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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시간
안진의 2013년 01월 10일 (목) 01:00:39
   
 
‘너무 빨리’가 세상의 시간이고, ‘너무 늦게’가 나의 시간이다. 그 시차(時差)가 서정(敍情)일 것이다. 엇갈림과 사무침의 화석, 세상과 나의 조우는 실패해야만 하고 심지어는 내가 나 자신과도 엇갈리고 사무쳐야만 시(詩)이다.

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서 얘기하고 있는 ‘시’는 화가인 제게 ‘그림’의 다른 언어입니다. 너무 빨리 가는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 늦은 저는 그 시차를 ‘서정’이란 이름으로 채색합니다.

서정은 곧 자연(nature)의 다른 이름입니다. 세상과 나의 시간차를 발견하면서, 그 간극의 외로움에 떨면서, 그 외로움에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이며, 자연을 바라보는 순수가 또 다른 서정입니다.

어느 날 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예 자연이 되고 싶었습니다. 자연을 닮을 수만 있다면 외로움도 번뇌도 벗어나리라 생각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외로움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숙명이고, 그 숙명을 담는 것이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워서 그린다는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존재의 시작점이 있다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픈 회귀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작점을 기억해내진 못해도 자연의 어느 일부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지는 낙엽과 말라가는 양귀비 긴 꽃대에도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꽃의 시간입니다. 육체가 아닌 영혼의 시간, 영겁의 시간, 찰나의 향기를 고스란히 안아 화폭에 놓았습니다. 겹겹이 쌓인 꽃잎들은 결을 이룹니다. 기억나는가요. 사랑, 행복, 연민, 포용, 거짓 혹은 진실, 믿음, 순수, 노여움, 질투, 매혹, 굳셈, 언약 모두 꽃을 비유하는 다른 말입니다. 그래서 꽃을 보면 우리의 시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갑니다. 너무 빠른 세상과 너무 늦은 나를 붙잡아 주는 꽃의 시간입니다. 제 화폭에선 붉고 푸르게 앉은 꽃잎들이 말을 겁니다. 신비하게도 그 꽃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저를 붙잡고 멈춰 선 순간입니다.

꽃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빛은 곧 색이고 색은 곧 꽃이며 꽃은 제 낯이고 낯은 제 본능입니다. 그래서 꽃잎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나를 드러냅니다. 겹겹이 쌓인 수많은 꽃잎들은 수줍어 동그랗게 몸을 말기도 하고, 긴장을 늦추지 못한 듯 파르르 엷게 떨기도 합니다.

유혹하듯 뻗어가기도 하지만 손짓을 거둬들이듯 매몰차게 꺾어버린 꽃잎도 저의 모습입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듯 술 취한 눈빛으로 늘어져 버린 것도 저입니다. 반듯하게 옷매무새를 잡아보았지만 곧 고독한 영혼이 갈 곳을 찾아 방황하듯, 엇갈린 꽃잎들도 다름 아닌 저입니다.

꽃이 말을 겁니다. 희망, 증오, 애틋함, 원망, 그리움, 회한, 서글픔, 설렘, 초조, 고집, 버림, 기다림, 망각.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즐기지만 허무합니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영원하다고 했지만 순간입니다. 유한의 꽃과 무한의 돌가루로 그림을 그려내는 제 화폭만큼 세상은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상대적입니다. 돌가루임을 인식하기도 전에 꽃의 언어에 도취되었다면 그만입니다. 무엇을 그렸건 돌가루가 주는 질감이 나를 흥분시켰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가늠하여 되었다 싶으면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독이 나를 비켜 가고 슬픔이 가라앉습니다.

예기치 못한 파란에는 흔들려야 합니다. 그래야 꺾이지 않습니다. 꽃잎은 엉키고 때로는 내 손으로 꽃잎을 끊어야 합니다. 나의 그림에는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붑니다. 세파에 꽃잎은 말없이 흩날릴 뿐, 서툴고 어설프고 모자라는 저를 그냥 둡니다.

예쁜 꽃도 아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집착이 나를 더욱 외롭게 할 것이기에, 그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을 일입니다. 그러다 마음이 정화되는 듯, 순간이지만 나를 멈추게 하는, 꽃의 시간을 만난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집착을 놓고 나를 비우는 꽃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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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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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52)
안교수님은 차라리 시인이 되셨음 좋을 뻔 했습니다!
제가 워낙 그림엔 문외한이라서 안교수님의 화풍을 소화시키지 못 해 소화불량증에 걸렸으니까요 ㅋㅋ....
빨리가 세상의 시간이고 너무 늦게가 나의 시간이다 라는 귀절이 페부를 찌릅니다,빠름이 발전이라는 신기루에 휘둘려 질주하다 보니 느림의 여유가 그림의 떡이 되고, 특별한 경지에 든 사람의 전유물이 되버렸네요!
어렸을적 설날은 전 보름 부터 후 보름까지 적어도 한 달은 명절기분에 들떠 지냈더랬는데 지금은 잘 해야 2,3일?
영악한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불러 올리고 고향에도 오지 않는가 하면 2,3일전에 왔다가 명절날 올라가버리는 얌체족들도 수두룩 합니다!
이게 목포에서 서울(용산)까지 3시간에 주파하며 KTX고속열차가 달리는 21세기의 빠른설날 풍경입니다. 석탄을 태우며 증기기관차가 역마다 정거하며 달리던 60년대의 설날 풍경 함 되돌아볼까요?
10여일 전부터 쌀가루 빻아 산자랑 유과랑 만들고,엿기름내어 엿을 만들고 2,3일전엔 돼지를 잡아 튀긴 물과 선지피로 걸판지게 마을잔치를 벌이고,쌀가루를 빻아 시루에 쪄서 디딜방아로 찧어 널판지 위에다 부어놓고 손으로 좍좍 밀어서 대떡을 만들었죠, 그리고 말려서 밤세워 칼로 썰어 떡국 재료를 만들고, 시원한 식혜도 미리서 미리서 만들고,고구마 튀김 오징어 튀김도...
갖가지 나물도 정성껏 준비해서 맞았죠, 설날 새벽엔 하얀눈을 송송 밟으며 어르신들께 세배를 다녔고, 내리 보름까지는 집집마다 돌면서 메구를 치며 액땜을 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풍년을 기원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의 광도 장독도 합법적(?)으로 검사해서 여유없는 집들은 나중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미덕으로 이어였죠! 집집마다 정성껏 차려낸 음식으로 땀을 식히며 그동안 응어리진 것들이 있었다면 죄 풀어버렸죠! 이런 메구가 보름까지 이어졌으니 얼마나 신이 났던지 ~~
대보름엔 깡통 불을 돌리며 왼 논두렁 밭두렁에 불을 지르며 풍년을 기원했었죠!
빨리빨리 왔다 가버리는 21세기의 살벌한 설 풍경이 발전일까요?
느리지만 설 전 보름 부터 설후 대보름까지 온 동네가 어우러져 메구치며 즐기던 60년대가 발전일까요? 아니 발전의 개념이 아닌 어느게 더 인간다운 것이고 문화적인 것일까요? 당연히 후자 아닐까요?
이제 좀 느려지는 법을 터득하는게 우리 본연의 모습과 여유를 되찾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손바닥만한 대한민국 뭐가 그리 급하다고 산은 뚫어버리고,계곡은 고가 기둥으로,강은 다리 놓아 직선으로 직선으로 뽑아대는 멋탱이 없는 고속도로,고속철 자제함 안될까요? 구석구석 지형 따라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스위스의 철도망을 보면서 느끼는게 없나요? 기껏 달려야 2~3시간이면 내려얀디 도로 옆에 또 도로,다리 옆에 또 다리 만들며 무차별적 자연파괴해서 빨리빨리 달려야할 필요가 있냐구요!
조급증에 세뇌된 대한민국 제발 좀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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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2 20: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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