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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늙는구나(3) - 노래는 곧 그 사람
임철순 2007년 06월 25일 (월) 10:51:13

 즐겨 부르는 노래를 흔히 18번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전통연극 가부키(歌舞伎)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수많은 가부키 걸작 중에서 18번째 작품의 인기가 가장 높았고, 그래서 18번이 좋아하는 노래를 뜻하는 말로 바뀌어 쓰이다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수입된 것입니다.

 국어사전은 이 말을 ‘단골노래’로 바꿔 쓰라고 권하고 있는데, 왠지 좀 어색합니다. 북한 말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냥 애창곡이라고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애창곡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한 번도 노래하는 걸 남에게 보여 준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장인 이 두 분의 노래를, 아니 노래는커녕 흥얼거리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노래도 하지 않고 이 풍진 한 세상을 건너 가셨는지, 그 분들 삶의 무미함과 건조함이 참으로 궁금하고 안타깝습니다. 노래하지 않고 살았던 그 분들 마음 속의 숨김과 감춤,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분들과 달리 나는 노래하기 좋아하고 애창곡도 많습니다. 맨 정신이었을 때와 술 취했을 때의 노래도 다릅니다. 우선 점잖게 시작하면,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일세”라는 ‘고향설’을 즐겨 부릅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럴까 오지 않을 사람을 어디선가 웃으면서 와줄 것만 같은데”하는 ‘장밋빛 스커프’를 부르거나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무정한 봄바람에” 이런 것들을 끄집어냅니다.

 술이 조금 오르면 노래가 달라집니다. 배호(배호는 영원한 클래식입니다!)의 ‘배신자’를 골라 “얄밉게 떠난 임아”를 부르다가 “당신도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라고 합니다. ‘당신도 울고 있네요’ 이 노래는 김종찬도 이미자도 불렀지만 조영남이 부르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조용필의 ‘친구’-. 눈을 감고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하다 보면 절로 목이 메이는 기분이 듭니다.

 술에 더 취하면 드디어 본색과 정체가 드러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거나 남의 노래에 “엽쩌언 열 다앗 냥”을 후렴처럼 자꾸만 끼워 넣는데,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술에 깝북 취하면 그 놈의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웬만한 남자들은 다 알겠지만, 생각해 보면 체면이 영 말씀 아닙니다.

 잘 알다시피 내가 부르는 것은 맨 뽕짝에, 다 옛날 노래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조용필에서 진도가 끊긴 것 같습니다. 꽤 나이 든 사장이 젊은 사원들과 어울려 랩 송을 부르는 모습은 나에게 그저 놀라움일 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노래를 가사도 안 잊고 끝까지 부를까! 나는 김건모도 어려운데.

 글과 인격의 일치를 강조하려는 뜻이겠지만 文如其人(문여기인),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歌如其人(가여기인), 노래도 곧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즐겨 부르는 노래에는 남들이 알기 어려운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노래는 꼭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 납니다.

 30여년 전에 처음 들은 언체인드 멜로디의 그 숨 넘어가는 대목, “아아아아 아이 니드 유어 러브, 아아아아 아이 니드 유어 러브”를 부르는 대학동창, 굵은 바리톤으로 짐 리브스의 ‘힐 해브 투 고’ 와 ‘오 대니 보이’ 를 부르는 사람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서머타임, 피리부는 사나이, 가거라 삼팔선, 날이 갈수록, 고향에 찾아와도, 찔레꽃 이런 노래에는 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는 원래 진방남이 부른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역시 김희갑의 목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불러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김희갑의 목이 메인 듯 절절하고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이 노래에 제 격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노래가 너무도 많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나는 정말 부럽습니다. 특히 멋지고 감미롭게 샹송 팝송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불러 모아 노래하고 짓까불며 한바탕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온갖 술을 두루 갖춰 놓고 무진무진 마시고 먹되 절대로 취하지는 않으면서 저마다 그들만의 몸짓으로 부르는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百人百酒百歌(백인백주백가)의 흐드러진 술잔치, 노래잔치…. 가곡 ‘명태’에 나오는 “내 사랑하아아는 짝들과 노사아앙 꼬리치며 춤추며어 몰려 다니다가아…”의 바다 풍경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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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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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222.XXX.XXX.19)
하하, 김건모는 매우 어려운 노래입니다. 특히 스피드있는 '잘못된 만남'은! 이 노래 딱한번 듣고 '필'이 꽂혔었는데(빠른 템포의 비트인데 듣다보니 무한 슬퍼졌어요), 따라 부르려다 숨이 막히는 바람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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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1: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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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회 (218.XXX.XXX.140)
임주필의 때묻지않은 맑은 영혼이 갇잡아 올린 푸른생선처럼 싱싱하고 풋풋하게 느껴지는군
그 맑은 영혼을 한껏 발휘하여 계속 좋은글 읽어보도록 도와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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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30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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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 (203.XXX.XXX.46)
박인수의 봄비도 우리나라 명곡중의 명곡으로 끼워넣을 만 한 것 같은데요. "노래는 곧 그사람이다"라는 말씀 공감. 베토벤도 "음악은 곧 그사람의 인격"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로 백인백주백가라는 것은 사람됨됨이가 십인십색이라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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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7 17: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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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ddulnal (168.XXX.XXX.66)
아랫 글들을 읽다 보니 내가 영 방을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드는군요.이거야 원 "철순'오빠 사모방 같네.그렇다면,,,"철순"씨,, 노래 얘기를 하려면 다음에는 노래의 가사에도 좀 신경 쓰는 컬럼 좀 쓰삼!!!!노래 하는 흥에겨운 기분의 글은 읽다 보면 그 가사에 얽힌(?) 사연이 좀 있어야 쌉쌀한 맛이 도는 것인데,,,,,안 그렇소 "사모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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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7 0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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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실 (152.XXX.XXX.25)
임주필님! 노래에 대한 주필님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촌에서 자라면서 동요보다
유행가를 더 많이 부르며 살아온 인생인지라 더욱 절절히 제 가슴속을 파고 듭니다. 저도 대중가요에 관한 책을 준비 중입니다. 완성되는대로 인사올리겠습니다. 늘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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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08: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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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58.XXX.XXX.139)
7월6일 계룡대 등산모임에 꼭 시간을 내어 등산도 하고 우정도 나누고 였날노래로 중세 현대의 노래로 흠뻑빠져봅시다 김순진회장이 리싸이틀을 준비할지도 모르니 기대해보시고 홍수환회장과 황원동장군이 준비한것도 기대하면서........
6월21일 놀부보쌈에서 김순진회장이 중국진성 공산당원만 먹는다는 70만원짜리술을 여섯벼병을 마실때 철순오빠가 인천의 성냥공장을 불럿더라면 ... 얼마나 멋이넘첫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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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04: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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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58.XXX.XXX.139)
아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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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6 04: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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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edtree (121.XXX.XXX.190)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서정주의 시에 나왔던 건데 그 뜻이 뭐였더라?
마리님, 광지님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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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5 23: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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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65.XXX.XXX.203)
폭소에 폭소를 거듭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즐겁게 웃었읍니다.특히 엽쩌언 열다앗냥은 모두의 추억일 것입니다. 언젠가 모두 모인 잔치가 있다면 한번쯤 꼭 참석하여
18번들을 들으며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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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5 12: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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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지 (211.XXX.XXX.112)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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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5 11: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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