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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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오마리

2012년 07월 31일 (화) 03:13:15

노란 장다리꽃, 해바라기꽃이 피는 여름이 오면 나는 항상 하나코(花子)를 떠올리곤 합니다. 어느 여름날 사십이 좀 넘어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우리 집으로 살러 온 하나코는 첫인상이 아주 맑아 보이는 소녀였습니다. 어떤 연유로 오게 된 것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지만 하나코의 어머니가 일본여성이었고 해방 후 무슨 이유에선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가 우리 집으로 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코를 한국이름으로 바꾸어 화자라고 불렀고 화자는 어머니와 함께 행랑채에 살며 집안일을 거들었습니다. 화자는 내 어머니의 배려로 학교에 가는 것을 허락받아 나의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집에 돌아오면 아주 간단한 집안일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성적도 좋았고 피부가 뽀얀 데다 얼굴이나 몸매가 예뻐 동네나 학교에서 인기였습니다.

얼굴이 동그랗고 눈망울이 커다란 화자가 우리 집에 나타났을 때 가장 그녀에게 관심의 눈길을 준 사람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오빠였습니다. 오빠는 화자가 걸레를 빨거나 부엌일을 하는 화자의 어머니를 돕는 것을 볼 때마다 그녀가 가벼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화자에게 동정심을 보이며 불쌍해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 사이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화자가 여학교를 들어가고 차츰 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녀가 소녀의 티를 벗고 숙녀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하자 사춘기 소년을 지나 청년기에 들어선 오빠의 영혼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화자는 정말 한 송이의 장미꽃처럼 화사하게 피기 시작했습니다. 요샛말로 섹시하고 요염한 여성으로 변해가는 화자에게 오빠는 점점 깊게 빠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이 취미였던 오빠는 화자를 모델로 삼아 사진을 찍거나 왠지 기타를 치며 애상조인 일본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가슴아파했던 이십대 청년의 열정이었을 것입니다.

오빠는 첫사랑이었던 화자가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결혼상대가 될 수 없음을 괴로워했지만 화자와의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를 사랑했던 화자는 많은 상처와 슬픔을 안고 우리 집을 떠나갔습니다. 화자가 떠나갈 때 우리 집안의 대들보 격이었던 큰 언니는 화자에게 오빠를 잊을 것이며 괴롭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화자를 전화국 전화교환원으로 취직시키고 화자와 그녀의 어머니가 살 수 있는 거처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집에서 받았던 상처를 잊지 못하고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오빠가 신혼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화자는 오빠의 영혼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놓아주지 않기로 작정을 했던 것인지 매일 오빠에게 전화를 하며 오빠의 신혼생활을 방해했습니다. 새언니가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빠와 화자와 새언니의 신경전은 무섭게 시작되었습니다. 새언니는 그녀가 받은 충격과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방황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결혼생활에 화를 자초했습니다. 결국 오빠와 새언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으며 오빠는 끝내 화자의 바람대로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이 사건 이후 오빠가 화자와 재혼을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빠는 다시 미모의 처녀를 만나 재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평생을 같이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과연 오빠가 화자를 기억 속에서 완전하게 지워버리고 첫사랑을 버렸을까요?
오빠가 재혼한 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오빠의 책장에서 발견된 화자의 사진들은 오빠가 그녀를 얼마나 오랜 세월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화자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요염하기 그지없는 숙녀시절의 누드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어린 나는 충격이 컸습니다. 오빠는 우리 형제들 중 가장 예술적이었고 심미안이 높았으며 음악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성에 대한 안목도 상당히 높아 여동생들의 외모와 옷차림에 대해서까지도 신경을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성이 깊고 예민했던 오빠가 첫사랑을 쉽게 지워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로 인하여 이혼을 하였던 새언니는 이혼 후 홀로 살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새언니의 죽음에는 오빠와 화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통기타 시대의 절절한 노래가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내용이나 멜로디가 가슴이 미어지게 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많았습니다. 결혼하여 죽는 날까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지지고 볶고 매일 얼굴을 대하고 살아야만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인지, 왜 꼭 같이 살아야만 완성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하여 왕위를 버리고 유부녀인 연인과의 결혼을 선택했던 윈저공의 사랑은 이루어진 사랑인지요? 그렇다면 결혼할 수 없어‘사의 찬미’를 노래하며 현해탄에 몸을 던진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 윤심덕과 유부남 김우진의 사랑은 어떤가요? 로댕을 사랑했던 제자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던 로댕에 대한 연정과 집착, 그리고 자신의 영혼 속에서 로댕에 대한 의식을 끊어낼 수 없었던 끌로델은 오랜 세월을 정신병동에서 살다 비극적인 삶을 마치고 맙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열정과 애증이야말로 이루어진 사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요?

이혼 후에도 오빠를 사랑하다가 한창 젊은 나이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새언니의 마음도 깊은 사랑이라 할 수 있겠고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화자의 애증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할 수 없어 애타는 심정을 홀로 가슴에 묻어두고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창가에서 어쩌다 가끔 열어보는 것도 이루어진 사랑이지요. 어차피 그것은 누구나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그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이거나 숙명이니까요.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세상을 떠난 정채봉 시인이 남기고간 시입니다. 이 시처럼 평생 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완성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1.XXX.XXX.117)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청소년 시절은 누구나 자기의 감성을 통제 할수 없을 만큼 열정이 대단하지만

나중까지 사진 을 책상 속에 두었다니 정말 로 남자들의 첫사랑은 쉽게 지워지지않는 각인된 사랑인가 봅니다.
인생을 반백년 이상 살아온 지금 생각해 보면 다헛되고 헛된것인데
그 두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허망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한 것도 허망하기만 하답니다.
젊은 날에도 중년의 어른들 처럼 감성을 통제할수 있었담
그런 슬픔이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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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07: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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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108.XXX.XXX.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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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4 04: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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