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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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

허영섭

2012년 11월 15일 (목) 07:45:04

대통령제를 처음 도입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나라를 새로 세우면서 채택한 제도였습니다. 따라서 독립군 총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1789년 이전에는 지구상에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에서와 달리 혈연에 따른 세습이 아니라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국정을 이끌어갈 최고 지도자가 선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워싱턴 대통령의 역할은 막중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에 따라 최초로 실시되는 대통령 중심제의 대의민주주의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심에 서 있었던 때문입니다. 그때 워싱턴이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했다면 자칫 대통령제의 실패로 간주될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게 됐다면 차라리 종래의 군주왕정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제기됐을 법도 합니다.

실제로,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초석을 놓았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뇌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으되 포용과 겸손의 미덕을 발휘했던 덕분이라고 전해집니다. 워싱턴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은 대통령들도 대체로 민주정치의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0년이 넘는 역사에서 단 한 차례의 정변도 없이 선거에 의하여 평화적 정교체가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정치제도는 나름대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을 겪으면서도 노예해방을 이끌어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갈림길에서 승리를 일궈내고 세계평화를 기약하는 유엔 창설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업적을 널리 평가받을 만합니다. 물론 미국에는 그밖에도 훌륭한 대통령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통령제가 세계 각국으로 확대된 데에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고 여겨집니다. 아직도 중국이나 북한 같은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민들의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일본 등 전통적인 군주국가에서도 군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앉았고 형태는 약간 다를망정 실제의 국정 지도부가 선거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은 세계적으로도 외교, 군사, 경제, 문화 등 전반에 걸친 문제를 선도하는 위치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륙을 주름잡았던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스칸, 나폴레옹에 비해서도 결코 못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내부적인 견제장치가 작동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합니다.

책임이 무거운 만큼 신경을 써야 할 일도 많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웃음을 띠면서도 혼자 집무실에 앉아서는 골머리가 지끈거릴 것이라는 얘깁니다. 과거 역대 대통령마다 임기를 끝내고 몇 해 만에 흰머리가 부쩍 늘어 나타나는 모습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가장 놀란 것은 대통령은 골치 아픈 일이 많을 것이라던 젊은 시절의 생각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지난주 치러진 미국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재임을 앞두고 벌써부터 골치 아픈 일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당장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체제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나갈 것인지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재정 절벽’ 문제를 포함하여 경제를 살리는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서전 집필작가와의 내연관계가 드러남으로써 전격 사임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후임 문제도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지난 4년보다 앞으로의 4년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를 떠나서도 올해만 해도 대만을 필두로 하여 러시아, 프랑스,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세계 20여국에서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는 민중 봉기에 의해 예정에 없던 대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지난번 지도자가 유임되었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새로운 과제로 인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 제도 자체가 국정을 풀어주는 만병통치약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의 과정이며 방법에 불과할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대통령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채택해 시행해 온지도 어언 60여년에 이릅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음은 물론입니다. 그동안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까지 벌써 17대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의욕은 넘쳤으면서도 오히려 그로 인해 상당한 과오를 남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공한 대통령을 꼽으라면 서로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이제 우리도 차기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을 앞으로 한 달쯤 밖에는 남겨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그룹을 이루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진영마다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갖가지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데서도 선거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런 공약들로 인해 도리어 발목이 잡히고 국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우선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당선되고 보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지난 대통령들의 경우에서 확인되듯이 구호로서의 공약이나 포퓰리즘 공약은 누가 당선된다 해도 국정의 장애 요인일 뿐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대통령 본인의 발등을 찍게 될 것입니다.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실패한 대통령이 될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표를 던졌다는 것으로만 우쭐거릴 수는 없습니다. 과거 군부독재 통치가 종식되면서, 선거에 참여했다는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시대도 멀찌감치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퇴임 후까지 두루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을 갖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주문이 과연 지나친 희망사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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