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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중요하다면서, 기술자는 푸대접하고
고영회 2013년 01월 17일 (목) 00:54:00
몇 년 전 대한상공회소가 서울 시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그들의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1위는 교사였고, 이어 기업가와 공무원, 예술가, 언론인이 뒤따랐습니다. 장래 희망이 과학자라고 대답한 사람은 단 2명(0.2%)이었습니다. 만약 설문지에 과학자 대신 기술자를 넣었다면 기술자가 되겠다고 한 사람은 아예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고교학생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기술자를 보는 시각이요, 기술자의 현재 위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기술에 무관심하거나 기술을 깔보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정가,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 우리 사회의 입들은 예외 없이 "기술로 겨룬다, 기술경쟁력, 세계 1등 기술, 기술입국, 기술유출 걱정..." 이런 말들을 읊조리면서 "기술경쟁력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니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하고 목청을 높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술을 다루는 사람, 즉 ‘기술자’에 따라 기술이 좌우된다는 인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누구나 기술, 기술력을 애타게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기술을 가진 사람, 즉 기술자를 어떻게 길러내야겠다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엇갈린 시각이 놀랍습니다.

기술 유출 문제를 생각해 보죠. 기술 유출 사건이 생기면 언론은 "매국행위, 기술 유출범 엄벌해야, 도덕적 해이의 끝 기술 유출, 차 핵심 기술 중국에 넘긴 매국노들..." 이런 식으로 애국심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고 다루는 사람이 기술자입니다. 물론 불법으로 기술을 빼돌리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기술 유출 사건이 생기면 피해액이 보통 조 단위를 넘는다고 보도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기술자는 산업계에서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회사를 맘대로 옮기지 못한다는 약정에 얽매이고, 기술개발보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밤샘하며 연구하길 요구받고, 그러다가 회사를 옮길 기미라도 보이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과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있는 예비음모죄로 목이 죄이기 일쑤입니다. 기술자는 이런 환경에서 일합니다.

변리사는 거의 100% 이공계 전공자이고,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변리사는 이공계 전문자격이죠. 변리사법에 소송대리권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아도 헌법위반이 아니라고 합니다.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줍니다. 이런데도 기술을 전공하라 하겠습니까?

기술사를 생각합니다. 공대를 졸업한 학생은 대부분 산업현장으로 갑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공대 출신은 기술사를 꿈꿉니다. 산업현장에서 6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시험을 볼 수 있고, 논술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 기술사가 됩니다. 기술사제도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전문가제도이지만, 기술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업무영역이 없고, 걸핏하면 일정 경력이나 학력만 갖추면 기술사와 같이 대우해주는 제도(학경력인정 기술자)가 고개를 듭니다. 기술사 시험은 노동부가, 기술사 관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합니다. 기술분야 말고 이런 전문가제도가 또 어디 있을까요?

기술자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다른 분야로 간 사람과 엇비슷하게 노력했을 때 사회위상이 별 차이가 없다면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술자 길을 갑니다. 기술자가 가는 길마다 이렇게 발목을 붙잡고, 자존심을 구기는데 기술자가 되라고요? 기술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우수 학생으로 기술자가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책과 조직 짜기에 바쁩니다. 예전 과학기술부 기능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정부조직과 정책에서 ‘기술’을 찾기 어렵습니다. 인수위에 기술정책을 맡을 사람이 있기나 한지 걱정입니다. 기술은 관심을 받아 자랍니다. 기술이 나라발전에 중요합니까? 기술이 진정 중요하다면, 정부조직과 대통령실에 기술정책을 맡을 전담조직을 두십시오. 과학과 기술은 성격이 다릅니다. 과학에 기술을 얼버무릴 일이 아닙니다.

우수 기술은 우수 기술자가 만들어 냅니다. 기술분야를 좋아하는 우수 인재가 자신 있게 기술자가 되길 꿈꾸는 나라, 그런 나라가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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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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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맘 (1.XXX.XXX.211)
전자 공학을 전공한 대통령이 있는 오늘날
좀 기술력이 우대 받는 시대를 기대해 볼까요
어렵게 개발한 기술력 도둑질해 가는 세상이라
기술개발한 사람들의 보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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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2 16: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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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119.XXX.XXX.227)
새해에 받아본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로 옳바르게 갈수있도록 많이 수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박갑술<2013.1.18>
답변달기
2013-02-08 13: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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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3) (119.XXX.XXX.227)
<-박운식 2013-01-17 13:18:49
우리사회가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진정 기술사들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이제는 정부가 검토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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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2013-01-17 09:30:36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본적인 기술보다는 현세의 인기있는 기술에만 치중되는 세태를 보며 향후 전반적인 산업발전을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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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묵 2013-01-17 08:51:35
회장님의 좋은 고견에 동감하며, 몇 자 추가의견을 제시합니다.
1. 이학은, 현실 경제성보다 이론과 자연법칙 추구가 주목적이고
공학은 현실 경제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실용기술 개발-실용화-사회 기여가 주목적이라고 생각함니다
2 그런데 현존 대학 교과목에, 공학도가 알아야 할 경제성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다는 점과
3. 현대생화에 언제나, 누구나 필요한 다양한 에너지 상호간의 관계를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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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8: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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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9.XXX.XXX.227)
제가 좀 답답하죠~ㅎ 답답함은 참을 수 있지만 지금 막막함은 참 참기 어렵습니다.
인내천 님, 댓글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3-01-21 0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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