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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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김창식

2012년 09월 05일 (수) 01:43:57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아테네를 무대로 귀족과 서민, 요정이 함께 어울리며 한바탕 북새통을 벌이는 유쾌한 희극입니다. 하지만 요새처럼 무덥고 변덕스런 날씨에 뒤채다 꾸는 우리들의 꿈은 그처럼 낭만적이고 몽환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생각해보면 꿈속 '그림자[影]의 세계'는 낮과 밤, 삶과 죽음처럼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간혹 꿈속에서 본 풍경이 흐린 기억 속 어디쯤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또 마주하는 현실이 꿈보다 더한 상징성으로 실제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지요. 현실은 끊임없이 악몽의 근거를 제시하고, 꿈은 남루한 일상의 삶에 불안한 계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리에게 불안정한 꿈은 현실이고 부조리한 현실은 꿈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꿈의 특성과 정황, 그러니까 "현실은 꿈의 껍데기이고, 우리의 일상적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적인 체제에 갇혀 있다"는 섬뜩한 인식을 핍진성(逼眞性) 있게 그려낸 소설가는 다름 아닌 카프카입니다. '마(魔)의 산' '베니스의 죽음' '부덴브로크 일가(一家)'를 쓴 토마스 만은 동료 작가인 카프카(Franz Kafka‧1883~1924)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 적이 있습니다.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흉내 내어 생(生)의 기괴한 그림자놀이를 비웃고 있다."

아무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꾼 꿈을 빠뜨릴 수 없겠죠.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

'변신'의 서두입니다. 자연풍광과 시간의 변화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일상과 행적을 포착하는 화법에 익숙한 현대소설문학사에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작품이죠.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하기 전 '꿈을 꾸었음'에 특별히 주목합니다. 그것도 '불안한 꿈'이었죠. 꿈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꿈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카프카의 소설 중 변신은 그나마 비교적 이해가 쉬운 텍스트입니다. 출구 없는 막다른 상황에 던져진 개인이 겪는 불안과 소외감을 묘사한 것으로 읽히는 것이죠.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실존과 자기격락(自己格落)의 그로테스크한 모양새입니다. 또 다른 독법은 잠자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변신은 '소멸이자 새로운 존재의 재건이고 내재한 욕망의 발현'입니다. 프로이트류의 꿈의 작용과 효능을 상기합니다. "억압된 욕망은 꿈속에서 충족된다."

그런데 왜 그레고르 잠자는 하필 '불안한 꿈(aus einem unruhigen Traum)'에서 깨어난 것일까요? 잠자에게 꿈은 길고 긴 '변환의 터널'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법칙이 교란되고 형질(形質)과 정체성이 송두리째 바뀌는 데 따른 불안과 고통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했지만 그는 오랜 기간 되풀이해서 꿈을 꾸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전심전력을 다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변신이 급작스러운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된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기다림과 필연적인 연유가 있었던 것이죠.

잠자가 변신을 일군 후 곧바로 숨을 거둔다는 설정도 특별한 함의가 있습니다. 매미[蟬]의 짧은 생을 예로 들어보죠. 수명이 3~7년 정도인 매미는 여름 한 철을 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견딘다고 합니다. 침묵과 암흑의 기간을 견딘 그레고르 잠자 역시 변신을 이룬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둡니다. '존재의 새로운 재건'은 '그라운드 제로[0]'의 상태인 '존재의 소멸'로 얻어지는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