 촉구 사유를 밝혔습니다. 교과서 공통 검정기준에는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이 있는가’, ‘정치적ㆍ파당적ㆍ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거나 특정 종교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 내용이 있는가’를 따지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도 의원의 작품을 배제토록 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도 의원 본인은 물론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문인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자 평가원은 한 발 물러나 선관위에 의견을 물었고, 선관위는 ‘이건 우리 일이 아닌데’하는 떨떠름한 표정인 채로 “출판사가 특정 정치인의 작품 등을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만으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2002년에 교과서에 오르기 시작한 도 의원의 작품은 현재 시와 수필을 합쳐 12편이나 되지만, 삭제 논란을 촉발한 작품은 아마도 <담쟁이>라는 시인 것 같습니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부를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전교조 활동을 했던 도 의원이 1989년 구속됐을 때 쓴 옥중시로 생각됩니다.

이 시가 문제된 것은 도 의원이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인 문재인 의원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 의원 지지자들의 모임 이름이 ‘담쟁이포럼’입니다. 이사장을 맡은 한완상 전 부총리는 “아무리 높은 벽일지라도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한몸이 되어 오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름을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의원도 6월 17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 시를 인용했습니다. <담쟁이>는 현실 비판과 서정성, 대중성, 공동체 연대정신을 고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작품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평가원은 삭제 권고를 했겠지만, 그것은 정치적 중립을 과도하게 해석한 결과라고 판단됩니다. 작가가 정치에 입문한다 해서 그 작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보적 문인들의 단체인 작가회의가 “교과서에 실리게 된 시들은 정치인 도종환 이전에 시인 도종환의 작품”이라며 “(삭제 조치는)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품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과서에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는 안도현 시인도 “(나도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사람이니) 내 시도 모조리 빼라”고 반발했습니다.

도종환 의원 본인은 국회 본회의 발언을 통해 자작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하며 “단지 국회의원이 됐고,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서 작품을 빼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아닐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문인들은 보수ㆍ진보를 가릴 것 없이 다 반발하고 있습니다. 평가원으로서는 “도 의원이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이었더라도, 그리고 소속 상임위가 문화체육위가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의 상전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학위였더라도 이 시를 문제 삼았겠느냐”는 비판이 가장 아팠을 것입니다.

<꽃>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이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 됐을 때, 그의 시 <꽃>을 교과서에서 빼자는 논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일이 벌어진 것을 보면 시 소설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작가의 정치ㆍ사회적 신분 변화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와 공통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정부에서 오래 문화부장관을 한 <정복자>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좌파 공산주의자였다가 드골주의자로 변신했지만 좌ㆍ우파 어떤 정권도 그의 작품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이문열 씨의 소설 교과서 삭제운동을 벌이더니 10년 뒤에 도종환 시인의 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언급과 주장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방송인 김제동 씨가 트위터에 올린 말입니다. 그는 "시인을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고운 글이었던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응용한 비판입니다.

시는 시인을 떠나면 독자들의 것이 됩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해석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일수록 좋은 작품입니다. 도종환 의원의 말대로 어느 한 쪽으로만 해석되는 시는 생명력이 금세 고갈됩니다. <담쟁이>라는 시도 장애인의 입장, 사업에 실패한 사람의 입장 등 다 다르게 읽힐 수 있고, 정치의 계절인 지금에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가자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나 <담쟁이>는 고난과 극복의 이미지 때문에 IMF 이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뜻인지 애매하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좋은 시입니다. 읽는 사람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다양한 의미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서로 같거나 비슷한 동시대인들의 감성을 확인케 하면서 나만을 위무해 주는 듯한 작품일수록 다의적이고 중의적입니다. 짧은 말 속에 우주와 삶과 시대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삭제 논란에 휩싸인 <담쟁이>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뜻으로, 여러 사람의 처지에서 다르게 읽히고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일정 부분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담쟁이>를 보면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을 연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됐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들이 ‘처음처럼’이라고 모임 이름을 짓자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처음처럼’이라는 소주를 마시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끈기와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인식되는 식물 담쟁이를 그런 정치적 이유에서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담쟁이>라는 좋은 시의 이미지가 한 가지로 고착되거나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오히려 협소해지면서 끝내 시의 향기까지 잃게 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윤옥 (110.XXX.XXX.229)

교육과정 평가원이
잘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에
앞뒤 가리지않고 찍었던 정권 초기
국민의 공분을 사 촛불의 저항을 받고서
청와대 뒷산에서 '소통을 다짐한 다음날'
기막힌 컨테이너 장벽을 구경했던 국민들이
담쟁이 처럼 손에 손잡고 구리스칠로 미끄러운 장벽을
올라야했던 그 비극적 장면을 연상하고
서둘러 내렸던 결정이었던 것같습니다.

알아서 긴다는 것이
사람을 비굴하게도 하고
부끄럽게도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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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4 23: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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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 (211.XXX.XXX.129)

어휴~ 그러다보면 교과서를 없애자는 결론에 도달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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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14: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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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교육평가원 공무원들은 발로 차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그들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여 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결과는 그들의 생각이 짧았다고 많은 이들이 평가한 것뿐이지요.
시인은 발로 차면 안되는 존재인가본데 외국 이민자에 대한 언급은 없군요.
김제동씨는 밑바닥의 정서가 편향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의 경우 도종환 시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면 이자스민 같은 약자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이자스민의 사진은 없애면 안된다는 말은 여러사람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인지?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수준 높은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보면 한번 깊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가벼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담연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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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14: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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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호 (121.XXX.XXX.16)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명철한 분석을 해주신 글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이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서귀포에서 정 달 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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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10: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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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21.XXX.XXX.16)

국회의원님으로보다 시인 선생님으로 더 존경하는 사람의 의견으로는 관점이 좀 다릅니다. <사전 그런 규정과 조항 또는 의견이 있었다면>을 전제로 말씀 드려 봅니다. 만약 그랬다면 주위에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해도 본인이 나서서 그러지 않았으면 더 보기가 좋았지 않았을까 싶고요. <가이샤라의 것은 가이샤라에게로>란 말도 잇으니까요. 그 시의 내용을 바꾸라는 것도 아닌데 싶고 그랬다면 오히려 그 시가 더 빛나고 더 많이 사랑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악의를 가진 후대의 다른 사람에게 어떤 빌미를 제공하는 선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정치색이란 건 숨길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 의원님이 시인이 아니었다면 문인을 대표한 비례대표로 뽑히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요. 도 선생님을 참말로 많이 사랑하는 한 독자의 사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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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0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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