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카이로, 카이로에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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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카이로, 카이로에서 서울로

이성낙

2012년 11월 05일 (월) 01:09:41

북유럽에서 오랜만에 서울을 찾아온 가까운 지인이 서울 거리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흔히 외국인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인사치레 정도로 들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니, 필자의 반응이 어딘가 아쉬웠던지 “서울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가 20여 년 전 서울에 왔을 때는 차량에서 내뿜어대는 매연가스도 만만치 않았지만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택시, 버스, 트럭 등 모든 차량이 하나같이 빵빵거리는 소음이 놀랍고 괴로울 정도였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가 귀국길에 카이로에 들렀는데, 혼잡한 교통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이나 소음이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서울의 환경이 그나마 나은 거였구나 생각했다면서요.

20여 년이 지나 카이로에 다시 들렀더니 그전의 상황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을뿐더러 더 많이 붐비는 차량으로 오히려 생활환경이 더욱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합니다. 시내에서 숨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고요. 카이로를 떠나 다시 서울로 오면서 ‘과연 서울은 어떨까?’ 궁금해했는데, 인천 국제공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서는 순간 아주 놀랐다고 합니다.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 온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환경이 아주 쾌적하게 변했다고요. 오래전 보았던 자동차 매연은 물론 시끄럽던 클랙슨 소음도 사라졌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생활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확실히 클랙슨 소음은 거의 들을 수 없고, 버스나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 후미에서 역겨울 정도로 내뿜던 매연도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특히 시내 대형 버스들이 천연가스를 동력으로 사용하면서 공해가 두드러지게 줄어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차도 바로 옆 길가에서 커피나 음식을 유유히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생활환경 오염도가 예전보다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교통 규칙을 준수하는 것도 괄목할 만큼 호전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서울 시내 남산터널 입구에서 차량들이 서로 머리를 들이밀면서 엉키던 모습은 언젠가부터 한 대 한 대 번갈아가면서 차례차례 차도에 진입하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만큼이나 많이 발전했습니다. 아직도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엉키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머지않아 성숙한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정신과 체제가 더욱 발전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자신이 놀라워할 정도로 정말 많이 발전했고 변했습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에 관해 외국인이 쓴 책 몇 권이 생각납니다. 1980년대 재일 대만 출신 미래학자 사세휘(謝世輝) 교수는 그의 저서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한국경제신문사, 1986)에서 2000년대에 접어들면 한국이 조선 공업과 자동차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이며, 특히 IT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1980년대 인터넷도 제대로 없었으며,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사세휘 교수의 글은 퍽 고무적이긴 했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속내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1960년대에 이미 미국의 미래학자 허먼 칸(Herman Kahn) 박사가 그의 저서 <The Year 2000>(1968)에서 한국을 2000년대에 이스라엘과 함께 ‘산업혁명의 제2물결(Second Wave of Industrial Revolution)'을 타는 국가로 분류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영국 언론 매체의 특파원으로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한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기자는 그의 저서 <한국인을 말한다>(홍익출판사, 1999)에서 1960년대에 그 누가 한국이 오늘날의 산업국이 되리라고 예상했으며, 더욱이 1980년대에 한국이 민주화 국가로 부상할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감탄 어린 어조로 자문(自問)했습니다. 그러니 서울과 카이로를 비교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던 그 지인의 생각이 결코 단편적인 결과에서 한 말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실로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는 현대 산업화 과정에서, 또 정치 민주화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다양한 ‘화학적 성장통(成長痛) 반응’이란 그늘에서 갈등하며 아파하고 있습니다. 좀 더 품위를 갖춘 사회로 성장하기 위한 고통이라면 이를 치유하며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더 정직해야겠습니다. 개개인은 정직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라는 공동체는 꾸준히 그리고 바르게 진화하여야 합니다. 정직한 사회에는 따듯하고 정의로운 배려가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품위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겠다는 희망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보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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